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권력

한겨레 2022. 5. 1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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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내각과 비서실 인선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자본을 더욱더 많이 획득하려는 강렬한 의지와 함께, 특히 일부는 자녀의 문화자본 축적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부지런하게 애쓰며 산 것처럼 보인다.

어떤 게임이 진행돼야 할지를 결정하고 만들어내는 시스템적 권력, 시장원리 확대와 자본시장 자유화 등을 기조로 한 '워싱턴 컨센서스'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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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대통령 비서실·안보실 2차 인선 명단이 발표된 지난 6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나오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숨&결]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윤석열 정부의 내각과 비서실 인선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자본을 더욱더 많이 획득하려는 강렬한 의지와 함께, 특히 일부는 자녀의 문화자본 축적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부지런하게 애쓰며 산 것처럼 보인다. 끝없는 지위 상승 욕구, 특히 자신보다 나은 최상층 계급을 따라잡으려는 시도는 그 바로 밑에 있는 계급의 중요한 특징이다. 물론 최상층은 그들이 따라간 만큼 더 높아져버리겠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황금기, 국가 엘리트는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가 정치사회학의 주요 이슈였던 적이 있었다. 국가 유지에 필수적인 조세와 고용이 기업 활동에 달린 만큼 주로 그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특정 계급으로부터 독립된 나름의 자율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인가. 이런 논의는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세계화로 무색해졌다. 개별 국가의 재정 및 통화 정책의 자율성이 초국적 금융 헤게모니의 확산에 따라 구조적으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가장 교활하고 강력한 권력의 행사는 저항하는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는 보이는 권력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진정한 이익에 반하는 욕망과 믿음을 갖게 함으로써 그런 지배를 오히려 환영하고 순종하게 하는, 그런 보이지 않는 권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어떤 게임이 진행돼야 할지를 결정하고 만들어내는 시스템적 권력, 시장원리 확대와 자본시장 자유화 등을 기조로 한 ‘워싱턴 컨센서스’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워싱턴’은 미국 정부뿐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투자은행가, 주요 선진국의 재무부 장관 등 워싱턴에 모여 경제 문제를 의논하고 여론과 정책을 주도해나갈 능력이 있는 모든 기관과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결국 경제 활동의 세계화는 기업들의 이윤을 세금으로 회수하는 일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었고, 소수의 핵심 노동자층을 제외한 대다수 노동인구를 주로 노동비용의 삭감을 통해 격화된 초국적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주변부 기업에 방치해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도록 했다.

그런데 만일 권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런 권력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시스템 차원의 위기 외에도, 권력의 대리인들이 문제를 발생시키면 보이지 않는 권력에 균열이 생긴다. 보이지 않는 권력이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그 권력의 대리인들이 그 권력을 대리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주로 거대 초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해온 회사에서 거액의 고문료를 받으며 공직을 부업으로 만든 국무총리 후보자는, 이제 막 그 어두운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한 보이지 않는 권력의 헤게모니를 지켜주기에는 너무 적나라하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 권력의 논리는 국내 정치에도 적용된다. 국가 엘리트는 자본으로부터 자율성을 가진 것처럼 보여야 할 뿐 아니라, 그 자체의 권력 기반으로부터도 분리된 독립적인 주체임을 보여야 통치의 정당성과 안정성을 구현할 수 있다. 이번 대선은 0.73%포인트라는 미미한 차이로 승부가 갈렸을 뿐 아니라, 범진보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노동당이 총 50.38%를 획득한 이례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는 두가지 신념체계가 충돌 중인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시장 정의에 기반한 공정한 경쟁과 성과주의 원칙의 뒤늦은 확산이 강렬하지만, 바로 그런 경쟁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람들이, 아무리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에 지친 사람들이 개선을 요구하며 반격을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도 내각과 비서실의 상당수를 검찰 출신으로 채워, 그래서 보이지 않는 권력이 아니라 보이는 권력이 되길 선택하다니, 그래서 보이지 않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잘 보이는 권력의 핵심이 “부모의 재력에 따라 교육 수준에 차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공정한 경쟁이란 허상을 이처럼 말끔히 제거하다니, 지금까지 여권 정치인에게 들어본 말 중 가장 지성적이었던 이 말에, 이런 솔직한 선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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