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살림의 언어 쪽에서 일할 수 있느냐가 제 시론"

김용출 2022. 5. 17.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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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그럴 때가 있다' 펴낸 이정록 시인
선한 해학과 너른 시선으로 주목 받아와
시 60편 묶어 4년 만에 펴낸 11번째 시집
가족과 이웃, 자연과 사물, 삶과 죽음 담아
"우리는 관계의 인다라망 속에서 존재해
깜빡 숨넘어갈 때 살짝 빛이 피어나듯이
일출하고 일몰하는 것이 같은 길로 연결"
이정록 시인은 “절망과 아픔의 순간 사이사이에 어떻게 하면 살림의 언어를 박아낼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고 말한다. 시가 잘 안 써지면 버스 기사와 할머니가 유쾌한 대거리를 벌이는 시내버스에 타곤 한다.
오래전 어느 봄날,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충남 홍성군 용봉산 마애불의 머리 위에 진달래꽃이 피어 있는 것을 봤다. 마애불을 좋아했던 시인은 이때 모습이 기억에 남아서 시 ‘애인’을 짓기도 했다. 한참의 세월이 흘러 마애불을 다시 찾아가 보니, 마애불 머리 위에 있던 진달래꽃이 사라져 있었다. 관리를 위해 정리된 것이었다. 그는 이때 뿌리가 머리를 파고드는 고통을 딛고 진달래꽃을 피워낸 마애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럭저럭 사는 거지./ 저 절벽 돌부처가/ 망치 소리를 다 쟁여두었다면/ 어찌 요리 곱게 웃을 수 있겠어./ 그냥저냥 살다보면 저렇게/ 머리에 진달래꽃도 피겠지.”(‘진달래꽃’ 전문)
걸쭉하면서도 선한 해학과 세상을 바라보는 너른 시선으로 주목받아 온 이정록 시인이 ‘진달래꽃’을 비롯해 시 60편을 묶어서 신작 시집 ‘그럴 때가 있다’(창비)를 펴냈다. 4년 만에 펴내는 그의 11번째 시집이다.

시집에는 가족과 이웃은 물론, 자연과 사물, 삶과 죽음이 한데 모여 그윽한 아름다움과 중후한 활력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 다수 담겨 있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얼음 속에서라도 질문이 살아 있으니 아직은 파멸이 아니다. 답은 하나”라며 “앞뒤가 아니라, 옆이다. 당신 곁”이라고 말했다.

이정록 시인은 꾸준히 발신해 온 생명과 살림 이야기를 이번 시집에선 어떻게 그렸을까. 이정록의 시 세계는 앞으로 어디를 향해 나아갈까. 이 시인을 지난 11일 서울역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시 ‘진달래꽃’은 어떻게 쓰게 된 것인지.

“처음 바위에 끌을 대고 망치로 때렸을 것이다. 그런데 탕탕탕탕, 울린 고통의 소리는 가고 미소만 남는다. 우리 역시 일생을 살면서 수도 없이 삶이라는 고통의 망치질을 당한다. 그래도 그럭저럭 세월이 지나고 보면, 고통을 잊고 환하게 웃는 미소만 남는다. 부처의 머리에 어느 때 진달래꽃 뿌리가 들어와서 자리 잡고, 망치를 맞을 때보다 더 큰 고통이 온 뒤, 자기의 삶을 승화시키는, 그럭저럭이라는 대충의 시간만 지나면 고통이 잊혀지는 게 아닌, 아예 꽃을 피워 버린다. 어떤 꽃을 피게 할 것인가. 진달래꽃이라는 제목은 이미 한으로 규정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있어서 무조건 백전백패하는 제목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이 아니라, 한이 승화된, 한을 풀어버리고 꽃을 피워버리는, 체념의 상태를 넘어서버린 지점을 짧고도 강렬하게 한번 써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은 우주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관돼 있다고, 너와 내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표제시 ‘그럴 때가 있다’는 그러한 우주적 관계성이 이뤄지는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그럴 때가 있다.// … 촛불이 깜빡,/ 까만 심지를 보여주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그럴 때가 있다’ 부문)

―표제시는 우주의 관계성이 드러나는 어느 순간을 포착한 것 같은데.

“우리는 관계의 인다라망 속에서 존재한다. 여기에서 깜빡 숨넘어갈 때 저쪽에서는 살짝 빛이 피어나듯이, 일출하고 일몰하는 것이 같은 길이다. 고통과 기쁨 역시 딱 잘라서 특정 국가나 사회, 종교만의 것이 아니다. 고통과 슬픔이 한 개의 선으로 연결돼 있고, 그것을 단절시키거나 놓치거나 무시하거나 그렇게 보면 안 된다. 여기에서 작은 기미와 조짐조차도 저쪽에서는 엄청난 어떤 슬픔의 기척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지금 너와 내가 너무 명확하게 단절돼 있고, 배척하고,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에 관해 한번 생각해 보고 싶었다.”

