[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62] 성범죄에 관대한 법과 정치
방에 들어온 레몽양은 상관이 그런 자세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역겨운 듯한, 그렇지만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왜냐하면 앞에 서자마자 재빠른 동작으로, 능숙한 손놀림으로 그녀의 치마 속에 손을 쑥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엉덩이를 홱 돌렸지만, 라부르댕은 이 분야에는 거의 예지력에 가까운 직감이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피하든 간에 그는 항상 목적을 달성했다. - 피에르 르메트르 ‘오르부아르’ 중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성 추문이 또 터졌다. 오죽하면 ‘더듬어 만진 당’이라 할까. 여성 보좌진이 피해를 신고했고 당이 사건을 조사한 뒤 박완주를 제명 처리했다. 그는 전 서울시장 박원순, 전 부산시장 오거돈, 전 충남지사 안희정 등의 성범죄와 관련, ‘참혹하고 부끄러운 심정’이라며 당을 대신해 사과한 적 있는 3선 의원이다.
대법원은 군대 내 합의된 동성 간 성관계 처벌은 잘못이라고 판결했다. 군의 동성애 허용으로 해석될 수 있는 판단인데 아랫사람이 자발적으로 합의했다는 증언을 어떻게 100% 믿을 수 있을까? 소설 속 문장을 빌리자면 ‘군인에게 진정한 위험은 적이 아니라 계급’이다. 상관이 허리띠를 풀라고 명령할 때 복종하지 않는 게 가능한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쓸쓸한 귀환과 그 전쟁으로 이익을 취하는 세상의 부조리를 그린 소설 속 인물 중 하나인 라부르댕은 재력가의 후원으로 구청장에 당선된다. 그는 자기보다 큰 권력 앞에서는 납작 엎드려 이익을 취하고, 약한 사람을 이용해 욕망을 채우는 능력이 탁월한 남자다. 여성 인권이 바닥이던 시절, 그의 여비서는 고발도 퇴직도 하지 않지만 ‘뒈져라, 이 더러운 놈아!’ 속으로 욕하며 상관의 추행을 견딘다.
당대표의 성 상납 의혹에 대해 국민의힘은 개인의 사생활 문제를 거론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누구도 타인의 허리 아래 일까지 상관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군이든 국회든, 이성이든 동성이든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관계에서 성폭력은 반복된다. 사죄한다느니 합의했다느니 사생활이니 하는 말이 힘의 우위를 선점한 자들의 변명으로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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