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마저도 인재 빼앗겨.. 민간주도 교육 확대해야"

안경애 2022. 5. 1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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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인재양성 좌담회
컴퓨팅·클라우드 기반 연구환경 구축 시급
전문강사 양성 중장기적 계획도 동시 진행
지역에 '가고 싶은 회사' 산업 생태계 필요
지난 1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디지털 인재양성 좌담회에서 대담자들이 자유토론을 하고 있다. 이슬기기자 9904sul@

인재전쟁이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SW(소프트웨어)와 AI(인공지능) 인재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실력 있는 인재를 보유한 국가와 기업이 힘을 갖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절대적 디지털·SW 인재 부족과 질적 미스매치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일부 유명 기업과 대기업으로 인력이 쏠리면서 기업간·지역간 격차도 심화하고 있다.

새 정부가 내세운 '디지털 100만 인재 양성'에 대한 기대가 큰 가운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ICT R&D·인력양성 사업 수행기관인 IITP(정보통신기획평가원)와 공동으로 '디지털 인재양성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는 지난 1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진행했다.

◇전성배=군사력과 경제력을 대신해 디지털 기술혁신 역량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과기정통부와 IITP는 대학ICT연구센터 등의 사업을 통해 교육체계를 혁신하고, SW마에스트로,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등 실무중심 비정규 심화교육을 통해 실전형 인재를 양성해 왔지만 인재수급 불균형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기술패권 경쟁을 좌우할 최고급 인재 확보를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인력양성을 담당하는 기관과 관련 협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사업·정책에 반영하겠다.

◇홍승표=과기정통부와 IITP는 기술패권 경쟁과 인재난 대응을 위해 SW중심대학, AI대학원,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이노베이션 스퀘어 등을 통한 10만 AI·SW 인재 양성을 추진해 왔다. 또 민간 교육기관을 통한 디지털 신기술 훈련과 실무인재 양성을 통해 2025년까지 18만명을 키울 계획이다. 최고 전문가 심화교육인 SW마에스트로 사업을 통한 창업, 미취업 청년 대상 혁신성장청년인재 집중양성 사업을 통한 취업 등 창업·취업 연계와 일자리 창출에도 집중해 왔다. 앞으로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와의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해 수요자 중심, 산학협력 방식 인재양성을 강화하겠다. 최고급 인재 양성 확대, 타 산업의 ICT 인력양성 확대, 지역산업과의 연계 강화도 추진할 계획이다.

◇김동철=작년 6월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민관 협력 기반의 SW인재양성대책' 발표자료에 따르면, 작년부터 2025년까지 인재 수요·공급 미스매치로 인해 총 35만명 이상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업계의 반응은 정부가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봤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영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 했고, 비IT 기업과 전통 산업의 디지털 전환 속도를 잘못 예측했다. 물류, 농업, 금융 등 전통산업에서 마른 모래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SW 인재를 엄청나게 채용하고 있다. 한 채용 사이트에 따르면 2021년 IT·SW 직무 인재채용 공고가 전년 대비 65% 증가했다. 인재난은 특히 지역과 중소기업에 심각하다. 지역은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대기업조차 신생 디지털 기업에 인재를 빼앗기는데 중소기업은 회사가 살아남기 힘든 정도다.

◇박현제=인력양성은 기술개발과 밀접하게 연관돼서 작동한다.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수한 인력이 길러지고 그들이 산업으로 넘어가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여력을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는 사이클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기술개발 투자를 통해 길러진 인력이 산업으로 들어가는 인센티브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잘 돼 있는데 우리는 부족하다.

또 고급인력이 만들어지려면 환경과 인프라가 잘 돼 있어야 한다. 국가가 우수한 연구개발 환경을 만들고 R&D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는 동시에 컴퓨팅 환경도 잘 갖춰야 한다. 그런데 국내 컴퓨팅 환경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과거 대학 혁신을 위해 인터넷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다면 요즘은 컴퓨팅과 클라우드 기반 연구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포커스가 바뀌었다. 기업이 가진 우수한 데이터를 학교 등 연구환경에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산학협력도 필요하다.

