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 크기 보면, 살인사건 '답' 나온다

이해인 기자 입력 2022. 5. 17. 21:17 수정 2022. 5. 1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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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16일 오전 부산 지역 한 경찰서에는 “80대 노모가 집에서 사망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당시 사망 신고를 한 아들은 “어젯밤까지만 해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는데 아침에 보니 돌아가셨다”고 했다. 수사에 나섰던 부산경찰청 과학수사대 정재봉 경장은 사망자 발목 상처에서 들끓고 있는 구더기의 크기가 시신 부패 정도에 비해 크다는 것을 수상하게 여겼다.

정 경장은 “현장에서 발견된 구더기 크기는 약 1~1.5㎝였는데 이 정도 크기로 자라는 데는 3~4일이 걸린다”며 “이건 아들이 말한 사망 시점 전에 구더기가 이미 사망자 몸에서 부화했다는 뜻이어서, 살아있던 어머니가 몸에 구더기가 나올 정도로 방치됐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됐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결국 추가 수사로 신고자였던 아들이 병든 노모를 제대로 간호하지 않고 버려둬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걸 밝혀내 검찰에 송치했다.

이처럼 구더기 같은 곤충을 분석해 사망 원인을 밝히거나 사망 시각을 추정하는 ‘법곤충학’이 일선 경찰에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17일 충남 아산시 경찰수사연수원에 국내 첫 ‘법곤충감정실’을 열었다고 이날 밝혔다. 생물학 석사 학위를 보유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에서 일한 이력이 있는 전문 인력 2명과 각 시도청 과학수사대 25명이 현장 인력으로 함께 활동한다.

법곤충학은 곤충이 성장 속도가 일정하다는 특성을 활용해 피의자나 피해자 등 사건 관계자의 사망 시점을 추정하는 데 주로 쓰인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전남 순천 야산 매실 밭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의 사망 시각을 추정하는 데 처음으로 적용됐다. 당시 경찰은 시신에서 파리 유충의 번데기 허물과 구더기를 채취한 뒤 날씨와 습도 등을 감안해 사망 시각을 추정했다.

2019년 6월 경기도 오산 한 야산에서 백골 상태의 시신이 발견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유골 주변에서 발견된 곤충 번데기가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검정뺨금파리, 큰검정파리, 떠돌이쉬파리 번데기가 발견됐는데 이 3개 곤충은 주로 10월에 출현하는 종류라 사망 시점을 특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또 약물 투여 후 사망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숨진 뒤 한참 지나 시신이 발견될 경우 혈액을 채취하기 어려운데, 시신 주변 구더기를 분석하면 마약이나 신경안정제 성분이 발견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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