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백의자유롭게세상보기] 대학 신입생에게 배우는 정책의 본질
특목고 폐지 등 현장과 괴리 드러나
위정자 뜻만으로 정책 입안 안 돼
여론수렴·숙려과정 통해 집행돼야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필자는 1학년 수업을 가장 좋아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신입생의 거칠지만 솔직한 생각이 필자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편협한 사고를 일깨우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 가르치며 배우는 소중한 사제지간이다.
그러나 상황은 토론이 진행되며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학생 간 다소 의견의 차이는 있었지만, 고교 평준화는 교육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지 못하리라는 의견이 훨씬 많았고, 더욱 예상과 다른 부분은 오히려 일반고 출신 학생들이 평준화 정책을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했다는 점이다. 왜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했을까?
첫째, 평준화의 취지에는 동의하나 학생의 개성과 진로를 고려하지 않는 획일화된 평준화 교육은 21세기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고 학생들은 보았다. 특목·자사고로 입시 불평등이 심해지는 측면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이는 고교 교육을 입시를 위한 도구로만 바라보는 관점이며 오히려 일반고 안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거주지역 기반의 평준화가 시행되면 교육열이 높은 지역 중심으로 고교 서열화가 심화할 것이며 오히려 지금보다 부모의 경제력 수준이 자녀 세대로 전이되는 정도가 높아질 것으로 학생들은 보았다. 더 나아가 고교별 대학 입시 결과 차이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학교 역량의 차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 차이로 전가하여 오히려 능력주의를 심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셋째, 현재 일반고 안에서도 우수한 학생에게 성과를 몰아주는 일정 수준의 차별은 일어나고 있기에 특목·자사고 폐지와 무관하게 일반고 자체 역량을 강화하는 데 먼저 주력해야 한다고 학생들은 보았다. 또한 일반고 사이에도 수업의 질과 학생 태도가 차이 나는데 특목·자사고 폐지가 주요 논제가 되면 일반고 사이의 불평등은 묻혀 버리게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물론 특목·자사고의 존재가 교육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고교 유형의 차이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고등학교가 사회안전망 기관, 전인교육을 위한 기관으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입시기관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 학생이 더 많았다. 더 나아가 대학 서열이 존재하는 이상, 어떤 고교 교육 혁신 방안을 제시하더라도 새로운 형태의 고교 서열화가 발생하리라는 냉소적인 의견도 나왔다.
물론 필자가 가르치는 한 수업에서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토론 내용이 모두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특목·자사고 폐지 정책 대상자인 학생의 의견을 직접 들어 보니 얼마나 현장과 유리된 근시안적 관점에서 리더의 편견에 의존한 탁상공론식 정책 결정이 이루어졌는지 족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정책 대상이 되는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있었는지, 고교 교육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고민은 있었는지,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역사·구조·문화 맥락을 고려하며 정책을 입안했는지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정책을 집행하고 이를 통해 국민을 만족시키며 복리(福利)를 높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시민의 참여의식과 사고의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기에 정책을 둘러싼 이해 갈등을 조정하려는 노력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또한 정책이 집행되는 과정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에 정책 집행 과정 그 너머를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정책이 의도한 성과를 내려면 위정자의 의지와 결단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책 대상이 되는 시민의 참여로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여론 수렴 과정, 정책이 위치한 역사·문화·사회구조의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숙려 과정을 통해 설계되고 집행되는 정책만이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정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대학 신입생도 알고 있는 정책 집행의 본질을 위정자와 실무자들이 잊어서는 안 된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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