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애·잔나비 최정훈, 한 노래 두 해석 '동곡이몽'

서정민 입력 2022. 5. 17. 09:06 수정 2022. 5. 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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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익·동희 남매 '투 트랙 프로젝트'
두번째 곡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한영애 "바닥까지 간 뒤의 카타르시스"
최정훈 "스스로를 토닥이듯이 불러"
한 노래를 두 가수가 부르는 ‘투 트랙 프로젝트’에서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를 부른 한영애(왼쪽)와 잔나비 최정훈. 나무뮤직·페포니뮤직 제공

작사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조동희는 어릴 적 만화책 <유리가면>에서 한 배역을 서로 다르게 연기한 두 연극배우 이야기를 보고 설렜다. 그것은 경합이 아닌, 예술의 본질 같았다. 같은 대상의 다른 해석이야말로 예술이 지향해온 지점일 터. ‘이처럼 한 노래를 다른 두 가수가 부르면 어떨까?’ 그가 막연히 꿈꾸던 장면이 실현됐다. 조동익(작곡)·조동희(작사) 남매가 최근 시작한 ‘투 트랙 프로젝트’다.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는 명곡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장필순 5집·1997)를 합작했던 남매는, 그에 못지않게 생명력이 긴 노래를 만들고자 의기투합했다. 프로젝트 첫 곡 ‘연대기’를 정승환과 장필순이 각각 불러 지난 3월 발표했다. 그리고 두번째 곡이 뒤를 이었다. 밴드 잔나비의 최정훈이 지난달 18일 발표한 데 이어 한영애가 15일 발표한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다.

두 사람을 14일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삼청동과수원에서 만났다. 둘이 서로 마주한 것도 이날이 처음이다. 최정훈은 “어릴 때부터 ‘조율’을 정말 좋아했다. 그 노래만 들으면 왠지 눈물이 났다. 이를 부르신 선배님을 꼭 만나뵙고 싶었다”며 감격해했다. 한영애는 “녹음하기 전에 일부러 최정훈 버전을 안 들었다. 녹음 끝낸 뒤 들어보고는 내가 그랬다. ‘이 사람 보이스가 왜 이렇게 아름다워?’ 그 목소리의 소유자를 만나니 떨린다”며 웃었다.

잔나비 최정훈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왼쪽)와 한영애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디지털 싱글 표지. 최소우주 제공

조동희는 “불규칙적 통증처럼 한동안은 그럴 거야/ 가슴 한켠이 답답하고 먹색일 거야”로 시작하는 가사를 먼저 써서 오빠에게 보여줬다. 조동익은 “‘나의 외로움이…’보다 더 좋다”며 토씨 하나 안 빼고 고스란히 노래로 만들었다. 조동희는 평소 작사도 잘하는 후배로 눈여겨보던 최정훈을 떠올렸다. 이 노래 감성을 잘 표현할 것 같아서였다. 기꺼이 수락한 최정훈은 이별 뒤 “다시 빈 몸이 될 때까지”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견디고 비워내는 과정을 힘 빼고 담담히 노래했다. “제가 정말 쓰고 싶었던, 담백하면서도 다른 맛이 나는 가사였어요. ‘내가 부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불러보니 재밌어서 (녹음을) 더 하고 싶었어요. 노래 부르는 맛이 참 좋았죠.”(최정훈)

조동희는 최정훈의 아우라를 이어받을 상대로 한영애를 떠올렸다. ‘투 트랙 프로젝트’를 처음 구상할 때부터 염두에 뒀던 가수다. “‘두 가수를 비교하나?’ 하는 생각에 처음엔 안 한다고 했어요. 근데 곡을 잘 들어보니 참 좋더라고요. 내가 믿는 뮤지션 조동익과 조동희가 한다는 사실에 믿음도 갔고요. 무엇보다 요 몇년 새 본격적으로 음악 작업을 재개한 조동익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컸죠.”(한영애) 그는 묵직한 감정을 꾹꾹 눌러 압착하듯 노래했다. 조동희는 “노래를 듣고는 뜨거운 칼에 가슴을 푹 찔린 것 같았다”고 했다.

“사실 이 노래는 저와 안 어울려서 좀 힘들었어요. 가사를 흥얼대면서 ‘난 왜 안 슬프니?’ 했어요. 정서가 슬프게 가다가도 정신 차리게 하는 지점이 있었죠. 결국 바닥까지 가고 나면 그 안의 슬픔, 그리움 같은 감정들이 말끔히 씻겨나가 아무것도 안 남게 되는, 그런 카타르시스를 주는 노래랄까요. 어떻게 부를지 고민하며 노래를 거듭하니 점점 나아지더군요.”(한영애)

한 노래를 두 가수가 부르는 ‘투 트랙 프로젝트’에서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를 부른 한영애. 나무뮤직 제공

“타이밍이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게, 제가 (여러 안 좋은 일들로) 바닥을 찍었을 때 이상하게 기분이 좋고 편안함을 느꼈거든요. 그즈음 이 노래 가사를 받았어요. 제 자신과 겹쳐지면서 슬프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 자신에게 불러준다는 생각으로 노래했어요. 그렇게 스스로를 토닥이니 울컥하게 되더라고요.”(최정훈)

지난 2년여간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온 이들은 이제 다시 뛰어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잔나비는 지난 10일 새 음반 <잔나비 소곡집 Ⅱ: 초록을거머쥔우리는>을 낸 데 이어, 14일 음악축제 ‘뷰티풀 민트 라이프’ 무대에 섰다. 최정훈은 “코로나 때는 내가 사라진 느낌이었다”며 “코로나 이후 처음 하는 공연이라 너무 흥분해서 넘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올여름 밴드의 다른 멤버들이 제대하면 공연과 정규 4집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 노래를 두 가수가 부르는 ‘투 트랙 프로젝트’에서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를 부른 잔나비 최정훈. 페포니뮤직 제공

한영애도 “코로나 기간에 공연을 기획했다가 두번이나 무산됐다”며 “어떤 것을 꿈꾸지 않게 된다는 점에 놀랐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연습을 그만두는 법이 없었다. “노래뿐 아니라 체력을 키우고, 미술관에 다니고, 영화를 보고, 물 보며 멍때리는 것도 다 연습”이라는 그는 9월23~24일 단독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앨범인 정규 7집도 구상 중이다.

‘투 트랙 프로젝트’도 계속 달린다. 7월에 나올 세번째 곡을 부를 가수로는 이효리가 먼저 정해졌다. 상대 남자 가수는 적임자를 찾는 중이다. 조동희는 “같은 가사인데도 스토리가 다르게 다가오도록 가수 성별과 세대를 서로 다르게 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년여에 걸쳐 모두 8곡에 16명의 가수가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일단락되면 앨범으로 묶어서 낼 예정이다. 최정훈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정말 영광이었고, 앞으로 나올 노래도 궁금하다”며 “다음 프로젝트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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