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라 이은해 브리핑 없다? 국민 앞 안서는 檢 유감

심석용 2022. 5. 1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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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으면 안 되잖아요.”
‘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씨와 조현수(30)씨를 살인 등 혐의로 검찰이 구속기소한 지난 4일, 한 검찰 간부가 공식 브리핑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사견과 유머를 담은 말이었다.

실제로 검찰은 이날 공개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보도자료 파일을 취재기자들에게 공유하면서 “이씨 등과 같은 혐의로 송치된 공범과 조력자에 대해선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수사 관계자는 “공범 등에 대한 수사가 남아있어 사건이 완결되지 않았다. 브리핑해도 알려드릴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인 상황”이라며 현재로썬 대국민 브리핑을 하지 않는 게 맞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상세히 대답할 수 없는데 굳이 브리핑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였다.

기자들에게 뿌려진 12~15포인트 글자 수 2329자, 4장짜리(단면 인쇄) 한글 파일이 대한민국을 몇 달씩 떠들썩하게 한 이은해 살인 사건에 대한 검찰의 설명 전부였다. 공소사실 요지, 참고사항은 그렇게 문자로 전달됐다. 대국민 브리핑, 공개적인 기자 일문일답은 없었다. ‘소문난 잔치’라는 검찰 관계자의 비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의 침묵을 오히려 더 의아하게 만들었다.


공개수배 해놓고 한 번도 국민 앞에 안 섰다


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왼쪽)·조현수씨가 지난달 19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노(NO) 브리핑’ 사유로 든 조력자들에 대한 수사도 마무리가 됐다. 2명을 최근 기소한 검찰은 이번엔 2장짜리 보도자료를 냈다. 2019년 6월 30일 외진 계곡에서 벌어진 그 날의 실체적 진실은 이제 법원의 판단에 넘겨졌다.

언론 보도를 시발로 국민적 관심과 공분을 일으킨 이 사건에 대한 공권력의 수사가 일단락되는 동안, 검찰은 단 한 번도 국민 앞에 서지 않았다. 기소 때마다 검찰은 2~4장 분량의 보도자료로 입장을 밝혔고, 자초지종을 묻는 질문엔 “수사 중인 사안”이란 답변을 되풀이했다. 검찰 수사 도중 이씨 등이 도주한 지 3개월이 지난 뒤에야 공개수배를 하고 국민에게 도움을 청했던 사건에 대한 ‘대국민 회신’이 그랬다. 사건 초기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국회의원실이 공소장을 공개하라고 요청한 것에도 검찰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지난주 법무부가 국회에 일부 문서를 제출했는데, 2장짜리 문서는 공소장 전문이 아니었다고 한다. 문서 첫 장엔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사건 관계인의 사생활과 명예 등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제출 불가 사유가 적혔다. 아직 이씨 등에 대한 공판기일이 시작되지 않았으니 공소장 공개는 피의자 방어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취지다.


“국민적 의혹이라 브리핑하더니, 이은해 사건은 왜”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놓고 여야가 극한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모든 절차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법무부와 검찰의 규정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2020년 법무부 훈령이 개정되면서 검찰의 대국민 브리핑은 보기 힘들어졌다.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과 관련해 과거 기준보다 브리핑이 엄격해졌다는 비판도 일부 있었지만, 법무부는 원칙에 따른 일이라고 강변했다. 검찰 내부에선 이견이 있지만, 여전히 언론브리핑을 열기는 조심스럽다는 기류가 흐른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이 자진해서 국민 앞에 선 선례도 많아서 오히려 국민은 “도대체 브리핑 기준이 뭔가”라며 헷갈린다. 지난해 1월 세월호 특별수사단은 서울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직접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질의응답까지 진행했다. 각종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게 검찰의 입장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다시 이런 질문이 생긴다. “이은해 사건은, 그 수사 과정에서 생긴 의혹은, 수사했던 경찰과 검찰의 잘잘못은 누구에게 설명을 들어야 하죠?”

검찰 내부에서도 혼선이 생기자 법무부는 지난달 “법무부 훈령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대해 폐지를 포함해 재·개정까지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혐의 사실이나 수사 상황, 소환 및 촬영 등의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요구에 긍정적으로 답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규정이 바뀌더라도 형사사건 공개에서는 사안에 따라 검찰의 선택적인 브리핑이 반복될 거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관측이다.


국민 앞에 설 의무, 개념 정립 필요


정부 브리핑의 목적은 정부기관이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을 설명하는 데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욕을 먹든 칭찬을 받든 정부가 서야 하는 자리다. 검찰의 수사 상황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가 더 제한될 수 있다. 이를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언론 종사자는 정부의 브리핑 행태에 괴리감을 느끼는 게 현실이다. ‘칭찬받을 수 있을 때’에만 브리핑에 나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을까 봐 브리핑을 안 하겠다는 식의 개념이 관가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국민에게 ‘고용’된 사람들이 칭찬받을 때만 앞에 나서겠다고 버티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수사기관의 경우,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걸림돌이라면 국민 앞에서 그 규정을 근거로 알 권리의 한계를 설명해 주면 된다. 아예 국민 앞에 서지 않아도 된다고 예단할 일이 아니다.

“오로지 국민을 위한 정의와 공정이 검찰의 지향점”(검찰 간부)이란 검찰의 외침은 허전할 뿐이다. ‘국민 중심’ 검찰이 어떤 모습인지, 수사기관이 져야 할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무엇인지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아서다.

심석용 사회2팀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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