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구워 번 돈으로 장애아 가르쳐..푸른눈의 천사

허연 2022. 5. 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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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한국에 왔나' 펴낸 트루디 여사
극동방송 김장환 목사 부인
美서 유학생 남편 만나 한국행
60년간 교회 봉사자로 살아와
"어디서든 꽃피우는게 인생
다시 태어나도 이 곳에 올것"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가 목회할 때 일이다. 교회에는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청소를 하는 외국인 아주머니가 있었다. 신도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니 어디서 저렇게 부지런한 외국인 청소부를 구했을까?"

청소하던 여인은 김장환 목사의 부인 트루디 여사(84)였다. 트루디 여사는 교회 봉사자로, 목사 부인으로, 선교사로서, 파이를 구워 번 돈으로 장애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로 평생을 살았다.

195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17일간의 항해 끝에 부산항에 도착했던 새신부 트루디 여사가 한국 생활 60여 년을 추억하는 책을 펴냈다. 책 제목은 '내가 왜 한국에 왔나'(나침반)다.

"제 좌우명이 '심겨진 그곳에 꽃피게 하소서'입니다. 제가 심겨진 곳이 어디든 하나님의 큰 뜻입니다. 한국에 온 이후 단 한 번도 미국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트루디 여사는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나 기독교 명문 밥 존스 고교 시절, 같은 재단 대학에 다니던 동양인 학생인 김장환 목사를 만났다.

"남편은 축구부 주장이었고 웅변대회 우승자였어요.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일주일 만에 결혼했어요. 집에선 반대했지만 어머니가 밥 존스 대학 총장을 만나 빌리(김장환 목사)가 어떤 사람인지 듣고 나서 승낙하셨죠."

한국에 처음 와서 경기도 화성에 정착한 트루디 여사는 낯선 환경에 맞닥뜨려야 했다.

"음식 문화 모두 힘들었죠. 하지만 시댁 식구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참 따뜻했어요. 가장 힘든 일은 아이들이 밖에서 혼혈아라고 놀림을 받고 들어올 때였어요."

2남1녀 자녀들은 이제 모두 장성해 자기 몫을 하고 있다. 아들 둘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 활동을 하고 있고 딸은 미국에서 교수로 있다.

오랜 시간 지켜본 한국인에 대해 평가를 해달라고 했더니 흥미로운 답이 돌아왔다.

"한국인은 따뜻해요. 그리고 그 어떤 민족보다 열정적이고 성실해요.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인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이유예요. 그런데 대부분 성격이 너무 급해요. 그렇다 보니 삶의 여유가 부족해요. 좀 더 느긋하게 살아가면 좋겠어요."

트루디 여사는 남편 김장환 목사를 가장 존경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89세의 나이에도 복음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아요. 늘 바쁘지만 다정하고 속 깊은 남편이자 아버지예요. 요즈음 제가 몸이 아파서 회복 중인데 휠체어 생활을 하는 저를 사랑으로 간호해주고 있어요."

여사의 한국 노래 애창곡은 '인생은 미완성'이다.

"인생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할 수 없어요. 미완성인 인생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분이 하나님이죠. 하나님이 계셔서 한국에서의 삶이 완전해질 수 있었어요.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 올 거예요. 제가 처음 발을 디딘 부산을 지금도 가장 좋아해요."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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