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에 화엄경 번역본 낸 일초스님 "읽고 사랑하는 힘 키우길"

양정우 2022. 5. 1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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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하루 10시간씩 번역 작업..화엄경 접하고 눈물 '단박 출가'
"아무렇게 살지 않고 바른길 가도록 가르치는 게 화엄경"
일초스님 [민족사 제공. 재배포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승려들의 대학인 사찰 강원에서 50년간 경전을 가르쳐온 일초스님이 방대한 분량과 심오함으로 잘 알려진 '대방광불화엄경(이하 화엄경)' 번역본을 완성해 출간했다.

화엄경은 대승불교 경전 중 최고로 꼽힌다. 광대하고 넓은 불법, 깨달음의 세계를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초스님이 한자 하나하나에 토를 달아 번역한 화엄경은 7세기 당나라 실차난다가 한역한 것이다. 분량이 모두 80권에 달한다.

스님이 화엄경 번역에 나선 것은 2018년 4월의 일이다. 한국 나이로 일흔여섯에 시작한 작업은 4년 가까이 걸렸다. 온 나라와 전 세계를 휩쓸던 코로나19 사태 해결에 한 줄기 희망이 비출 무렵인 올해 3월에야 마무리됐다.

그에게 화엄경은 불가와 인연을 맺게 해 준 더없이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16일 서울 종로구 한 음식점에서 만난 일초스님은 스님으로서 구도의 길을 걷는 출가가 무엇인지, 불법이 무슨 말씀이었는지 전혀 모를 때 우리말로 번역된 화엄경을 처음 읽어보고서 눈물을 흘렸던 때를 잊을 수 없다고 떠올렸다.

화엄경에서 받았던 강렬했던 감동은 '스님 한번 해 볼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어느새 삭발하고 염의를 입은 비구니가 됐다.

그를 불가로 이끈 화엄경은 어떤 가르침을 담고 있을까.

"화엄경의 '화(華)'자는 꽃 화자입니다. 꽃은 열매를 만드는데요, 수행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나아가면 정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살아가는 게 다 수행입니다. 아무렇게나 살지 않고 바른길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걸 가르치는 게 바로 화엄경입니다."

일초스님이 10권짜리로 펴낸 화엄경 번역본은 왼쪽 페이지에는 경전 원문을, 오른쪽에는 번역문을 실었다. 이런 2단 편집은 책을 접하는 이들이 원전과 번역문을 대조하면서 보다 쉽게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마치 제자가 스승과 함께 한 글자 한 글자 경전을 따라 배우며 글귀를 마음에 새기고, 그 뜻을 음미하는 것 같은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일초스님은 4년 가까운 번역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로 한문을 우리말로 알기 쉽게, 또 아름답게 옮겨 적는 것을 꼽았다.

"제가 동학사에서 스님들 가르친 지가 50년이 지났어요. 근데 제가 그렇게 무식한지를 몰랐습니다. 단어를 아름답고, 쉽게 번역해주고 싶었는데, 그게 잘되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가면 갈수록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고 그간 고충을 토로했다.

일초스님의 대방광불화엄경 번역본(총 10권) [민족사 제공. 재배포 및 DB금지]

50년이나 불교 경전을 가르쳐 온 노스님이 매일같이 마주했던 벽을 뛰어넘은 비결에 관해 물었다. 그것은 꾸준함, 그리고 결기로 요약할 수 있다.

"화엄경이 80권인데, 한번 해보겠다고 했던 생각을 접을 수가 없었어요. 강의가 있는 날을 빼곤 오전 9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번역작업을 했어요. '하다 죽자'. '이거 하나라도 남기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이끌고 나간 것이 끝마칠 수 있는 날도 있게 된 것이죠."

일초스님은 고생 끝에 내놓은 화엄경 번역본을 읽는 이들이 배워갔으면 하는 게 무엇인지를 묻자 사랑하는 힘을 키웠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화엄경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누구나 다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범부(凡夫)도 만들고, 부처도 만듭니다.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 부자도 만듭니다. 그 마음은 또 좋은 사람, 나쁜 사람도 만들어요. 나쁜 곳은 지옥으로 가는 게 아니에요. 나쁜 마음을 가지면 자기가 괴롭습니다. 그게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초스님은 1963년 전남 광주 신광사로 출가해 1964년 고암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68년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받았다. 동학사 강원을 마치고서 강사로 나서 50년을 후학을 양성하는 데 보냈다.

2016년 화엄경의 게송을 모두 뽑아서 번역한 '화엄경 게송집'을 국내 최초로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펴낸 책으로는 자신과 학인 스님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우리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등도 있다.

일초스님은 현재 동학사 승가대학원장 및 화엄학림 학장을 맡고 있다.

조계사 찾은 일초스님 [민족사 제공. 재배포 및 DB금지]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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