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눈에는 자율주행차가 '이동식 감시카메라'로 보였다

곽노필 2022. 5. 1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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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경찰, 내부 교육 자료서 밝혀
"영상 기록 정보 이미 몇차례 수사에 이용"
지엠 크루즈의 자율주행차에 탑재된 카메라, 라이다 등 영상 및 음성 기록 장치들. 크루즈 동영상 갈무리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통당국은 지난 3월 구글 알파벳의 웨이모와 지엠의 크루즈에 유료 자율주행택시 사업을 승인했다. 안전 운전 요원을 탑승시키고 속도와 운행시간을 제한했지만, 이는 자율주행차를 일반 교통수단으로 공식 승인하는 조처라는 의미를 갖는다.

자율주행차에는 운행 중 주변에 있는 모든 것과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포착하는 비디오 카메라와 센서들이 여럿 장착돼 있다. 그런데 바른 길 안내와 사고 방지를 위한 이 장치는 로보택시로 쓰는 것 외에도 배달, 관광, 정찰, 구조 등 다양하게 용도를 확장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인권 활동가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달리는 감시카메라’다.

자율주행 시험주행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실제로 경찰이 자율주행차를 이동식 감시카메라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인터넷 미디어 <마더보드>는 정보공개 요청을 통해 확보한 샌프란시스코 경찰당국의 내부 교육용 자료에서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자율주행차 노트’라는 제목의 이 문서에서 “자율주행차는 주변 환경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이미 몇차례 수사에 쓰였다”고 밝혔다.

3쪽 분량의 이 문서는 경찰관이 자율주행차, 특히 안에 사람이 없는 자율주행차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담고 있다. 내용 중엔 ‘비상시가 아니면 차 문을 열지 말라’거나 ‘적법한 법 집행이 아닌 한 차량을 세우지 말라’와 같은 기본 수칙과 함께 운전자가 없는 차가 교통법규를 위반할 경우 법규 위반 딱지를 발부할지 등에 대한 지침이 들어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수사’(Investigations)라는 제목을 단 부분에서 경찰관에게 영상 수집의 유용성을 설명한 대목이다.

구글 웨이모의 자율주행차. 웨이모 웹사이트

자율주행업체들 “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 협조”

현지 인권활동가들은 이에 대해 경찰이 자율주행차의 영상 및 음성 기록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자율주행차의 기록 장치는 외부 통신 네트워크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차량에 장착한 고정식 기록장치 블랙박스와는 다른 차원의 정보 인권 문제를 안고 있다.

전자프런티어재단(EFF) 선임변호사인 애덤 슈워츠는 ‘마더보드’에 “일반적으로 자동차는 소유자 개인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지만 자율주행차는 차 주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기록한다”며 경찰이 자율주행차의 영상 및 음성 정보를 새로운 증거로 인식하는 건 매우 우려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차가 디지털 세상에 만연한 감시망의 범위를 확장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율주행차 업체들은 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웨이모 대변인은 ‘마더보드’에 “그런 요청은 유효한 법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며 “유효한 법적 근거가 없을 땐 요청을 거절하겠다”고 밝혔다. 크루즈 대변인은 “우리는 도로 안전이라는 공통목표를 위한 법 집행에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며 “영장이 유효할 경우 영상을 비롯한 다른 정보를 공유하고 공공안전이 위험할 경우엔 자발적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주행하는 크루즈의 로보택시. 크루르 동영상 갈무리

갈수록 설 자리 좁아지는 사생활 영역

‘마더보드’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경찰의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웨이모가 2017년부터 자율주행택시 시범운행을 했던 애리조나 경찰의 전례를 따랐다는 것이다. 다만 애리조나 경찰은 이것이 뺑소니처럼 교통 범죄가 발생한 경우에 한해 적용했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로보택시의 영상 및 음성 자료를 얼마나 자주 이용했는지에 대해선 밝히길 거부했다고 ‘마더보드’는 전했다.

갈수록 디지털화하는 자동차는 모든 운행 정보가 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중앙 서비에 저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도로 위의 스마트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정보 역시 익명 처리를 전제로 하긴 하지만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제3자에게 판매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의식하면서 운전하는 이는 거의 없다.

지엠 크루즈는 최근 로보택시 운행 구역을 샌프란시스코 전체의 70%로 넓혔다. 왼쪽은 이전 서비스 구역, 오른쪽은 새로 확장된 서비스 구역. 크루즈 제공

기존의 고정 감시카메라와 자율주행차같은 이동식 감시카메라가 결합된다면 현대 도시 생활에서 개인의 사생활 영역(프라이버시)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슈워츠는 “두 감시카메라 네트워크의 결합은 부분의 총합보다 훨씬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루즈는 최근 로보택시의 운행 구역을 샌프란시스코 전체의 70%로 확장했다고 발표했다. 크루즈의 카일 보그트 대표는 현지 언론에 “더 많은 사용자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서비스 지역과 운행 시간, 차량 대수를 지속적으로 늘려가겠다”고 말했다.

로보택시 업체와 경찰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경우 로보택시의 운행 지역 확장은 경찰의 수사 자료 협조 요청을 늘리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결국 정보 인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율주행차가 가져올 미래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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