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이냐 근대역사공간이냐..문화재 성격에 달린 청와대 활용법

박상현 2022. 5. 1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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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지정땐 '경복궁 후원 회복'..근대역사공간은 '현대 건물 활용' 초점
보물 불상 경주 이전 요구도 재점화.."역사성 충분히 논의해 결정해야"
청와대 개방 후 첫 주말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청와대 개방 후 첫 일요일인 15일 오후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이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2022.5.15 superdoo82@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지난 10일 개방과 함께 권력 중심지에서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청와대에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관람객들은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이 일하고 거주하는 공간이었던 곳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도 건물 내부에 들어갈 수 없다는 아쉬움과 너무 많은 인파로 조경과 시설이 훼손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청와대 개방과 동시에 궁중문화축전을 열며 청와대를 사실상 관리하게 된 문화재청은 향후 활용 방안에 대해 "아직 구체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7일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계획을 수립해 발굴과 조사를 진행하려고 한다"며 "청와대 전체를 사적으로 지정할지, 아니면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등록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은 절, 성, 궁궐 터나 옛 무덤이 지정 대상이다. 청와대 남쪽에 인접한 경복궁이 사적이다. 근대역사문화공간은 면(面) 단위 등록문화재다. 전남 목포, 전북 군산, 경북 영주 옛 도심이 대표적 근대역사문화공간이다.

국가지정문화재는 보통 제작·형성된 지 100년이 넘은 유산을 대상으로 하지만, 등록문화재는 50년이 기준점이 된다. 또 국가지정문화재는 등록문화재보다 보존 규정이 엄격하고 활용 절차가 까다로운 편이다.

청와대가 사적으로 지정된다면 조선시대 후기 고종이 창덕궁 후원을 본떠 조성한 경복궁 후원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방안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근대역사문화공간이 되면 청와대가 현대 정치사 산물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 활용 계획의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궁금한 곳은 대통령이 살았던 곳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청와대 개방 후 첫 일요일인 15일 오후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이 관저를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2022.5.15 utzzza@yna.co.kr

문화계 일각에서는 청와대 본관, 관저 등 개별 건물을 활용하려면 사적 지정보다는 근대역사문화공간 등록이 효율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 내년부터 2026년까지 청와대 핵심 유적을 발굴하고 복원·정비하겠다는 계획을 포함했다. 이를 통해 훼손된 경복궁 후원의 역사성을 회복해 세계적 역사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대로 내년에 발굴조사가 시작된다면 주된 목적은 경복궁 후원 유구(遺構·건물의 자취) 위치와 규모 파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복궁 후원은 수궁(守宮)을 중심으로 서쪽에 농사를 짓는 경농재 영역, 북쪽에 휴식 공간인 오운각 영역, 동쪽에 융문당과 융무당이 있었다. 지금도 청와대 본관과 상춘재 사이에 수궁 터가 남아 있다.

경복궁 후원을 연구한 정우진 상명대 연구원은 경복궁 후원에서 핵심이 되는 장소를 오운각 영역으로 봤다.

정 연구원은 지난 13일 청와대를 답사한 뒤 보물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남쪽 암석에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각석(刻石·돌에 새긴 글씨)을 확인했다.

그는 천하제일복지 각석 주변에 물이 흘렀고, 주변 건물로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옥련정과 산기슭에 세운 오운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1989년 관저를 신축하면서 이전한 오운정 자리에 원래 옥련정이 있었고, 오운각은 보물 불상에서 남쪽으로 5∼10m 아래 지점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청와대를 고종 시기 모습으로 복원 중인 경복궁처럼 정비하지 않는다면, 발굴조사는 현대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관저 북쪽 구역에 한해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

또 발굴조사로 경복궁 후원의 역사성이 드러난다면 사적 지정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이미 사적으로 지정된 문화유산 중에는 '구 서울역사', '서울 고려대학교 본관', '서울 연세대학교 스팀슨관' 같은 근대문화재가 있어 사적 지정을 통해 경복궁 후원과 현대 정치 공간으로서의 역사성을 모두 지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 관저의 석조여래좌상 (서울=연합뉴스) 1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관저 뒤편 언덕에 보물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미남불)이 전시돼 있다. 2022.5.10 [인수위사진기자단] photo@yna.co.kr

청와대 정비의 또 다른 과제로는 1913년부터 고향 경주를 떠나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이전 문제가 꼽힌다.

경주 지역에서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맞춰 청와대 불상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움직임이 다시 일고 있다. 경주 시민단체는 25일께 대통령실에 불상 반환 청원서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불교계는 불상 이전에 앞서 유물의 역사적 가치와 본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터라 귀향이 조속히 이뤄질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청와대는 조선시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한민국까지 통치 공간으로서 연속성을 지닌 드문 유산"이라며 "건물 중 일부는 근현대사 통치 역사를 다룬 박물관으로 활용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청와대 역사를 고려할 때 사적 지정이 옳다고 보지만, 근대역사문화공간 등록도 불가능하지는 않다"며 "활용 계획을 짜기 전에 학계와 시민사회가 청와대의 역사성에 대해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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