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푸른눈 증언자 돌린저 "최후항쟁 함께 못해 미안"

변재훈 입력 2022. 5. 1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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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옛 전남도청 사수 시민군 곁 지킨 유일한 외국인
외신 '눈과 귀' 역할, 최후 항쟁 시민군 시신 수습
"옳은 일이었을 뿐…더 돕지 못해 후회로 남았다"
헬기 사격 등도 증언…"5·18 한국 민주화 큰 역할"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곁에서 참상을 널리 알린 데이비드 돌린저(David L. Dolinger·한국명 임대운)가 16일 오후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정보마루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록 대담에 참석, 항쟁 당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2022.05.16. wisdom21@newsis.com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최후 진압이 한창일 때 함께 하지 못해 광주시민에게 미안합니다."

'5·18민주화운동 푸른 눈의 증인' 데이비드 L 돌린저(69·한국명 임대운)는 16일 광주를 찾아 "1980년 5월 27일 (미국인인 내가) 전남도청 광장에 앉아 있었다면 유혈 진압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동료들 만류에 도청으로 나가지 못했다"며 42년 만의 회한을 털어놨다.

이어 "최후 항쟁 당일 새벽 3시 30분께 확성기를 통해 들려온 '계엄군 공격이 임박했다'는 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선 잠에서 깼다. 이른 아침 도심엔 총성·비명이 울렸다. 소리 만으로도 절망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계엄군 진압이 끝났을) 오전 8시 30분께 밖으로 나와 무작정 도청을 향해 걸었다. 거리는 혈흔으로 물들었고 곳곳에서 지푸라기로 덮여 있는 사체들을 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전남도청에서의 최후 항쟁 직후 참혹한 모습을 떠올릴 때에는 감정이 북받치는 모습이었다. "굉장히 힘든 이야기다. 내가 알고 지내던 이도 숨진 채 있었다"며 눈시울을 연신 붉히기도 했다.

돌린저는 "시민군과 함께 전남도청에서 한 일은 모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민군들이 '도와달라'는 말을 했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머물렀다"며 "(내가 그들을 위해) 조금 더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가 들 때도 있다"고 밝혔다.

5월 21일 광주 도심에 뜬 헬기 사격도 목격한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헬리콥터에 탄 군인 1명이 몸을 내민 채 금남로에서 총을 쏘는 모습을 봤다. 총성을 분명 들었다"며 "함께 있던 나주보건소 간호사가 몸을 이끌어 한 가게 안으로 피신했다. 헬기 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이 집이나 골목 안으로 피해 숨었다"고 말했다.

항쟁 개입을 이유로 미 평화봉사단원에서 해임된 일을 두고는 "나는 아직도 내가 '정치 관여 금지' 규정을 어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관여가 아니라 양심적 행위였다. 희생을 줄이기 위한 당연한 행동을 실천했을 뿐이다"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만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를 두고는 "역동적인 사람으로 기억한다. 처음 그를 봤던 학생·시민사회 대표자 모임에서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곁에서 참상을 널리 알린 데이비드 돌린저(David L. Dolinger·한국명 임대운)가 16일 오후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정보마루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록 대담에 참석, 항쟁 당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2022.05.16. wisdom21@newsis.com

5·18 항쟁 당시 미국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일원이었던 그는 오월 광주 한복판에 서 있었던 '푸른 눈의 목격자'로 꼽힌다.

그는 시민군과 생사 고락을 함께 하며 외신 기자와 미 대사관에 항쟁 참상을 널리 알렸다. 제2차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린 24일에는 '5·18 최후 항전지'인 전남도청에서 시민군과 함께 하룻밤을 지새우며 라디오 영어 방송을 통한 계엄군 동향을 시민군들에게 전했다. 생사를 함께 하겠다며 최후항쟁지 도청을 지킨 유일한 외국인이다.

폴 코트라이트 등 동료 봉사단원 2명과 함께 뉴욕타임스 헨리 스코트 스토크스 등 외신 기자들의 '귀와 입' 역할을 했다. 동료들과 함께 전남도청 안팎에서 계엄군의 최후 진압으로 숨진 시민군 시신 수습을 돕기도 했다.

돌린저는 항쟁 42년 만인 이달 12일 회고록 '나의 이름은 임대운(Called By Another Name)'을 펴냈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겪은 5·18 항쟁사를 널리 알려 진상 규명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그는 5·18항쟁을 둘러싼 왜곡 시도를 지난한 회고록 집필의 강력한 동기로 삼았다고 전했다.

돌린저는 이날 오후 '항쟁 발원지'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회고록 '북 콘서트'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항쟁의 의의와 숭고한 가치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은 개인적으로 제2인생의 시작점이 됐다. 인권을 삶의 중요한 지향이자 관심사로 두게 됐다"면서 "역사적으로도 5·18이 있어 1987년 6월 항쟁이 가능했다. 5·18로 시작된 흐름이 결국 한국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대한민국을 옳은 길로 이끌었고 시민들이 함께 나서서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았다"고 평가했다.

학생들을 향해서는 "멈춰선 안 된다. 무언가 옳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민주주의와 인권이 무너질 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오월 열사의 뜻을 이어 달라고 바랐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곁에서 참상을 널리 알린 데이비드 돌린저(David L. Dolinger·한국명 임대운)가 16일 오후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정보마루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록 대담에 참석, 항쟁 당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2022.05.16. wisdom2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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