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와 파친코, 그리고 김치

한겨레 2022. 5. 1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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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티브이플러스(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한국·일본·미국에서 4대에 걸쳐 펼쳐지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주민)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다. 애플티브이플러스 제공

[왜냐면] 최효정 | 일본 AI벤처기업 직원

재일한국인 4대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조명한 애플티브이플러스 드라마 <파친코>가 얼마 전 시즌1을 마쳤다. 마지막 화에서 주인공 선자는 생계를 위해 일본 오사카에서 수레에 담은 김치를 팔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보며, 그 시절(드라마에서 1939년)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무시하던 조선의 음식인 김치를 사 먹긴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928년 일본의 교토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해방 뒤인 1946년 부모님의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왔고, <파친코>의 선자처럼 부산 영도에 뿌리를 내렸다. 어렸을 적 할머니는 당신이 일본에 살았던 시절 이야기를 종종 들려줬는데, 일본에서 꿋꿋하게 김치를 담가 먹던 이야기도 포함돼 있었다. 마늘 냄새가 난다며 일본인들의 무시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말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2006년 우리 가족은 일본 오사카로 이주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할머니도 동행하게 됐다. 출국을 앞두고 할머니는 당부했다. “마늘 냄새가 나면 일본인들이 좋아하지 않으니 밖에 나가기 전에는 김치를 되도록 먹지 말려무나.”

하지만 웬걸. 동네 슈퍼를 갔더니 쓰케모노(일본식 야채 소금절임) 코너에 김치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주민 대부분이 일본인인 동네에서, 그것도 꽤 많이. 할머니의 우려와 달리 ‘이제 일본인들도 김치를 먹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르게 신기함이 느껴졌다.

일본 정착 16년째인 현재는 어떤가. 웬만한 슈퍼에서는 일본식으로 만든 김치는 물론 한국에서 수입한 것까지 쓰케모노보다 더 많은 각종 김치가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 불닭볶음면, 과일맛 소주, 떡볶이 소스 등 다른 한국 음식과 식재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 사는 도쿄 근처 도시의 한국인이 별로 없는 동네에서는 얼마 전 한국 음식과 한국 화장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가게가 생겼다. 한번 구경을 갔다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일본 아이가 엄마에게 한국 과자를 사달라며 조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 문화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인 스타가 된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를 즐겨 듣고, 한국에서 2년 전 방영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일본 넷플릭스 인기 10위권에 올라 있다. 한국 드라마에서 나온 한국 음식을 맛보려는 일본 젊은이들로 붐비는 도쿄의 한인타운 신오쿠보는 평일에도 길을 걷기 어려울 정도다.

이렇듯 한국 문화, 한국 음식이 일본에서 자리잡고 퍼진 데에는 케이(K)팝과 케이드라마의 영향이 크지만, 그 이전에 고향 음식을 포기하지 않고 그 명맥을 이어온 재일동포들이 있었다는 점도 알았으면 한다.

드라마 <파친코>에서는 해방 뒤 재일동포들이 일자리가 없어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묘사하지만, 자본이 부족한 대부분의 재일동포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들 상당수는 조그만 음식점을 차려 같은 처지의 동포들을 상대로 영업해 생계를 유지했다. 일본인은 먹지 않는 소 내장(곱창)을 싼값에 사다 구워 팔던 게 대표적이다. 야키니쿠(고기구이)로 불리는 이 음식을 주머니 가벼운 일본인 중년 남성들도 점차 찾게 됐고, 이어 젊은이와 가족 단위 손님들도 늘어났다. 재일동포들이 경영하는 야키니쿠 가게에서는 김치와 비빔밥 등도 맛볼 수 있는 만큼 한국 음식이 더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이런 가운데 2000년대 <겨울연가>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를 시작으로 한국 음악, 한국 패션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며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해방 뒤 일본에 남은 재일동포들은 자신의 문화를 지키고 자손들에게도 전해주기 위해 한글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으며 한국 음식을 먹으며 일본인들에게도 한국의 맛을 전하고 있다.

애플티브이플러스의 드라마 <파친코>가 여러 시즌으로 재일동포의 삶을 보여준다고 한다. 부디 그들이 일본에서 겪었던 일들, 그들의 삶을 고국인 한국에서도 주목하여 그들이 겪었던 아픔을 알아주고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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