◇박현주=대학 중심 인재양성으로는 한계가 있다. 산업계 인재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양적·질적 공급 확대와 신속한 양성이 동시에 필요하다. 100만 인재를 키우려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인력문제 해결의 열쇠로 여성을 활용하자. 현재 SW인력 30만3000명 중 남성 23만8000명, 여성 6만5000명으로 8대 2 수준이다. 이공계 여성종사자 7만5000명에게 SW 재교육을 해서 여성을 14만명으로 늘려 6대 4 구조로 만들자. 장기적 비전과 목표 수립도 필요하지만 당장 신속한 공급이 필요하다. 경력단절자와 재직자를 활용해 신속한 양성전략을 펴야 산업계 인력 수요를 맞출 수 있다.

◇탁용석=산업현장에서 보면 디지털 전문기업이 아닌 일반기업과 지방 기업은 상황이 특히 어렵다. 정부가 AI 직무전환이나 재직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정말 기업이 필요한 부분을 해주고 있는지, 숫자를 채우기 위한 게 아닌지 관심이 필요하다. 또 재직자 교육을 받은 후 대우가 더 좋은 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도 많다. 현장 상황을 고려한 더 깊이 있는 프로그램 운영이 필요하다.

◇문정현=소위 '네카라쿠배' 기업과 대기업, 중소기업의 상황이 매우 다르다. 대기업에서 네카라쿠배로 가고 대기업은 중소기업에서 사람을 채운다. 중소기업들은 일할 사람이 없다.

교육부와 연계된 제도권 내 인력양성은 숫자에 한계가 있다. 제도권 밖에서 기업과 연계한 인력양성이 필요하다. 10년 전부터 멘토링 제도가 활성화돼 있고 우리도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데, 제대로 된 멘토가 가르치는 팀은 정말 좋은 결과가 나온다. 그런 면에서 가르칠 사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계획에 관련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또 기업 재직자들이 더 활발하게 멘토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업과 멘토에 대한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김구년=디지털 인재양성 시 교육 기획 단계부터 기업과의 세부적인 조율을 바탕으로 과정 설계와 운영을 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인재양성은 우수한 전문 강사 확보가 성패를 결정한다. 따라서 디지털 인재양성 사업에 맞는 중장기적 전문강사 양성 계획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통신과 전파가 빠질 수 없는데 최근 기존 전파산업 재직자나 예비인력을 위한 교육이 부족하다. 관련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모두가 SW만 배워서는 균형 있는 발전이 안 된다.

◇김동철=가장 큰 문제는 초중고의 SW교육 시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해외 주요 국은 대부분 전 학년에서 정보교육을 핵심 교과로 운영한다. 우리나라는 51시간인데 미국은 416시간이다. 영국은 374시간이고 에스토니아도 315시간이다. 중국은 212시간이고 일본도 400시간이 넘는다.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으로 선진국을 따라잡은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교육이었다. 그런데 미래 산업 경쟁력의 씨앗이 되는 SW와 디지털 대전환 인재 양성에서는 주요 국 중 가장 뒤처져 있다.

교육시수가 적으니 정보교사 1명이 2~5개 학교를 떠돌며 수업을 하는 현실이다. 초중고 교육시수를 선진국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특성화고 개편과 대학 SW 관련학과 정원 확대도 필요하다. 또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병역의무를 SW 인재 양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기업 주도 채용연계형 교육도 만족도가 높은 만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권병욱=기업과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와 직무역량은 기업이 가장 잘 아는 만큼 기업 주도로 민·관 및 대학과 협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또한 청년 및 구직자들은 기업이 직접 참여하는 훈련과정을 선호하지만, 중소·벤처기업의 경우 관련 여력이 부족한 만큼 기업들이 인력을 직접 양성하고 채용까지 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인건비 일부 지원 등 유인책이 필요해 보인다.

기존 인재상과 디지털 인재상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프레임워크도 필요하다. 디지털 요소기술을 습득하고 암기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를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빅데이터와 AI를 통한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사안별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아울러 온·오프라인 결합과 이종 산업간의 융합 추세에 맞춰 산업분야별 사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

◇박현주=요즘은 융합시대다. 이런 흐름에 맞춰 산업별 인력양성과 기업맞춤형 교육이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클라우드 등 기술 중심으로 구분해 교육했는데 산업별 구분도 필요하다. 우리 회사만 해도 SW 보안을 하다 자동차 보안으로 분야를 바꿨는데 임베디드 기술과 보안, 자동차를 함께 알아야 하니 매우 어렵다. 산업별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강사 양성도 중요하다. 중국은 AI 강사를 당국이 길러서 유치원생부터 교육한다. 우리도 정부가 강사를 양성한다. 그런데 강사 질의 차이가 크다. 체계적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고수준 강사, 심화 강사를 더 배출해야 좋은 교육이 가능하다.

