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05] 챗봇에 거짓말 더 쉽게 하는 이유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2. 5. 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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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사로도 종종 접하는 ‘거짓말이 아니면 내 눈을 보고 말해 봐’란 말이 실제 거짓말 여부를 판정할 때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답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할 때 대개 죄책감이라는 감정 반응이 일어나 상대의 눈을 피하고자 하는 회피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음이 불편해 상대방 눈을 피하고픈 것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거짓말로 인한 불편한 감정 반응은 동공의 크기가 변하는 것을 우스개로 표현한 ‘동공 지진’ 같은 생리적 반응도 일으킨다.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회피 행동이 나온다고도 볼 수 있다.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말할 때 일어나는 감정 반응에 의해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생리적 반응의 변화를 활용한다. 죄책감 같은 감정 반응이나 그에 따른 생리적 변화가 미미한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마음이나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불편한 감정 반응이 적게 일어나야 더 쉽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계와 사람 중 어느 쪽에 거짓말하기가 쉬울까. 최근 한 해외 연구를 보면 기계에 거짓말을 더 쉽게 한다는 것이다. 기계에 왜 거짓말을 해야 하나 싶지만, 사람이 아닌 기계와 소통하는 횟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온라인 서식이나 챗봇(대화 서비스 로봇) 같은 ‘디지털 인터페이스’와 소통하는 일이다.

연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동전 던지기 결과에 따라 금전적 보상을 주겠다고 한 뒤, 동전을 던지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자발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는데, 한쪽 그룹은 화상 통화나 문자 전송을 통해 사람에게 하도록 했다. 반면 다른 그룹은 동전 던지기 결과를 기계, 즉 음성 지원 챗봇, 온라인 서식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결과는 챗봇 등 디지털 인터페이스로 보고했을 때 결과를 속이는 경우가 2배 더 많았다. 온라인 서식 제출보다 챗봇이 더 사람과 소통하는 느낌을 주기에 거짓 보고를 덜 할 것 같은데, 둘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대화 상대가 기계임을 인식하면, 소통 기술이 사람과 더 유사하다고 거짓말을 덜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짓말할 의도가 있는 사람이 더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선택하는 경향도 보였다.

이런 연구 결과는 ‘자신에 대한 평판 관리’ 때문에 상대방이 기계인지 사람인지에 따라 거짓말하는 정도가 달라지는 것으로 해석됐다. 사람에게 거짓말하면 자신의 평판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기계를 상대할 때보다 거짓말을 덜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기계보다 사람에게 거짓말하기를 꺼린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도 거침없이 거짓말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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