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왜 '테스형'에 열광하는가

맹성현 KAIST 디지털 인문사회과학센터장 2022. 5. 1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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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성현 KAIST 디지털 인문사회과학센터장

'미래는 다를 것이라는 것 외에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경영학계의 거장 피터 드러커가 남긴 이 유명한 말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척 절실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되묻는다면 '각자 도생'이라는 무책임하게 들리는 답이 돌아올 것만 같다. 극도로 다변화된 세상에 미래 예측마저 불가능하니 미래에 대한 구체적 조언을 하는 것은 누구라도 쉽지 않다. '프로게이머', '디지털 장의사', '동물간호복지사'와 같은 새로운 직종이 속속 등장하는데 전통을 고수하는 대학의 학과와 연결시켜 진학지도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섣부른 조언은 하지 말라고도 하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진다. 가수 나훈아가 '세상은 왜 이래'하면서 '테스형'을 노래하고 기성세대가 이에 공감하는 것은 이런 변화의 물결을 익히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 도생'의 필요성은 국제 정치나 경제 상황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에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가 외국의 지원을 받긴 하지만 전쟁을 스스로 감내하고 이겨내야 하는 슬픈 현실을 우리는 매일 목도하고 있다. 영원할 것 같던 세계화의 물결도 트럼프와 같은 정치인의 영향과 심화되는 보호무역의 흐름으로 역주행하고 있어 국가차원에서의 '각자 도생'도 현실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불확실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개인 차원에서는 우선 '테스형(소크라테스)'의 혜안에 따라 '나'를 찾아 가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끝없는 변화의 물결에 질식되지 않으려면 삶의 방향성을 위한 철학이 필요하겠다. 중심을 잡고 있으면 각론은 의외로 쉬워질 수 있으리라. 국가나 집단 차원에서는 '우리'를 이해해야 공존이 가능하다. 개인의 성찰을 위한 인문학과 집단을 다루는 사회과학이 필요한 이유다. 변화를 주도하는 하이테크의 이해와 인간 중심의 깊은 사고 간의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나'와 '우리'를 알지 못하면서 신기루와 같은 하이테크를 쫓아 가는 것은 브레이크 없는 차를 모는 것과 같은 위험이 뒤따른다. 알고리즘의 책임소재, 플랫폼의 신뢰, 인공지능의 윤리 등 기술 중심 사회에 산적한 이슈에 대해 '나'와 '우리'를 모르면서 제대로 대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객관적 사실에 기반해 견고한 사고를 해야 하는 과학기술인에게 인문학이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바로크 시대 철학자 데카르트가 저술한 '방법서설'은 '나'를 이해하기 위한 지적 탐구 과정의 극한을 보여준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혼란으로 점철된 바로크 시대에 데카르트는 거침없는 질문의 사슬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존재 마저도 의심을 하는 깊은 사유의 과정을 거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를 관찰하는 '메타인지'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사유의 과정은 정답 잘 맞추기 교육보다 질문을 잘 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함을 깨우쳐 준다.

인문학이 요구하는 사고의 '유연성'은 불확실한 세계를 헤쳐 나가는데 필수적이다. 다양한 질문과 함께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실험적 사고의 과정을 거치는데 익숙해 지면 어떤 도전적 문제라도 실마리를 찾기가 쉬워진다. 교육철학자 존 루이스가 주창한 '행함을 통한 학습'도 다양한 경험을 자각하고 인지하며 성찰하는 훈련 과정을 통해 유연한 사고의 습관을 형성시켜 준다. 사전에 만들어 놓은 공정을 따라가는 하드웨어적 사고로 개발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다. 진행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소프트웨어적인 창조 프로세스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고의 '유연성'은 실패를 통해 나 자신을 알아 나가면서 내공을 키우는 '스타트업 마인드'와도 궤를 같이 한다. 불확실한 세계에서의 성공 신화는 대부분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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