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 안녕하세요

김수영 2022. 5. 1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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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골목 산책을 좋아합니다.

아직은 건조하지만 따뜻을 넘어 조금 뜨거운 햇볕 아래 걷다 보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조금은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매일 출퇴근을 ITX로 하게 되면 제 통장을 지킬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죠.

옛날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서울 예찬 때문에 서울 해방촌에 작업실을 얻고 친구들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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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작가는 멀리 있는
상상 속 유니콘 아니라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는
약간 자유로운 사람

초여름의 골목 산책을 좋아합니다. 아직은 건조하지만 따뜻을 넘어 조금 뜨거운 햇볕 아래 걷다 보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조금은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설레기 시작합니다. 서울에 갈 때는 크게 바쁘지만 않다면 ITX보다 경춘선 전철을 애용하는 편입니다. 매일 출퇴근을 ITX로 하게 되면 제 통장을 지킬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죠. 그리고 주말에는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소파에 누워 보내기를 희망합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요. 이처럼 크게 특별할 것 없이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저는 그림 그리는 작가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작가라고 소개하면, “작가는 처음 만나봐요!”,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라니 신기해요!”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상상 속 유니콘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보곤 합니다. 그들에게 저는 판타지 속 생물과 같은 존재로 비치나 봅니다.

하긴 ‘작가’라는 직업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개인차는 있겠지만, 세피아 필터 낀 듯한 햇살이 시폰커튼 사이로 떨어지는 큰 창. 배경음악으로 약간의 재즈나 클래식이 들리는 넓은 작업실. 그곳에 깔끔하게 옷을 갖춰 입고 앞치마를 두른 뒤 그림을 그리는 모습일 겁니다. 이때의 포인트는 붓을 들고 혼자 새초롬하게 뻗어있는 새끼손가락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어딘가 독특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자기주장 강한 패션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을 대부분 떠올리니… 그들이 저를 그런 눈빛으로 보는 것이 이해는 됩니다.

현실과 이상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흔히들 말하던가요? 제가 겪었던 4년 동안의 작가 생활은 작가 판타지와 비슷한 듯 달랐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경춘선 전철에 몸을 싣고 작업실로 출근합니다. 옛날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서울 예찬 때문에 서울 해방촌에 작업실을 얻고 친구들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안정적인 작가 생활을 위해서는 상경을 해야 한다는 것이 예찬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도 나름 핫한 그곳에서 작업을 하거나 카페에서 미팅을 하고 저녁 8시쯤 되면 퇴근을 합니다. 그리고 주말이면 평일에 미처 끝내지 못했던 일들을 마무리하죠. 보통은 카페에서 일을 마무리하는 편이에요. 그렇게라도 밖을 나가야 패턴화 된 일상이 그나마 견딜 만 해지거든요.

많은 사람이 작가는 위에서 이야기한 판타지 공간 속에 앉아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여깁니다. 그래서인지 보통은 은둔을 좋아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는 일상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특별할 것 없이 그 누구와도 비슷하고 평범한 하루를 지내죠. 우리가 보통의 평범한 일상과 조금 다른 점이라고는 약간의 자유도 정도랄까요? 그리고 비슷한 오늘을 살아내며 마주하는 현상들을 말이 아닌 이미지로 풀어낸다는 것 정도겠네요. 우리가 이렇게 곳곳에 존재하지만, 크게 티가 나지 않는 이유는 아마 겉으로 드러나는 사원증이나 정형화된 패션이 없는 탓이겠지요. 우리는 당신이 놀고 있는 핫플레이스 근처에, 주말에 잠시 들르는 카페에, 피곤한 몸을 싣고 움직이는 버스나 지하철에 늘 있습니다. 그리 멀리 있는 유니콘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죠. 한여름밤에는 시원한 음료에 넷플릭스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ITX보다는 전철을 더 애용하며, 춘천에 살면서 누구보다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그림 그리는 작가입니다.

김수영=△춘천고 △서울 동국대 서양화 전공 △개인전 ‘오늘밤 이곳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 단체전 ‘Room - 은둔과 안온’ 등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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