어느 날, 시인이 시골버스에 앉아 있었는데 팔순의 할머니가 올라탔다. 버스 기사는 무릎수술을 하고 오랜만에 나타난 할머니에게 서른이 아니냐고, ‘성장판 수술’을 한 게 아니냐고 농을 건네자, 할머니는 “사타구니에 숨긴 민증 좀 까봐”라고 몰아붙이는데.

“기사 양반, 잘 지내셨남?/ 무릎 수술한 사이에/ 버스가 많이 컸네./ 북망산보다 높구먼.// 한참 만이유./ 올해 연세가 어찌 되셨대유?/ 여드름이 거뭇거뭇 잘 익은 걸 보니께/ 서른은 넘었쥬?// … 등 뒤에 바짝/ 젊은 여자 앉히려는 수작이/ 꾼 중에서도 웃질이구먼./ 오빠 후딱 달려.// 인생 뭐 있슈?/ 다 짝 찾는 일이쥬./ 달리다보면 금방 종점이유.// 근디 내 나이 서른에/ 그짝이 지나치게 연상 아녀?/ 사타구니에 숨긴 민증 좀 까봐./ 거시기 골다공증인가 보게.”(‘팔순’ 부문)
―그야말로 이정록 해학의 결정판이 아닐 수 없는데.

“지금 시골에선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해서 운전면허를 딸 수 없는 어르신들이 장에 가거나 어디 나오려면 이동 수단은 버스밖에 없다. 승객은 아저씨들이 일찍 떠난 여성들이 대부분이고, 버스 기사는 대부분 남자다. 오십대 중후반의 남자 버스 기사와 칠십대 이상의 어르신들의 대화만으로 채우는 연작 시집을 준비 중이다.”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이나 의미는.

“지금은 시가 책으로만 읽히는 게 아니라 무대에 올려져서 시극이나 시노래 등으로 수용되고 있다. 이번 시집이 이전과 달라진 건 시극이나 시노래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시가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자기중심적 시 세계에서 좀더 대중과 현장, 무대 낭독이나 시극 등 다른 장르로 소통 교류하려고 노력했다. 국악이나 관현악의 연주 속에서 노래, 큰 북, 암전, 침묵 등 여러 생각을 하고 배치했다.”

1964년 홍성에서 태어난 이정록은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시집 ‘의자’ ‘정말’ ‘어머니학교’ ‘동심언어사전’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박재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천안중앙고 등에서 37년간 교사로 일하다가 지난 2월 퇴직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지.

“지금 시극 외에도 시로 쓰는 사전을 쓰고 있다. 국어사전이나 원예사전, 식물사전에 설명된 감나무는 모두 같지만, 개인이 경험하는 감나무는 다 다르다. 감나무 밑에서 연애한 사람도 있고, 감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진 사람도 있고. 이정록의 감나무를 쓰는 거다. 600편 정도를 쓰려고 하고, 지금 한 3분의 2 지점을 지나고 있다.”

시인은 “제 언어가 어떻게 하면 살림의 언어 쪽에서 일을 할 수 있느냐가 제 시론”이라며 오늘도 죽임의 언어가 아닌 살림의 언어를, 살림의 시를 쓰기 위해 펜을 든다. 어둠의 언어가 아니라 촛불을 건네주고 밝히고 꽃피우는 살림의 언어여야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존재에게 다시 가시로 찌르고 포탄을 쏘는 것이라면 차라리 시를 쓰지 않는 게 낫다고 다짐하면서.

그리하여 시인 이정록은 “때로는 분노나 아쉬움, 서글픔 때문에 시가 탄생한다면, 그것을 노래하는 절망과 아픔의 순간 사이사이에 어떻게 하면 살림의 언어를 박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릴 것이다. 검정 고무신을 꺾어서 자동차 놀이를 할 때 흙탕물을 채우고 소방차를 몰다가 중학교 때 저수지에서 익사한 초등학교 동창 기활이가 혹시 홍수에 떠내려가는 암소의 마른 등에 앉아 있는지 살피듯.

“흙탕물 채우고 소방차를 몰던 기활이는 저수지에 들어간 뒤 쉰 넘어까지 나오질 않는다. 시란 걸 쓰고 읽을 때마다 나는 행간에 구명조끼가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암소의 마른 등, 그 등짝에 기활이가 앉아 있는지를.”(‘구명조끼’ 부문)

글·사진=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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