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찬란, 끝은 아름다운' 금강선 디렉터의 '로스트아크'
"엘가시아는 디렉터로서 마지막 업데이트가 될 것 같다. 나름대로 멘탈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은연중에 압박감, 외로움 등 여러 가지 스트레스도 있었다. 스트레스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나 그런 것들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 것 같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건강을 잃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수많은 가능성에 큐브를 돌려봤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고 건강이 안 좋아졌지만 여러분을 얻었고 건강을 잃었지만 로스트아크가 사랑받는 IP가 되는 것에서 인생의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제가 없어도 로스트아크가 흠이 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멤버들은 그만큼 강하고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처음 로스트아크를 만들 때 제 꿈은 소박했다. '전 세계 한 사람만 있어도 좋으니까 한 사람이어도 좋으니까 어떤 사람의 인생 게임이 되자'는 목표였다. 10년 후 로아를 되돌아보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땐 괜찮았지 하고 행복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게임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물론 콘서트에서 여러분들을 오프라인으로 만날 것이다. 그리고 다음 로아온부터는 전문성 있는 새로운 리더십 그룹을 구축해서 찾아뵐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훌륭한 분들이 많다. 곧 소식을 전할 수 있게 할 거고 미래는 이어질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스마일게이트RPG의 대표작 '로스트아크' 개발을 총괄한 금강선 디렉터가 지난 13일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꺼낸 갑작스런 통보는 기자를 포함해 많은 유저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10년 동안 달려온 도전과 3년 간의 동행. 금강선 디렉터의 로스트아크는 3차례 CBT를 거친 후 2018년 11월 7일 OBT를 통해 정식 서비스에 돌입했는데요.
국내를 포함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PC 플랫폼 MMORPG 출시가 뜸했던 만큼 로스트아크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떤 신작 게임보다 높았습니다.
실제로 트레일러가 공개될 때마다 "빨리 출시해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로스트아크 기다리다가 통장에 수천만 원이 모였다" 등 출시에 대한 기대감과 간절함이 고스란히 묻어나왔죠.
파이널판타지14,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 같은 정통 MMORPG가 아닌 액션성을 감미한 핵앤슬래시 MMORPG라는 것도 눈길을 끈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게이머들의 기대감은 출시 직후 동시 접속자 수로 증명됐습니다. 당시 동시 접속자 수가 35만 명을 돌파했고 수없이 몰려드는 게이머들을 서버가 온전하게 수용하지 못해 2만 이상 대기열이 형성됐죠.
이로 인해 유저들이 로그인 화면에서 '끼룩끼룩' 소리만 듣고 있다며 '끼룩 온라인'이라는 웃픈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습니다.
찬란한 출발과 다르게 중간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아크라시움'이라는 재료를 수집해 장비의 레벨을 성장시키는 방식이었는데요. 재련과 같은 확률형 성장 요소가 없어 확률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지만 아크라시움의 수급량이 매일 제한이 있어 게임을 꾸준하게 해야 한다는 시간적 스트레스가 누적됐습니다.
과금과 연결된 요소라 호불호가 나뉠 수 있겠지만 빠르게 상위 콘텐츠를 즐기고 싶어도 일정 시간이 강제로 필요했기 때문에 새롭게 유입된 유저가 친구 혹은 지인들과 함께 즐길 수 없는 구조였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스트아크는 OBT라는 시기를 적극 이용해 많은 도전을 해왔습니다.
욘 대륙을 시작으로 아크라시움 성장에서 벗어나 재련이라는 개념이 도입됐고 '8~16인 어비스 레이드', '스크롤', '안타레스의 악몽', '리버스 루인' 등 다양한 변화가 있었죠.
그 과정에서 '레이드 즉시 완료권', '안타레스의 악몽' 등 무리한 도전이 게이머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했고 여러 콘텐츠를 추가해도 로스트아크만의 뚜렷한 색깔을 떠올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습니다.
항해, 생활 등 서브 콘텐츠들은 '서브'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강제성이 있으면서 불편을 유발했고 게임의 대표로 지정된 콘텐츠들도 다른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구성이었어요.
