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하나로 평생 '빨간 낙인' 100세 노인의 외침[시스루 피플]

박은하 기자 입력 2022. 5. 1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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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 정부에 치안유지법 사죄 요구
히시야 료이치

히시야 료이치가 2021년 8월15일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공원에서 열린 종전기념일 행사에서 생활도화사건으로 탄압받은 경험을 말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19세 때 한 ‘생활도화운동’ 공산주의자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
90세 넘어서야 ‘그림자처럼 산 인생’ 고백…일 국회에 호소도
아베 정권 당시 ‘특정비밀보호법’ 제정에 ‘악몽 부활’ 비판도

히시야 료이치(100)는 1941년 당시 일본 홋카이도의 아사히카와사범학교(현 홋카이도교육대학 아사히카와캠퍼스)에 다니던 19세 학생이었다. 미술부원이었던 그는 일상생활이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그림과 이런 그림을 교육에 활용하는 ‘생활도화운동’에 매료돼 있었다. 그러던 중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홋카이도의 미술교사와 학생 26명과 함께 체포됐다. 그림으로 공산주의를 퍼뜨렸다는 것이 이유였다.그는 퇴학을 당하고 1942년 12월까지 1년3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이른바 ‘생활도화사건’이다.

히시야는 출소 후 빨간색 여성용 모자를 쓴 자화상을 그렸다. 그렇게 부당한 옥살이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후 오랫동안 손에서 붓을 놓았다. 정년퇴직한 뒤에야 지역 문화센터에 다니며 다시 그림을 그렸지만 그때도 생활도화사건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90세가 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투옥됐던 경험을 공개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잡혀가 자백조서를 쓰고 기소되고 곧바로 수감돼 1년3개월 동안 차가운 독방에서 지냈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후에도 세상으로부터 ‘아카’(빨갱이)로 불리며 그림자처럼 살았습니다.”

히시야는 지난 11일에도 치안유지법 희생자 국가배상요구동맹 회원들과 함께 국회를 방문해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다. 히시야와 전국에서 모인 회원 108명은 일본 정부가 치안유지법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8만5653명의 서명을 일본공산당과 입헌민주당 의원들을 통해 국회에 제출했다고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가 전했다.

치안유지법은 1925년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할 목적으로 제정됐다. 천황제나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활동에 적용됐다. 1928년 법정 최고형이 사형으로 상향됐다. 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1년에는 법 적용 대상이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 활동 전체로 확대됐다. 일본이 만주와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전선을 넓혀가던 시기였다. 법은 종전 후인 1945년 10월에 폐지됐다. 시인 윤동주가 도시샤대학 유학 시절 투옥됐을 때 혐의도 치안유지법 위반이었다. 현재 한국의 국가보안법도 치안유지법을 모델로 하고 있다.

히시야는 2012년 2차 아베 신조 정권 출범 뒤 특정비밀보호법과 조직범죄처벌법 제정 움직임을 보고 “치안유지법이 옷을 갈아입고 부활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2013년 통과된 특정비밀보호법은 외교·안보 사안에서 정부가 정보를 비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알 권리 침해 논란이 불거졌고 ‘방사능 정보 숨기기 법’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2017년 제정된 조직범죄처벌법은 범죄집단이 테러 등의 중대범죄를 사전에 계획만 해도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중대범죄의 내용을 277개로 폭넓게 규정한 데다 ‘생각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을 주장하거나 개헌에 반대하는 등 정부정책을 비판하는데도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히시야는 2017년 조직범죄처벌법 통과 직전 치안유지법 피해자 4명을 모아 “치안유지법은 악법”이었다며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히시야의 오랜 친구이자 첫 배상운동 때부터 함께 참여했던 생활도화사건 피해자 마쓰모토 고로가 2020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다른 동료들도 사망해 히시야는 치안유지법 관련 마지막 생존자로 불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본인들의 전쟁에 대한 공포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이를 이용해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이었던 방위비를 2%대로 인상하고 연내 안보 관련 3원칙을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자민당은 올 7월 참의원 선거에 개헌을 공약으로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헌 찬성 여론은 전년보다 7%포인트 높아진 56%로 2013년 조사 이후 가장 높다.

‘반격해야 한다’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가가 시민의 동향을 파악하고 통제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져왔다. 최근 정부가 일본판 중앙정보부를 창설하려 한다고 산케이신문이 보도했다. 방위성은 2020년 출입기자 대상 배포자료에 테러, 사이버 공격과 함께 반전시위를 새로운 안보위험의 요인으로 제시했다가 수정한 사실이 지난 3월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아베 정권은 2014년 정부의 통일된 견해가 있는 경우 이 견해대로 역사교과서를 서술해야 한다는 지침을 마련했다. 히시야는 이런 흐름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방위비 2%도, 3%도 반대한다. 헌법 9조를 지키고 전쟁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켜달라.”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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