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를 좇아 순정을 포기한 남자..사랑을 곁에 두려 빌런이 된 여자

안진용 기자 2022. 5. 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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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스트레인지 - 완다(스칼렛 위치)
MCU 세계관은 디즈니+ ‘완다비전’(위 사진)과 ‘왓 이프’를 챙겨봐야 이해하기 쉽다.

■ 안진용기자의 그여자 그남자 -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 박복한 여자, 완다

어렸을 적 폭격으로 부모 잃고

비전과 상상결혼 후 이별 당해

반복된 좌절 탓 악당으로 변신

- 외로운 남자, 스트레인지

마스터로 남으려 포기한 연인

재회 시켜주겠단 제안도 거절

인류의 안전 위해 완다와 대결

개봉 13일 만에 5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닥터 스트레인지2). ‘닥터 스트레인지’(2016) 이후 6년 만에 개봉된 단독 히어로 무비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적잖은 이들이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러 갔다가 완다(스칼렛 위치)를 발견했다”고 말하곤 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최강의 적인 타노스에 맞서 닥터 스트레인지와 함께 싸웠던 완다, 즉 스칼렛 위치가 ‘닥터 스트레인지2’ 속 빌런이다. 한 때는 ‘어벤져스’라는 이름 아래 뭉쳤던 둘은 왜 서로를 향해 창을 겨눌 수밖에 없었을까? 결국 외톨이로 살아가게 된 두 남녀 마법사의 삶에는 한국의 웬만한 막장극 못지않은 치정과 반전이 숨어 있다.

◇박복한 여자, 완다

2019년 개봉해 1400만 관객을 모은 ‘어벤져스:엔드게임’이후 오랜만에 극장에서 ‘닥터 스트레인지2’를 본 관객들은 “왜 완다가 마녀인 스칼렛 위치로 변했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댄다. 선(善)의 편에 섰던 그가 개인적 욕심을 위해 세상을 위험에 빠뜨리는 설정이 선뜻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MCU 관련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디즈니의 욕심이 담겨 있다. 디즈니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인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 또 다른 마블 시리즈 ‘완다비전’은 타노스가 죽은 후 완다의 처절한 삶을 그린다. 결국 ‘완다비전’은 ‘어벤져스’ 시리즈와 ‘닥터 스트레인지2’를 잇는 징검다리다. “챙겨보라”는 디즈니의 무언의 강요인 셈이다.

마블 히어로 이전, 완다의 삶은 기구하다. 소코비아의 평범한 가정에서 살던 쌍둥이 남매 중 동생인 완다는 집에서 시트콤을 보던 중 폭격을 당해 부모를 잃는다. 이때 집에 떨어진 미사일에는 ‘스타크 인더스트리’라고 적혀 있다. 그가 토니 스타크에 적대감을 갖고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어벤져스의 반대편에 선 이유다.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걸 깨달은 완다는 다시금 어벤져스와 힘을 합치지만 전투 도중 쌍둥이 오빠를 잃게 된다. 유일한 혈육이 사망한 후 우울해진 완다를 위로해준 이는 호크아이와 비전이었다. 하지만 호크아이는 이미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었고, 비브라늄 신체에 인공지능(AI)을 넣어 만든 비전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타노스와의 대결에서 비전은 이마의 마인드 스톤이 뽑힌 채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전투는 어벤져스의 승리로 끝났으나 완다는 또다시 가족을 잃고 만다. 여기까지가 대중이 흔히 아는 ‘어벤져스:엔드게임’의 이야기다.

인류의 절반을 죽인 타노스를 물리친 후 먼지가 됐던 이들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진짜 인간이 아닌 비전은 돌아오지 않았다. 값비싼 비브라늄으로 만들어진 비전의 사체는 실험용으로 쓰였고, 분노한 완다는 비전을 들고 한 마을로 온다. 여기에서 마법을 이용해 행복한 가정을 꾸린 완다는 상상 임신을 통해 두 아들 토미와 빌리를 낳는다. ‘닥터 스트레인지2’ 속 그 아이들이다. 그들의 삶은 시트콤으로 제작돼 방송되는데, 이는 완다가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시트콤을 보며 행복을 누리던 기억과 연결된다.