MMO, 핵앤슬래시, 액션 등 모두 RPG에서 특징에 따라 파생된 수식어라곤 하지만, 로스트아크를 어떤 장르라고 지칭하기가 모호했던 만큼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방향성을 잡을 필요가 있었죠.
DPS 인플레이션, 골드 시세, 콘텐츠의 다양성, 직관적인 성장 구조 등 당시 로스트아크의 문제를 전면 해소하기 위해 금강선 디렉터는 '루테란 신년 감사제'라는 오프라인 유저 간담회 무대에서 시즌2 프로젝트를 공개합니다.
그리고 로스트아크는 '낙원의 문' 업데이트 이후 약 6개월 동안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시즌2 '꿈꾸지 않는 자들의 낙원' 업데이트를 선보였죠.
로스트아크를 즐기지 않는 게이머들도 관심을 가지고 게임에 유입·복귀했을 정도로 시즌2의 파급력을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신규 유저가 시즌2 콘텐츠 '파푸니카'를 입성하는 과정이 혹독했고 거인의 심장, 카드, 위대한 미술품 등 흔히 '내실'이라고 불리는 일부 수집형 콘텐츠들을 초기화한 바람에 비난도 많이 받았죠.
유저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항해, 생활, PvP 등 서브 콘텐츠들에 대한 변화가 미미한 것도 지적 사항이었습니다.
유저들의 목소리에 공감함 금강선 디렉터는 시즌1에서 시즌2로 성장하는 난이도를 대폭 하향했고 항해, 생활 콘텐츠의 중요도를 시즌1, 시즌2 초기보다 줄였습니다.
내실 초기화와 관련해선 "자신이 디렉터로 일임하는 동안에는 절대 시즌1과 같은 내실 초기화는 없을 것이다"고 약속해 신뢰 관계 형성에 발판을 마련했죠.
PvP 콘텐츠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카메라 시점, 스킬 계수, 기준 스펙, 관전 모드 등에서 접근성과 가시성을 끌어올리는 업데이트를 순차적으로 적용하면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온라인 게임은 계속해서 말랑말랑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노후된 부분을 계속 방치하면 오히려 게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시간이 필요할 지라도 고쳐나갈 것이다."
로아온에서 전한 금강선 디렉터의 멘트는 게이머들 뿐만 아니라 게임업계 관계자들 모두 자신들이 즐겼던, 개발했던 게임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로스트아크의 강점을 한층 더 살려낸 부분도 많았습니다.
로스트아크의 강점을 떠올린다면 '시나리오 연출'이 대표적이죠. 왕의 유적, 영광의 벽, 광기의 축제 등 시즌1부터 뛰어난 연출력으로 호평을 받아왔으니까요.
이를 극대화시킨 시점이 바로 '베른 남부'였습니다. 5명의 군단장이 모두 모여 베른을 침공하고 그들을 막아내는 주인공의 서사와 연출은 언리얼 엔진3 게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했죠.
그리고 베른 남부와 함께 출시된 군단장 레이드는 로스트아크의 장르를 MMORPG라고 명확하게 지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신규 유저 355%, 복귀 유저 318% 상승, 로스트아크 제2의 전성기를 불러왔습니다.
로스트아크는 기세를 몰아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진행했어요. 지난해에는 마수군단장 발탄, 욕망군단장 비아키스, 광기군단장 쿠크세이튼, 몽환군단장 아브렐슈드로 메인 콘텐츠의 축을 마련했다면 올해는 로웬 대륙을 통해 로스트아크가 발을 들이지 않았던 필드 PvP를 도전하고 군단장 레이드 개발로 미뤄왔던 스토리 라인에 힘을 줬죠.
필드 PvP의 도전은 성공적이라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한 번쯤은 직접 도전해서 데이터를 쌓겠다는 판단이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죠.
그나마 게임 내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됐을 때 도전해야 리스크가 적은 만큼 최적의 시기였다고 생각됩니다.
'가지무침'이라 불릴 정도로 호불호가 나뉘는 콘텐츠를 선보여 대부분 유저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던 로스트아크와 금강선 디렉터는 '엘가시아'라는 필살기를 꺼내듭니다.
