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둘러싼 갈등, 尹정부 첫 '뇌관'되나
(지디넷코리아=김양균 기자)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전운에 휩싸여 있다. 지난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 처리 때문이다. 법안이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만을 남겨두게 된다.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는 법안의 폐기를 요구하며 총집결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을 위한 최근의 국회 논의는 지난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3당이 간호법 제정 추진을 약속하면서 시작됐다. 1년 후인 작년 3월 25일 여야는 간호법안을 발의했다.
8개월 후인 그해 11월 24일 복지위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1차 회의가 열리며 여야간 제정 논의의 물꼬가 트였다. 이어 올해 2월 2차 회의, 4월 3차 회의가 진행됐다. 3차 회의에서 간호법 조정안이 마련됐고, 이달 9일 4차 회의에서 마련된 제정안이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하필이면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날 법안소위에서 법안이 통과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의사협회는 국회가 보건의료계와의 논의를 이른바 ‘패싱’했다며 ‘졸속결정’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은 “법안소위 소속 여야 의원 모두 3차 회의에서 이미 합의했던 간호법 조정안을 4차 회의에서 통과시킨 것을 놓고 의사협회가 간호법 국회 법안소위 기습통과니, 날치기 졸속처리 운운하는 것은 억지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의사협회는 간호법을 잘못된 보건의료정책으로 규정한다.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 직역의 이익 추구를 법이 보장하게 되는 역작용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한다. 또 간호법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동시에 우리나라 의료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대한간호협회를 중심으로 한 ‘간호단독법제정추진범국민운동본부’는 간호법 제정 취지가 ‘국민 건강 증진 이바지’임을 들어 의사협회의 주장을 반박한다. 이들은 간호법이 특정 직역의 이해관계와 무관하며,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을 위한 법안인 만큼 조속한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간호법이 뭐길래
현재 국회 복지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은 김민석(더불어민주당)·서정숙·최연숙(국민의힘) 의원들이 각기 대표발의한 간호법안과 간호·조산사법 제정안 등 3건을 병합한 수정법안이다.
총 4차의 소위 회의를 거치며 법안은 조금씩 수정됐다. 법안소위 통과 시 ‘간호사의 업무범위’가 현행 의료법에서 정한 간호사 업무규정을 따르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즉, 법적으로 간호사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활동하는 진료 보조라는 것.
당초 세 명의 의원들이 대표발의한 법안들에는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의사 처방에 따라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시행토록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즉, 간호사의 독자 영역을 허용한 것. 특히 의사협회는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나머지 주요 내용은 ▲요양보호사·조산사는 간호법 적용범위에서 제외 ▲간호법 우선 적용 규정 삭제 ▲의료기관의 책무 규정 삭제 ▲실태조사 삭제 ▲표준근로지침 의무 규정 삭제 ▲‘교육전담간호사’의 간호법 명문화 ▲간호인력지원센터 관련 업무 명시 ▲법정 단체에 간호조무사협회 포함 및 경과 규정 마련 등이다.
최초 법안에서 여러 법 조항이 삭제됐음에도 의사협회는 간호법 제정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급기야 집단 파업 투쟁 주장까지 나오자 법안을 발의한 의원 중 한 명인 김민석 복지위원장은 16일 “의사단체는 국민 눈높이에 맞게 행동하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던 수술실 CCTV 반대에 이어 다시 국민 다수가 찬성하는 (간호)법에 대한 (의사협회의) 비합리적 반대”라며 “국민 다수가 거부하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사단체의 잇단 지지성명과 찬사가 쏟아진 뒤라, 국민 눈높이와 정반대로 가는 의협의 모습은 눈에 익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집단행동 이전에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과 눈높이부터 맞추길 바란다”며 의사협회가 자중할 것을 요구했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도 “파업 등 강력투쟁에 나서겠다는 것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아직 찻잔 속의 태풍이지만
이렇듯 의료계가 둘로 쪼개져 다투는 쟁점 사안임에도 아직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는 높지 않다. 복잡한 법 구절과 직능단체의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사안인 탓이다.
관련해 지난 15일 서울시의사회에서 ‘간호법 제정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대표자 궐기대회’가 열렸다. 국회 앞 가두시위도 진행됐지만 여론은 그리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생성된 뉴스의 건수다. 지난 9일부터 16일까지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인 ‘빅카인즈’를 통해 ‘간호법’ 관련 뉴스를 분석했다. 신문·방송·인터넷 등 종합일간지 및 경제지, 신문, 방송 등 54개 매체가 생산한 뉴스는 74개.
연관어를 워드클라우드로 보면, ‘의사’와 ‘간호사’의 연관어는 대등하게 등장하고 있었다. 뉴스가 여론의 관심도를 간접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간호법을 둘러싼 의사와 간호사의 대립은 아직 ‘찻잔 속의 태풍’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의료서비스가 우리 삶과 직결되는 사안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 완전히 주목받고 있지는 않지만, 사안의 폭발력은 작지 않다. 간호법이 만들어지면 의료서비스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의사들은 미래의 발생 가능한 역작용을, 간호계는 작금의 의료 시스템의 개선 필요성에 방점을 둔다.
결국 어느 한 쪽의 유불리를 따지기에 앞서 의료소비자는 해당 사안을 의료체계의 변화와 그로 인한 소비자의 이득 여부로 따지게 된다. 정권 입장에서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사회적 갈등의 촉발이 달갑지 않다.
다시 말해 의사와 간호사의 대결구도로만 비추어지고 있는 해당 사안이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과 정권까지로 확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된 간호법 제정안 처리 여부에 관심을 두는 이들은 의사단체와 간호계에 국한되지만, 향후 국회의 결정은 더 많은 이들이 ‘참전’하는 우리사회의 또 다른 뇌관으로써 작동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김양균 기자(angel@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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