하지만 마법으로 구축된 세상은 지속될 수 없었다. 자신이 만들어진 존재인 것을 알게 된 비전은 이별을 고하고 그런 비전에게 완다는 말한다. “당신은 내 안에 살고 있는 마인드 스톤의 일부이자 내 슬픔과 희망이고 무엇보다 내 사랑이에요.” 그렇게 비전과 또다시 헤어진 완다는 외딴 마을에서 홀로 살아간다. 그런 완다의 귀에 어디선가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도와줘요.”

바로 여기서 ‘닥터 스트레인지2’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멀티버스 세계관 속에서 완다는 또 다른 차원에서 두 아들과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그는 스칼렛 위치의 힘을 사용해 멀티버스 세계를 조정하려 한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완다라는 여성에게 허락된 것은 분노뿐이었고, 이 분노는 그를 악한 스칼렛 위치로 변모시켰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한국의 막장극처럼 얽히고설킨 가족사와 치정 앞에 장사 없는 셈이다.

◇외로운 남자, 스트레인지

스티븐 스트레인지는 소위 ‘잘 나가는’ 남자였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신경외과 의사로서 부와 명예를 누렸다. 항상 슈퍼카를 타고 수천만 원이 넘는 시계를 찬다. 그에게 없는 것은 단 한 가지,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배려 즉 ‘싸가지’다. 그런 그는 고속 운전 중 진료 차트를 보다가 사고를 당해 메스조차 들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망가진다.

더 이상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릴 수 없었던 그는 네팔에 있는 성지(聖地) 카마르 타지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몸이 나았다고 믿도록 정신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에인션트 원의 제자가 된다. 오랜 수련을 통해 몸을 회복한 그는 신경외과 의사로 돌아가는 대신 뉴욕의 성지인 생텀을 지키는 마스터로 남는다.

이 과정에서는 그는 사랑하는 연인인 크리스틴 팔머를 포기한다. 시즌1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곁을 지키던 동료이자 연인이었으나 그가 매몰차게 대하던 인물이다. 결국 스트레인지는 ‘닥터 스트레인지2’에서 쓰린 속을 달래며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는 팔머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스트레인지는 감정을 배제한 일중독자이자 목표지향주의적인 인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트레인지의 목표는 ‘인류의 안녕’이라는 거대한 이상향이다. 대의를 위해 개인적 욕심을 포기한 셈이다. 그는 “너도 다른 멀티버스에서 팔머와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겠다”는 완다의 제안도 거절한다. 서로 다른 멀티버스 세계가 충돌하면 전 우주가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노스와의 대결 과정에서, 1400만605가지 경우의 수 중 인류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위해 타임스톤을 타노스에게 건네며 스스로 먼지가 되길 선택했던 스트레인지의 뚝심이 여기서도 발휘된다.

그러나 그 역시 한 여인을 위해 헌신하는 남자다. 이런 스트레인지의 진면목은 디즈니+의 또 다른 시리즈인 ‘왓 이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사랑하는 팔머를 포기하는 스트레인지와 팔머에 집착하며 사욕을 좇는 스트레인지로 나뉘어 대립한다. 대의를 이루기에 앞서, 그 역시 번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결국은 인류를 지키는 히어로로 남게 된 스트레인지의 속내를 드러내는 아이템이 있다. 그의 손목에 채워진 깨진 시계다. 시즌1에서 팔머가 준 선물이다. 이 시계의 뒷면에는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시간이 말해줄 거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영원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 시계를 분신처럼 차고 있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순정은 말없이도 드러난다.

‘닥터 스트레인지2’를 비롯해 스트레인지가 등장하는 MCU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가 있다. “현실을 훼손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마법으로 서로 다른 차원에 균열을 일으킨 것에 대한 경고다. 이 대가로 완다는 상상 속 가족조차 잃는다. 그리고 스트레인지는 팔머를 또다시 떠나보내야 했다.

마법을 사용하는 그 여자 완다와 그 남자 스트레인지는 인류를 구하는 히어로다. 하지만 영웅 이전에 두 사람 모두 인간이다. 개인의 행복과 인류의 안녕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족을 모두 잃고 폭주하는 완다의 모습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완다에 맞서 영웅의 삶을 고수하는 스트레인지에게 팔머는 말한다. “당신은 칼자루를 쥐어야 하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존경하지만, 사랑할 수는 없어.” 대의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사사로운 감정조차 거세당한 그 남자의 모습 또한 안타깝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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