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시각 미스터리, 이제는 '파리'로 푼다

정두리 2022. 5. 1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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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국수본, 국내 최초 '법곤충감정실' 개소
곤충으로 사망시간 추정..법곤충 감정기법 도입
"한국형 법곤충 성장데이터 확보..변사사건 수사 뒷받침"

[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 지난해 7월, 부산에서 80대 노모가 사망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변사체에서 발견된 구더기를 확인하고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 노인의 괴사 상처에서 발견된 구더기 길이가 1∼1.5㎝로 사망 3일 전 산란한 것(승저증)으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승저증은 살아 있는 동물에서 구더기가 발견되는 증상으로, 노인이나 유아를 상대로 한 방임·학대의 증거로 활용된다. 경찰은 아들이 병든 노모를 제대로 간호하지 않고 버려둬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파악하고, 존속유기치사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다.

이처럼 변사체에 꼬인 파리나 유충 등을 통해 사망 시간을 추정해내는 법곤충 감정기법이 국내 최초로 도입된다. 법곤충 감정기법으로 변사사건의 수사 패러다임이 대폭 바뀔지 주목된다.

경찰수사연수원 내 법곤충감정실. (사진=경찰청)
국내 최초 법곤충감정실…5년간 54억 지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17일 충남 아산 경찰수사연수원에 국내 최초로 ‘법곤충감정실(Forensic Entomology Lab)’을 개소했다.

사망시간은 변사사건에서 정확한 사인 및 범죄 관련 여부 확인을 위한 중요한 단서로 통상 체온 하강, 시신 얼룩(시반), 시신 경직(시강), 위(胃) 내용물 소화 상태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래 방치됐거나 부패한 시신의 경우 기존 방법으로는 사망시간 추정이 어려운 실정이다.

법곤충 감정은 우리나라에서 다소 생소한 영역이나 곤충 종류별로 온도에 따른 성장 속도가 일정하다는 특성을 활용한다. 시신에서 발견된 곤충의 종류와 성장 데이터 분석을 통해 중장기적인 사망시간 추정이 가능하다.

미국, 유럽 등 주요 해외 국가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수사기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해외 주요 국가 수사기관 또는 법과학연구소 등에 법곤충 전문가가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독일 등 주요 대학엔 법곤충학 석·박사 과정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곤충 감정이 수사에 적용된 첫 사례는 2014년 세월호 참사 관련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변사사건이다. 유 회장 시신은 2014년 6월 12일 전남 순천시에서 발견됐는데, 경찰은 그의 시신에서 검출된 구더기의 부화 시각을 추적해 사망시점을 특정했다. 이 사건은 당시 사망원인·시기에 대해 수많은 의혹이 제기된 만큼, 법곤충 감정을 통한 과학적 사망시간 추정으로 의혹을 푸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법곤충 감정은 전문인력 부족, 법곤충 데이터 미비로 보편화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에 경찰청은 2016년부터 5년 동안 법곤충 관련 연구개발을 통해 법곤충 감정 기반을 마련해 왔다. 이후 올해 4월부터 법곤충 데이터 확대 및 감정기법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곤충 증거물을 채집하고 DNA를 분석하는 건 현재도 가능하지만, 곤충이 어떤 종이고 어떤 온도에서 성장하는지에 관한 백데이터가 없다”면서 “법곤충감정실을 통해 한국의 계절·지역 특성을 반영한 법곤충 성장 데이터를 본격적으로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5년간 54억원의 연구개발 예산을 지원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곤충감정실 보건연구사들이 감정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경찰청)
◇“한국형 법곤충 성장 데이터 확보…변사사건 수사 뒷받침 할 것”

현재 한국에 서식하는 주요 시식성 파리 3종(구리금파리·검정금파리·붉은뺨검정파리)에 대한 성장데이터는 구축된 상태다. 법곤충감정실은 이외에 시신에서 발견된 파리 27종, 딱정벌레 24종에 대한 데이터도 확보할 계획이다.

오대건 경찰청 법곤충감정실 보건연구사는 “현재 국내에선 변사사건 시체의 60% 이상에서 구리금파리가 나오고 있고 나머지는 검정금파리, 붉은뺨검정 파리 순”이라면서 “이외 파리들과 딱정벌레의 정량 데이터도 구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법곤충감정실은 법곤충 감정을 통해 사망시간 추정뿐만 아니라 사망한 계절, 시신 이동 및 약물 사용 여부 등 추가적인 수사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2019년 6월 발생한 오산 백골 시신 암매장 사건은 법곤충 감정으로 사망 계절을 확인한 사례다. 당시 경찰은 시신 주위의 곤충 번데기들을 분석해 검정뺨금파리, 큰검정파리, 떠돌이쉬파리를 발견했다. 경찰은 이들 세 종류 곤충이 공통적으로 10월에 출현하는 데에 기인해 유골이 2018년 10월 이전에 암매장됐다고 추정했다. 당초 수사팀은 2019년 초에 사건이 발생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법곤충 감정을 통해 사건 발생일이 2018년 9월 8일인 걸로 확인했다.

이밖에 시체에서 발생한 애벌레나 번데기, 번데기 껍질 분석을 통해 사망자가 마약이나 농약 같은 약물을 사용했는지도 추정이 가능하다.

오 연구사는 “승저증 분석은 변사사건뿐만 아니라 노약자에 대한 방임·학대나 동물 학대·유기 등도 활용될 수 있다”면서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수사지원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법곤충 감정의 생태계가 갖춰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두리 (duri2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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