10년 전부터 구상한 로스트아크 첫 대단원의 마지막 장. 엘가시아는 OST, 시나리오 내용 및 전개, 분위기, 퀘스트 동선 모두 역대급 찬사를 받았을 만큼 멋진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엘가시아 솔직히 별 거 없을 거잖아?"라고 말했던 유저들도 그동안 내뱉은 말을 번복했을 정도였죠.
엘가시아와 함께 추가된 어비스 던전 '카양겔'도 군단장 레이드에서 문제로 꼽혔던 '사이버 유격'의 고통을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개발팀의 의도가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로 로스트아크식 MMORPG 콘텐츠의 재미를 잘 살려냈습니다.
한편으로는 10년 동안 준비해서 이정도 퀄리티를 선보였는데 "다음 추가될 콘텐츠도 이정도 퀄리티를 보여줄 수 있을까?", "엘가시아랑 비교하면 모두 별로라고 말할 것 같다"라는 불안감도 생겼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강상 문제로 디렉터 자리를 내려놓은 금강선 디렉터를 보면서 로스트아크의 미래가 더욱더 걱정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금강선 디렉터의 로스트아트가 시즌2에 돌입하면서 상대적 "혜자 게임이다"는 의견은 수긍할 수 있지만 냉정하게 "완벽한 게임", "시작부터 좋은 게임"이라고 말할 순 없어요.
수많은 도전과 시행을 거치는 과정에서 유저들의 고통이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여전히 불편한 부분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게임업계와 게이머들에게 '소통'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고 국내 게임업체들의 운영에 귀감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해 출시 당시 동시 접속자 132만 명으로 스팀 플랫폼 역대 2위를 기록했고 서비스 3개월이 지난 지금도 동시 접속자 63만 명을 유지할 만큼 흥행을 이어가고 있죠.
사퇴 소식을 전한 금강선 디렉터는 기자에게 "건강 잘 회복해서 더 좋은 게임 만들겠다. 그래도 엘가시아까지 마치고 떠나서 후련하다."라며 "늘 꿈꾸면서 건강하길 바란다."라고 전했습니다.
이를 보며 개인적으로 로스트아크는 금강선 디렉터의 꿈을, 국내 게임업계가 나아갈 방향을, 게이머들에게 국내 게임업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다 준 '아름다운 게임'이라고 표현하고 싶었어요.
좋든 싫든 이미 결정된 사안인 만큼 현재 로스트아크와 유저들은 새로운 리더십과 함께 새로운 꿈을 꿔야 할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금강선 디렉터가 건강을 회복해 로스트아크 IP 총괄을 맡는다고 해도 실무에서 벗어난 만큼 그의 온기는 점점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강정호 디렉터 이후 던전앤파이터 디렉터로 복귀한 네오플 윤명진 디렉터가 총괄 디렉터로 활동했을 때와 비슷하겠죠.
이를 걱정하는 유저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라우리엘'이 수많은 경우의 수 중에 희망을 찾아냈듯이 금강선 디렉터가 떠난 로스트아크의 미래에 어둠만 있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Gold River' 금강선 디렉터의 빈 자리가 로스트아크에게, 유저들에게 쉽게 채워지진 않을 겁니다.
게임 인생 20년 동안 국내 게임업계에서 디렉터가 물러나겠다고 전할 때 유저들이 이 정도로 아쉬움을 표하면서 다시 돌아오라고 외치는 경우가 없었거든요.
"인정한다. 개발팀 설계 미스였다."
"여러분들을 위해 매출 17% 포기하겠다. 이것이 로스트아크식 재투자다."
"이렇게 드리면 여러분이 남는다."
"여러분들이 로스트아크 유저라는 게 굉장히 자랑스럽다"
낭만 디렉터의 주옥같은 멘트는 로스트아크를 즐길 때마다, 로아온을 시청할 때마다 떠오를 테니까 어쩌면 영원히 메꿔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멈춰있을 순 없겠죠. 누가 지휘봉을 잡든 그 무게를 견디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유저들도 응원하고 부족한 부분을 진심 어린 피드백으로 도와주면서 '시작은 찬란하고 끝은 아름다운' 금강선 디렉터의 로스트아크보다 더 친근하고 멋진 게임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moon@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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