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자유! 자유! 자유!

송옥진 2022. 5. 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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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자유로운 선택을 가장한 사용자의 강요다.

우리는 주 52시간을 일하더라도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자유(권리)가 있다.

우리는 돈이 없어도 부정식품을 먹지 않을 자유(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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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인생의 책으로 꼽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 표지.

우리 동네 쓰레기차는 새벽 2시쯤 온다. 쓰레기 수거 시간을 낮으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온 지 한참 전인데, 변화가 더디다.

2년 전쯤, 환경미화원의 야간 근무에 대해 취재한 적이 있었다. 환경미화원이 밤에 일하다 발생한 안전 사고로 다치고 죽는 일이 빈번할 때였다. 당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한 곳만 주간 근무였기에, 각 자치구와 용역 업체(구별 용역 업체가 달라서 쓰레기 수거 시간도 구별로 다르다)에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물었다. 낮에 쓰레기를 수거하면 소음, 냄새 등 민원이 심해서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예상했던 답변 뒤에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기다리고 있었다. "본인들도 낮에 일하기 싫어해요. 밤에 일하기를 원해요."

임금 때문이라고 했다. 밤 10시 이후 일하면 야간수당이 50% 더 붙는다. 주간 근무로 돌리면 그만큼 돈이 줄어든다. 기사 쓰기가 갑자기 애매해졌다. 본인들이 자유 의지에 따라 밤에 일을 하겠다는데, 문제없는 거 아닐까. 얼마 뒤 노조 관계자랑 이야기하다 알게 됐다. "누가 좋아서 그러겠어요. 임금이 워낙 짜니까, 그나마 야간 수당이라도 받으려고 밤에 일하는 거죠." 진짜 문제는 자발적으로 야간 노동을 선택하게 만든 낮은 임금 구조였다는 사실을.

자유라는 아름다운 단어는 종종 구조적 착취를 감추기 위한 수사가 된다. 기득권에게 부름 받을 때 주로 그렇다. 일한 만큼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임금 체계 속에서 근로자는 밤샘 노동과 과로를 '선택'한다. 자유로운 선택을 가장한 사용자의 강요다. 이때 자유는 근로계약서에 사인하고 동의하는 그 행위 자체에만 허용될 뿐이다. 그런데도 '네가 자유롭게 선택했으니 결과도 네 책임'이라고 떠넘기기 일쑤다. 돈 많이 벌려고 욕심부려 일하다 다치고, 병들고, 죽은 사람으로 몰고 간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 예찬은 일찌감치 예견됐다. 후보 시절에는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월급 받고도 일할 사람이 있다"거나 "주 120시간을 바짝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홍역을 치렀다. 당선인 신분일 때는 전경련과 만난 자리에서 "공무원들이 말도 안 되는 규제하려고 갑질하면 바로 전화하시라"고도 했다. 취임사에는 자유라는 단어가 35번 들어갔다. 공적 발언의 역사로 미루어 봤을 때, 그의 자유는 다른 누군가의 자유를 억압할 여지가 있다. 윤 대통령은 인생의 책으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꼽는다. 프리드먼은 규제, 납세에 극도로 부정적이었던 자유지상주의자다.

공정을 기치로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자유지상주의를 외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이런 자유는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30여 년 전 사라졌다가 2022년 신년 벽두에 부활한 '멸공'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라면 지나칠까. 공교롭게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윤 대통령의 취임사를 듣고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유! 자유! 자유!"라고 연호하며 기쁨으로 화답했다. 이러한 자유론에 반대한다. 우리는 주 52시간을 일하더라도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자유(권리)가 있다. 우리는 돈이 없어도 부정식품을 먹지 않을 자유(권리)가 있다. 새 시대의 자유론은 다시 쓰여져야 한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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