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3 딸은 공무원 아빠의 참극을 이제야 알았다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강주안 입력 2022. 5. 17. 00:34 수정 2022. 5. 2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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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논설위원

연일 수십만명의 코로나19 환자 발생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진 북한을 바라보는 A씨의 마음은 참담하다. 1년 8개월 전 북한은 A씨의 남편을 총으로 쏴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코로나19를 막는다는 이유였다. A씨는 2020년 9월 22일 북한 해역에서 북한군에게 참변을 당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의 부인이다. (※채무 관계로 법적 이혼했으나 사실상 부부라고 설명한다.)

그는 북한 못지않게 당시 사건을 ‘월북’으로 발표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분노가 크다. 경남 양산에 사는 A씨는 퇴임 후 가까운 곳에 정착한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심경이 복잡하다.

■ 북한에 살해된 공무원 가족 분노
딸에겐 "뉴질랜드 근무" 속여와
자료 못 보게 한 지난 정부 원망
도움 약속한 윤석열 대통령 기대


이씨의 가족들은 사건 당시 청와대가 받은 보고서 등을 보게 해달라고 정부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 기밀을 제외한 문건은 열람할 수 있다는 1심 판결이 나왔지만, 정부가 항소하는 바람에 또 좌절했다. 항소심 진행 중 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대통령 기록물’로 묶여 15년간 못 볼 처지에 놓였다.


'대통령 기록물'에 15년 묶여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A씨에겐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A씨는 지난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 1월 윤 대통령이 우리 가족을 직접 만나줬다”며 “내가 ‘문 전 대통령이 양산에 오면 찾아가겠다’고 했더니 윤 대통령이 만류하면서 도움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월북자’라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벗어야 한다”며 “초등학교 3학년인 딸에겐 차마 아빠의 죽음을 말하지 못해 뉴질랜드에서 일하는 중이라고 말해왔다”고 했다.

이씨의 비극은 지난 5년간 출렁였던 남북 관계의 한 단면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남북 관계는 더 크게 요동쳤다. 그 흔적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지난 3일 오후 3시쯤 인천 강화도 북단의 평화전망대를 찾았다.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씨의 참극이 벌어지기 두 달 전 이 지역에서도 큰일이 터졌다. 탈북자 김모씨가 7월 18일 인근 연미정 배수로를 통해 바다로 들어가 북한으로 헤엄쳐 간 사건이다.

지난 3일 오후 인천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모습. 맞은 편에 보이는 하얀 건물들은 리모델링한 농가로 코로나19 이전에 공사가 끝났다. 강주안 기자

전망대엔 시민 20~30명이 찾아와 북쪽을 관찰했다. 중ㆍ장년 방문객이 많다. 북한 마을에 줄지어 선 하얀 건물들이 눈길을 붙든다. 김경애 문화관광해설사는 “농가를 리모델링한 것”이라며 “앞쪽 건물들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 공사가 끝났고 코로나 시기에도 오른쪽 마을에서 리모델링 작업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김 해설사는 “이곳이 북ㆍ중 국경에서 멀고 외부인 접촉이 없어서 그런지 북한 쪽은 코로나 시기에도 항상 비슷한 모습”이라고 덧붙인다. 큰 사건이 터지면 오히려 우리 쪽 전망대가 붐빈다. 연미정 탈북 사건 땐 호기심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전망대 1ㆍ2층엔 전시실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직 대통령의 통일 정책을 간략히 소개한 세움 간판을 지나 남북 교류를 보여주는 전시 공간에 들어서자 의아한 대목이 눈에 띈다. 남북 협력의 역사를 정리한 전시물에서 민주화 정부 이후로 김대중ㆍ노무현ㆍ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진과 관련 내용만 걸었다. 김영삼(YS)ㆍ이명박(MB)ㆍ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이뤄진 북한과의 교류 내용은 보이질 않는다.


