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세태 풍자"라는데..윤재순, 또 다른 지하철 시 "수컷들의 염정"

이유진·김희진 기자 2022. 5. 1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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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 2004년 10월 출간한 시집 <나는 하늘을 모른다>에 게재된 시 ‘길’에서는 바쁜 통근길 지하철 역사 장면을 묘사하며 ‘수컷들의 염정(艶情)’과 같은 표현이 쓰였다.


지하철 내 성추행을 ‘짓궂은 사내아이들의 자유’로 묘사한 시를 쓴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는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의 다른 시에도 문제가 될 만한 표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출근시간대 지하철역을 오가는 사람들의 바쁜 움직임을 “앞으로만 밀어붙이는 수컷들의 염정(艶情)”에 비유하면서 여성들이 “도망치듯 쫓기어 간다”고 묘사했다.

윤 비서관은 2004년 10월 출간된 시집 <나는 하늘을 모른다>에 실린 시 ‘길’에서 바쁜 통근길 지하철 역사 장면을 묘사했다. 2002년 출간한 시집 <가야 할 길이라면>의 ‘전동차에서’에 이어 지하철을 소재로 쓴 시다.

시 ‘길’에서 작가는 ‘뒤쫓는 이 없어도 발걸음은 총총대며 도망치고/둔탁한 괘종시계 소리를 내며 샌들을 재촉하면/또 도망치듯 쫓기어 간다/앞으로 앞으로만 밀어붙이는/수컷들의 염정(艶情)이/그들을 뛸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인지 모른다’고 썼다. ‘염정’은 이성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뜻하는 단어이고, ‘샌들’은 여성의 은유적 표현으로 보인다. 출근길에 바쁜 사람들의 움직임을 ‘수컷’에 비유함으로써 남성을 밀어붙이는 존재로, 여성을 도망치는 존재로 형상화한 것이다.

윤 비서관은 성추행 범죄를 ‘짓궂은 사내아이들의 자유’로 묘사한 ‘전동차에서’라는 시에서도 “얼굴을 붉히고만 있어요”“아무런 말이 없어요”라며 피해자 여성을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존재로 그렸는데, 그와 비슷한 시각이 다른 시에서도 반복된 것이다. ‘전동차에서’라는 시에 대해서는 일상 공간에서 여성이 맞닥뜨릴 수 있는 두려운 상황을 낭만적으로 묘사했다거나 ‘관음증적인 시각에서 쓰인 시’라는 비판이 나오는 터다. ‘그냥 수준 이하’ ‘함량 미달인데 더 이상 왈가왈부가 필요한가’와 같은 의견도 있다.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 2004년 10월 펴낸 시집 <나는 하늘을 모른다>. 교보문고 이북 캡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6일 국회에서 열린 지방선거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윤 비서관이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했던 여러 표현은 지난 20여년간 바뀐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 일반적인 국민들의 시각과 큰 차이가 있다”며 “윤 비서관은 국민들에게 충분히 사과하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의 탁현민 비서관도 과거 ‘남자마음설명서’라는 책에서 서술한 내용이 부적절했던 점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일이 있다”고도 했다. 국민의힘 여성 의원들은 이날 윤 비서관의 경질을 요구하는 의견을 송언석 원내부대표를 통해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윤 비서관이 20년 전에 쓴 시는 전반적으로 지하철 세태에 대해 비판적인 언어로 쓴 것이지 성추행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윤 대통령은 ‘(윤 비서관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참모들에게 얘기했다”며 “(성추행도) 최근 일이라면 당연히 그만두게 하겠지만, 10~20년 전 일이고, 경미하다 보니 경고로 끝난 문제”라고 했다.

윤 비서관은 검찰에 재직할 때 음담패설과 폭언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들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일삼아 ‘EDPS’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말도 나온다. ‘EDPS’는 음담패설을 영문으로 소리나는 대로 쓴 뒤 음절 앞 철자를 딴 은어다. 여성 직원에게 “X없게 생겼다”고 말하고, 검찰 서기관 때는 후배 직원에게 ‘X대가리’ 등 비하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비서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 대검 운영지원과장을 지내는 등 검찰에서 25년간 윤 대통령과 인연을 이어왔다. 총무비서관 임명 직후 과거 성비위로 징계성 처분을 받은 전력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2012년 7월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에서 검찰 사무관으로 재직할 때 부서 회식에서 여성 직원을 성추행해 ‘감찰본부장 경고’ 처분을 받았고, 1996년 10월 서울남부지청 검찰 주사보로 일할 때는 부적절한 신체 접촉으로 인사 발령이 났다.

이유진·김희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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