◇탁용석=지역에 있다 보면 느끼는 점이 많다. 지역에서 육성할 전략산업을 선정하고 관련 인력을 육성할 때 그들이 가고 싶어하는 선망의 기업이 있어야 한다.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공들여 만들고 운영해도 그들이 가고 싶어하는 회사가 없으면 서서히 빛을 잃어간다. 지역 안에 그런 생태계를 잘 만드는 것을 정부가 깊이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범부처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지역 전략산업 선정할 때는 지방정부와 대학이 처음부터 같이 설계해야 한다. 또 지역 대학이 역량을 보태려면 교육부와의 논의가 돼야 한다. 획기적 전환 없이는 지방에서 양성된 인력이 지방에서 꿈을 펼치는 구조를 만들기 힘들다. 지역에서 기업을 유치할 때도 핵심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어떻게 원활하게 수급해 주느냐다. 지방정부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인재양성 범위가 광역적일 필요도 있다. 기업 관점에서는 특정 지역 중심 인재양성은 특정 지역, 특정 대학 학생 비중이 커지는 것 때문에 부담이 된다. 광주라면 예를 들어 부산대, 경남대 등까지 초광역적으로 대학간 연계를 해서 전략산업 인력의 다양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이런 다양한 문제가 안 풀리면 지역은 인력양성 기지에 그칠 수밖에 없다.

◇박현제=최근 문제되는 게 기술패권 경쟁과 글로벌 밸류체인 재구성인데, 우수한 인재는 우리나라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R&D도 그렇지만 인재도 글로벌 밸류체인을 구성하고 연구협력을 하면서 국내외 인력이 교류해야 한다. 해외 우수 인력이 우리나라와 교류하고 필요에 따라 서로의 밸류체인에서 활동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글로벌 차원의 인력 네트워킹을 우리가 앞장서서 만들어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연구·산업환경을 주도적으로 만들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손유미=최근 인력 수요와 기술혁신의 특징은 수급전망 활용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신기술·신산업 분야의 융합화 현상이 뚜렷하다. 그렇다 보니 전통적 방식의 인력양성 방식과 수요공급 예측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과거와 같이 총량적·거시적으로 인력 수급전망을 하고 양성계획을 세우면 세월이 다 지나간다. 신기술·신산업 분야 인력 수급전망 혁신을 위해 인력양성과 기술수요를 포함한 빅데이터 분석과 실시간 정보 유통·활용체계 구축, 현장 의견을 반영하고 모니터링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직능원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탁용석=이번 정부의 100만 디지털 인재 육성에는 전 부처가 관여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자칫 부처별로 정책을 추진하다 보면 혼선이 있을 수 있으니 정비가 필요하다. 부처별로 잘 정돈해서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 국민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좋을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수요자 중심의 추진이 필요하다.

◇전성배=인력양성의 신화에 빠지면 안 된다. 나한테 가장 잘 맞는 최고의 인재를 절대적으로 많이 공급해 달라는 요구는 작동하지 않는다. 다만 열심히 노력해서 수요에 맞추려고 노력하겠다.

기업은 충분히 만족할 수준의 인력을 확보해서 사업에 맞게 최적화하고 보충하는 게 필요하다. 정부와 인력양성 기관은 중소기업, 지역, 공통분야, 필수분야에 신경써야 한다.

우리가 폭넓은 인재양성 사업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기업이 할 수 있는 부분을 늘리고, 군 장병 대상 교육과 온라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강사와 교수도 중요한 만큼 강사·교수시스템과 인센티브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인력양성 관련 세제·교재·인프라 지원도 고심하고 있다.

인력양성에서 미스매치가 없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력이 이동하지 않는것도 불가능하다. 그런 점을 인정하면서 미스매치의 시차, 갭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구조적 보완을 하는 게 중요하다.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고 효율적으로 사업을 하도록 노력하겠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사진=이슬기기자 9904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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