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뒤의 편집자들 '나도 쓴다'

나윤석 기자 2022. 5. 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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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출판인들, 잇단 변신… 판매도 ‘날개’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의 출판계 삶 담은 ‘읽는 직업’

“저자에 반해 질문 던지다 글쓰기의 유혹에 빠져들어”

이윤주 한겨레출판 편집팀장 ‘어떻게 쓰지 않을수…’

“글쓰기로 ‘밥벌이 고충’ 표출…나를 일으켜 세운 힘”

문학동네 스타 편집자 이연실 ‘에세이 만드는 법’

“책을 내는건 자신에 대한 완전한 포트폴리오 만들기”

“저자가 자학할 때 끝까지 편이 돼주는 사람. 묵묵히 기다려 주는 사람. 그러나 도달해야 할 목표와 마감을 잊지 않도록 등대가 돼주는 사람.”

문학동네 스타 편집자로 지난 3월부터 사내 단독 브랜드 ‘이야기장수’를 이끌게 된 이연실 대표는 편집자를 이렇게 정의한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를 비롯해 ‘김이나의 작사법’ ‘걷는 사람, 하정우’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 산문집을 편집한 그는 지난해 ‘에세이 만드는 법’(유유)을 출간했다. 등대의 임무를 잠시 내려놓고 직접 뱃머리를 돌리는 작가가 된 것이다.

저자 뒤에 숨은 편집자로 일하다 자기 이야기를 풀어낸 이는 이 대표만이 아니다. ‘읽는 직업’(마음산책)의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위즈덤하우스)의 이윤주 한겨레출판 편집팀장, ‘책 만드는 일’(민음사)의 박혜진 민음사 편집자 등 여러 출판인이 새로 판 작가 명함과 함께 독자를 만났다. 편집자들의 에세이는 2030 여성을 공략하며 판매량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편집자들이 글을 쓰는 마음과 그들의 책이 잘 팔리는 이유를 알아봤다.

출판계에 편집자 책의 의미 있는 붐을 일으킨 건 2020년 9월 나온 ‘읽는 직업’이다. 이은혜 편집장이 쓴 책은 작가와 독자를 잇는 편집자의 삶을 담았다. 그는 15년간 편집자로 일하는 동안 책을 쓸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고를 끊임없이 읽으며 ‘저자와 같이’ 혹은 ‘저자에 반해’ 질문을 던지는 사유 속에서 “글쓰기 유혹에 빠져들었다.” 그는 “과거엔 편집자가 반드시 글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나 이젠 그 믿음이 바뀌었다”며 “편집자들이 직접 ‘내 글’을 쓰면 자신이 연마해온 사고와 문장을 드러내기 위해 여태까지 타인의 글을 읽고 다듬어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더미 같은 원고에 파묻혀 개성을 점점 잃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 것 역시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이다. 이 편집장은 “자기 저자를 최상으로 여기는 직업에 10년 이상 몸담으면 편집자만의 고유한 시선이 무뎌져 ‘날카로운 펜’이 아닌 ‘뭉툭한 색연필’로 변할 수 있다”며 “나쁘게 말하면 저자의 생각을 너무 쉽게 ‘선취’하는 버릇이 들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하반기 출간된 이윤주 편집팀장의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는 글쓰기를 통해 자아와 마음의 밸런스를 잡아나간 과정을 담담히 풀어낸다. 이 팀장은 “밥벌이 현장에서 ‘을’로서 겪은 고충을 ‘이불킥’ 대신 ‘글’로 표출하니 어느 정도 해소가 되더라”며 “출간을 위해 쓴 게 아니라 오직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SNS에 편하게 올린 글을 책으로 엮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일을 겪든 ‘이따 집에 가서 글을 쓰면 돼’라고 생각했다”며 “글을 쓴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을 언어로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희한하게 나를 일으켜 세웠다”고 돌이켰다. “정리하고 싶은 아픔, 일상을 흔드는 슬픔 등 어떤 마음들은 ‘쓰여야만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더라”는 얘기다. 이 팀장은 “편집자가 아니었다면 책 출간에 대한 부담이 더 컸을 것”이라며 “매우 다양한 사람이 각자 삶을 기록한 책들에 둘러싸인 편집자이다 보니 ‘내 목소리 하나쯤 보태도 괜찮겠다’고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이연실 대표의 ‘에세이 만드는 법’은 편집자를 위한 실무 지침서다. 제목 짓기와 보도자료의 기술부터 ‘생활인을 작가로 만드는 법’까지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담았다. 그는 “책을 만드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말하고 싶었다”며 “예술가의 정체성보다는 ‘직업인’으로서 나의 업(業)을 정리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책을 낸다는 건 자신에 대한 ‘완전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행위”라며 “처음 만나는 이에게도 직접 쓴 책을 통해 나를 설명하곤 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김화진 민음사 편집자처럼 소설 창작과 편집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다. 조해진 작가의 ‘단순한 관심’과 최진영 작가의 ‘해가 지는 곳으로’ 등을 편집한 뒤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김 편집자는 “학부 시절 소설 쓰기 수업을 들었을 땐 창작의 세계를 멀게만 느꼈다”며 “일을 통해 ‘나’와 ‘텍스트’의 거리감이 줄면서 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편집자들이 쓴 책의 판매량도 기대 이상이다.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는 3쇄를, ‘에세이 만드는 법’과 ‘읽는 직업’은 각각 4쇄·5쇄를 찍었다. 독자들의 호응에 ‘편집자의 일’(북노마드), ‘미치지 않고서야’(21세기북스) 등이 연이어 출간되면서 편집자 에세이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대해 이 팀장은 “핵심 독자층인 2030 여성을 중심으로 출판물이 ‘힙한 매체’로 인식되며 ‘책 동네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에세이 만드는 법’을 비롯해 ‘문학책 만드는 법’ ‘역사책 만드는 법’ 등 8종을 기획 시리즈로 출간한 조성웅 유유 대표는 “원래는 신입 편집자들이 참조할 만한 매뉴얼을 정리하는 취지로 기획했는데 책을 만드는 과정을 궁금해하는 고정 독자층이 형성되면서 판매량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편집자 출신 작가’에게 편집과 책 출간은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편집장은 장단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책을 낸 후 원고 연재 의뢰를 종종 받는다”며 “이전엔 좋은 책을 기획하기 위해 독서를 했다면 지금은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다”며 “자기 글에 집중하느라 ‘좁고 깊게’ 독서를 하면 편집자에겐 분명 단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외부 연재를 통해 얻은 아이디어가 출간 기획으로 이어지는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이 편집장은 “한 매체에 ‘책의 밀도’라는 연재를 하면서 ‘밀도 시리즈’를 기획해 다른 저자들과 함께 내년에 책으로 선보일 예정”이라며 “해당 주제로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기획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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