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이 꺼낸 '빅스텝 카드', 시장보다 한은이 더 놀랬다

손진석 기자 2022. 5. 1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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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왼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향후 ‘빅스텝(big step)’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베이비스텝(baby step)’으로 부르는 통상적인 0.25%포인트 조정의 2배인 0.5%포인트 금리 인상 가능성을 거론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도 22년 만에 처음으로 이달 초 ‘빅스텝’ 인상을 결정했다. 한은은 ‘빅스텝’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전례가 없다.

◇'빅스텝’ 시사에 놀란 시장

이 총재는 이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찬 간담회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데이터 등이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앞으로도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고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4월 상황까지 봤을 때는 그런 고려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인데, 앞으로 물가가 얼마나 더 올라갈지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데이터를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며 “7~8월 경제 상황, 물가 변화 등을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 총재의 발언은 지난달 인사청문회용으로 국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한국은 한 번에 0.25%포인트 넘게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조정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한 것과 달라졌다.

이 총재의 ‘빅스텝’ 시사 발언이 매파적(긴축적 통화정책 선호 경향)으로 해석되면서 즉각 시장이 반응했다.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가 장중 0.17%포인트 급등해 3.08%까지 올랐다. 코스피는 이날 개장하면서 0.94% 상승했지만 0.29% 하락으로 마감했다.

이러자 시장보다 한은이 더 놀랐다. 한은은 이 총재의 ‘빅스텝’ 발언에 대해 “원론적 입장”이라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물가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며, 물가 전망의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라고 설명했다.

◇만약 ‘빅스텝’ 밟는다면 하반기일 듯

이 총재가 ‘빅스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은 한미 간 금리 역전에 의한 자본 유출 위험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현재 기준금리는 미국이 0.75~1%이고 한국이 1.5%다. 한은이 두 번 연속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리더라도 미국이 ‘빅스텝’을 두 번 더 밟으면 실질적으로 금리가 같은 수준이 된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한 번도 없었던 ‘빅스텝’이 이뤄지면 시장은 큰 충격을 받는다”며 “그럴 가능성에 대비하려고 미리 시장을 테스트하는 차원에서 이 총재 발언이 나온 것으로 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만약 한은의 ‘빅스텝’이 필요하다면 하반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름까지는 한미 간 금리 수준이 비슷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하반기에도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파르면 한은 역시 따라가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하반기에 물가 상승세와 대외 여건이 어떻게 될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따라서 ‘빅스텝’ 가능성을 차단했다가 나중에 말을 바꿔야 하면 한은 총재의 말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빅스텝’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미 간 금리 역전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이날 보고서를 내고 “미국에 동조해 급격히 기준금리를 올리기보다는 국내 물가·경기 여건에 맞게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한국이 (미국을 따라) 금리 동조화 정책을 쓸 경우 한국 경제에 경기 둔화가 그대로 파급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마비 상황 장기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 경제가 급변하거나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라 한은의 금리 정책도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총재는 이날 추경호 부총리와 한 조찬 회동에서 “(기재부와 한은이) 정책 공조를 해야 그나마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추 부총리는 “현재 경제 상황이 엄중하고 정책 수단은 상당히 제약돼 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중앙은행과 정부가 경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정책 조합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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