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보수 후보 차라리 추첨하라”

곽수근 여론독자부 차장 2022. 5. 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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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 중도·보수 교육감 단일화 토론회/뉴스1

작년 12월 대선 기간에 ‘추첨제’가 잠깐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당시 한 대선 후보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한 화상 대담에서 대학 입학 추첨제에 공감한다고 말하면서였다. 대입 추첨제는 샌델 교수가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명문대 지원자 대다수는 누가 합격해도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제안한 것이다. 지나친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다소 도발적 주장이었는데, 국내에선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우리 교육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때아닌 추첨제가 요즘 교육계 일각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적용 분야가 대입이 아니라 선거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교육감 선거를 보름쯤 앞두고 보수 후보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추첨을 통해서라도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서울시교육감 중도·보수 단일화는 여론조사와 선출인단 투표의 공정성 등이 논란이 되면서 일부 후보가 이탈해 유명무실해졌다. 중도·보수 후보들은 분열과 갈등을 이어가다 4명이 후보 등록을 마쳤다.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19일이 단일화 마지노선으로 꼽힌다. 이튿날부터는 교육감 투표용지가 인쇄되므로 그 이후에 단일화가 돼도 보수 진영의 사표(死票)를 피할 순 없다.

벌써부터 학부모들 사이에선 보수 진영의 선거 승리는 물 건너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선에 도전하는 조희연 교육감의 인지도에 비해 현재 후보 등록한 보수 진영 4명 인지도는 초라해 누구로 단일화하더라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 동작구의 한 중학생 학부모는 “조 교육감은 현직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해 임기 내내 각종 행사를 통해 표밭을 착실히 다져왔다”며 “보수 후보들이 단일화가 곧 승리라고 여기는 것도 큰 착각인데, 단일화마저 안 하니 다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보수 후보로 등록한 분들 중에 교육감직을 해내지 못할 사람은 없을 정도로 능력의 차이는 없어 보인다”며 “촉박한 시일 내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합의가 어렵다면 추첨이라도 해서 결론을 내야 한다”고 했다. 후보들이 단일화 조건 따지느라 골든타임을 놓칠 바에야 추첨으로 결과를 도출하자는 것이다.

보수 진영 후보들은 오죽하면 추첨제 제안까지 나오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좌편향 교육 정책에 제동을 걸려면 후보들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는 절박한 단일화 요구가 담긴 것으로 봐야 한다. 서울의 한 교사는 “솔로몬이 서로 자기 아기라고 다투는 두 여인에게 ‘아기를 반씩 나눠 가지라’고 판결했을 때 아기를 포기한 여인이 진짜 어머니였다”며 “단일화를 위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는 후보가 진정으로 학생들과 교육을 위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앞으로 이틀간 아기를 살릴 수 있을지 여부가 후보 네 명에게 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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