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호주 총선의 포스터∙빌보드마다 이 얼굴이 나오는 까닭

이철민 선임기자 입력 2022. 5. 17. 17:18 수정 2022. 5. 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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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팽배한 '반중' 정서 이용해, 상대 후보를 "시진핑이 지지한다"고 저주
작년 호주인 여론조사, 92%가 '중국 정부 체제' 93%가 '군사활동'에 부정적

21일로 예정된 호주 총선에는 공식 출마도 하지 않은 인물이 여러 정당의 포스터에 모습을 드러낸다. 현대 민주주의적인 선거 제도와 관련도 없는 인물이다. 바로 시진핑 중국 주석이다.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포스터나 빌보드에 주로 등장한다.

호주의 보수적 로비단체인 '어드밴스 오스트레일리아'가 고용한 차량이 시진핑이 야당인 노동당 후보에 투표하는 사진을 걸고 거리를 달리고 있다. 집권당인 자유국민연합은 "노동당이 중국에 유화적"이라고 비난한다. /AP 연합뉴스

호주 ABC 방송과 ‘디 에이지(the Age)’ 등 호주의 많은 매체들은 선거일 수개월 전부터 여당인 자유∙국민연합은 물론, 야당인 노동당, 군소 정당에 이르기까지 선거구의 상대 후보를 ‘중국의 꼭두각시’ ‘중국의 스파이’로 모는 현상을 집중 보도했다.

사실 집권세력인 자유∙국민연합이나 노동당이나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에선 크게 차이가 없다. 최근 여야 대표간 토론에서도, 노동당 대표인 앤서니 올바니즈는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CCP)의 성격을 바꿨고, 중국은 더 전진 배치적∙공격적이 됐다. 호주는 당연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중국을 겨냥해 미∙영∙호주가 작년 9월 결성한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와, 미국∙호주∙일본∙인도의 인도∙태평양 안보 기구인 ‘쿼드(Quad)’를 지지한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선 호주에 자국의 ‘텃밭’이라고 생각했던 불과 2000㎞ 떨어진 솔로몬 제도에 중국 해군 기지가 설치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호주가 무역∙안보 분야에서 갈수록 중국과 대척점을 이루면서 ‘반중(反中)’ 정서가 총선의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서로를 중국의 조력자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에 호주인들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정치∙군사 분야와 중국인∙문화에 대한 분야에서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중국의 정부체제와 역내(域內) 군사활동에 대해선 각각 92%, 93%가 ‘부정적’으로 봤다. 중국 기업의 호주 투자에 대해서도 79%가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인(76%), 중국 문화∙역사(68%)에 대해선 여전히 ‘긍정적’ 반응이 많았다.

집권 자유당 “시진핑은 노동당 후보를 원한다” 주장

중국과 시진핑을 이용해 상대 후보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정당은 여당인 자유∙국민연합이다. 스콧 모리슨 현 총리가 속한 자유당 측은 “노동당은 중국에 유화적”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지난 5일의 내셔널프레스클럽 토론에서, 국방 장관인 피터 더튼 하원의원(자유당)은 “노동당이 중국 공산당이랑 뒷거래를 하고 있다”며 “중국 공산당이 모리슨 정부의 패배를 원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보수적인 로비단체가 만든 ‘진실 트럭(truth truck)’은 ‘노동당을 선호하는’ 시진핑 사진을 내걸고, 전국을 돈다.

미국 인터넷 매체 ‘퍼스트 드래프트’는 이런 ‘친중 몰이’가 “195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침대밑에 빨갱이 있다(Reds under the bed)’는 표현처럼 최근 수개월간 사람들에게 먹혔다”고 진단했다. ‘레즈 언더 더 베드’는 수많은 공산당 간첩∙동조자들이 미국 사회에서 일상 생활을 하면서 정부를 전복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시각을 표현한 슬로건이었다.

지난 9일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의 애들레이드에 나타난, 주의 연방 상원의원 닉 제너폰을 중국의 꼭두각시로 몬 차량 빌보드 사진. 이마에는 화웨이 로고가 찍혔다. /트위터

실제로 중국 공산당은 개인과 기관을 통해 호주 총선과 정치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이 사실이다. 2016년에는 맬콤 턴불 총리의 자유당 정부에서 중국인 억만장자가 200만 달러를 노동당 상원의원을 비롯한 정치권에 뿌린 것이 호주 정보기관에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중국 정부의 로비스트였다. 이후 외국인의 정치자금 기부가 금지되고, 중국 IT 기업인 화웨이는 호주의 5G 구축 사업에서 축출됐다.

치좀 선거구에서 출마한 홍콩계 글래디스 리우 하원의원을 '시진핑의 후보'로 묘사한 차량 빌보드. 반중 단체들은 리우가 과거 시진핑을 "독재자가 아니라, 선출된 주석"으로 발언한 것을 문제삼았다./트위터

물론 중국계 후보이면, 소속 정당에 관계 없이 시진핑의 끄나풀로 공격당한다. 야당인 노동당은 페이스북에서 치좀 선거구에서 재선에 나선 홍콩계 글래디스 류 하원의원을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뉘앙스까지 섞어 “나는 작은 눈으로 스파이짓을 했다(I spy with my little eye)”고 묘사했다.

한 군소 정당의 CHINA 약자(略字) 풀이는

군소 정당도 ‘중국’을 이용한다. ‘호주연합당(UAP)’은 “호주인들은 우리 정치인들이 호주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 정부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를 은밀히 전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UAP 후보를 뽑으라고 호소한다.

호주 토착 백인을 선호하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정당인 ‘일국당(One Naton)’은 아예 China를 “호주를 탐내는 적을 묘사하는 5개의 단어”라며 C(Control∙통제)-H(Harmful∙해로운)-I(Illegal∙불법적인)-N(Nasty∙추잡한)-A(Aggressive∙공격적인)로 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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