전시물 바뀐 강화 평화전망대


문재인 정부 초기만 해도 달랐다. 2019년 12월까지도 MB 정부가 북한에 신종플루 치료제를 전달한 내용(2009년 12월 18일)이 게시돼 있었다. YS 시절 대북 쌀 지원(1995년 6월 25일), 박근혜 정부 때 북한 선수단의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참가(2014년 10월 11~25일) 등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이후 교체한 전시물에선 이런 내용이 사라졌다. 대신 문 전 대통령이 2017년 7월 6일 독일에서 밝힌 ‘베를린 구상’이 사진과 함께 전시됐다. 남북체육 분과회담(2018년 11월 2일, 12월 14일), 남북보건의료 분과회담(2018년 11월 7일), 항공 관련 남북 간 실무회의(2018년 11월 16일) 같은 내용을 상세히 적었다.
전시 등을 담당하는 강화군청 관계자는 “노후한 전시물을 전체적으로 바꾸면서 용역사와 협의해 만든 것”이라며 “특정 정권이나 정부를 부각하거나 숨기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척 거리인 강화도는 탈북 루트일 뿐 아니라 북한 간첩의 침투 경로이기도 하다. 1995년 10월 ‘부여 무장간첩’ 사건의 김동식씨가 대표적이다. 친북 세력 구축을 위해 남북을 오간 김씨는 강화도를 루트로 활용했다. 그는 부여에서 경찰과 총격전 끝에 다리에 총을 맞고 생포됐다. 당시 김씨는 심문 과정에서 훗날 정계 거물로 성장한 남한 인사들과 접촉한 사실을 밝혀 파문이 일었다.
간첩 검거 작전 중 부여경찰서 장진희 경사가 김씨의 총에 맞아 순직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엔 시민들이 경찰박물관에서 찍은 장 경사 부스 사진과 추모글이 많이 올라있다. 특히 총탄에 맞아 왼쪽 흉부를 심하게 다친 엑스레이 사진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지난 10일 오후 3시쯤 서울 종로구에 있는 경찰박물관을 찾아갔다. 원래 서대문역 근처에 있던 박물관을 지난해 이곳으로 이전했다. 다양한 체험형 전시물이 눈에 띄었다. 20대로 보이는 청년들이 많이 찾아왔다.
순직 경찰관 전시물은 4층에 있다. 최규식 경무관, 차일혁 경무관 등 네티즌 게시물에서 본 인물들이 전시돼 있다. 그런데 장진희 경사의 부스가 보이질 않는다.

한쪽에 설치된 순직 경찰관 검색 모니터에서 ‘현직 경찰관이 뽑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직 경찰관’ 메뉴에 들어가니 장 경사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많은 시민이 추모하는 장 경사 부스를 왜 없앤 것일까.


간첩 잡다 순직한 경찰관 부스 사라져


경찰박물관 담당자는 “특정 인물만 빼고 더하는 식이 아니라 상설 전시에 따라서 주기적으로 바꾼다”며 “시대 흐름에 따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게시물을 결정할 때 연구팀뿐 아니라 경찰청이나 외부 자문위원의 의견을 구한다는 설명이다. 장 경사의 엑스레이 필름 등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이 담당자는 “순직 경찰관 수가 많아 순환 전시하는 식으로 운영한다”고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2013년에도 장 경사에 대한 시민 추모글과 부스 사진이 올라와 있다. 최소한 9년 전부터 전시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이어지는 남북문제가 새 정부 출범으로 새 국면을 맞았다. 전국의 많은 남북 관련 전시물들이 예산을 쓰며 변신할 것으로 예상한다.

해수부 공무원 이씨의 가족도 변화를 맞게 됐다. 유족 측 김기윤 변호사는 “이르면 금주 중 이씨의 사망을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신을 찾지 못했지만, 실종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 이제서야 공식 사망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이씨의 형인 이래진씨는 행정 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했음에도 지난 정부의 대통령 기록물 지정 결정으로 열람이 어렵게 된 자료를 확인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NK비즈포럼에서 “당시 북한에서 누구도 결정하기 힘든 상황에서 기존에 하달한 명령에 따라 북한군이 해수부 공무원을 사살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2020년 9월 북한군의 총격으로 살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의 아들을 만나 위로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이씨 아들 휴대전화에 남은 이씨와의 마지막 통화 기록. 이 통화 직후 이씨는 실종됐다. [유족 제공]

A씨와 아들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A씨는 지난 15일 통화에서 “세 번이나 약속하셨으니 꼭 억울함을 풀어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으려는데 A씨가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한다. 그는 “지난번 통화에서 딸에게 숨기고 있다고 했는데 어제(14일) 딸에게 ‘사실은 아빠가 나라를 위해 일하다 바다에 빠졌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자꾸 아빠를 찾는데 더는 희망고문을 할 수가 없다”며 “아이가 많이 울더니 ‘이제 기다리지 않을게’라고 했다”고 말했다. 월북 누명을 벗은 뒤 딸에게 설명하려던 계획은 실패했다. A씨는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지기만 바랄 뿐”이라고 했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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