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때도 유연 근무 '선택' 못했다, 공기 같은 성차별 때문에

박고은 입력 2022. 5. 16. 16:06 수정 2022. 5. 1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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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이트, 10개국 5천명 여성 설문조사
세계 10개국 여성 절반 "2년 이내 이직"
"성 평등 퇴보..고용주들 행동 나서야"
세계 10개국 직장 여성의 절반가량이 직장 내 성차별과 번아웃 등을 이유로 직장을 2년 안에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클립아트코리아

미국, 영국, 일본 등 전 세계 10개 나라에서 일하는 여성의 절반가량이 직장 내 성차별과 번아웃 등을 이유로 직장을 2년 안에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반면, 여성을 지지하고 포용적 문화를 갖춘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9%만이 1~2년 안에 직장을 떠나고 싶다고 답해, 기업이 여성 노동자 유출을 막기 위해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퇴보한 직장 내 성평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적 기업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그룹이 16일 발표한 ‘2022 직장 여성 서베이’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 팬데믹이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과 웰빙 등 여성의 삶과 경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3%)은 스트레스 수준이 1년 전보다 높아졌다고 답했고, 46%가 번아웃을 느낀다고 밝혔다. 딜로이트그룹은 10개 나라(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캐나다, 중국, 독일, 인도,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 미국) 여성 5천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2월까지 설문조사를 벌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성평등 선도 조직’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실태가 달랐다는 점이다. 이들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 가운데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3%에 불과했다. 평등 선도 조직은 진정한 포용적 문화를 육성해 여성을 지지하는 기업으로, 전체 응답자 가운데 5%가 성평등 선도 기업에 다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직장 여성의 번아웃이 ‘대량 퇴직’(Great Resignation)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량 퇴직이란 코로나 팬데믹 뒤 미국 노동 시장에서 상당수의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일자리를 떠나는 현상을 일컫는 신조어다. 조사 대상 여성의 52%가 2년 안에 현재 다니는 직장을 떠나겠다고 답했고, 10%만이 5년 이상 머무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성평등 선도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들 가운데서는 현재 이직을 고려하는 이는 없었고, 9%만이 앞으로 1~2년 안에 다니는 직장을 떠날 계획이라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 10개국 직장 여성의 절반가량이 직장 내 성차별과 번아웃 등을 이유로 직장을 2년 안에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딜로이트그룹 제공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나 혼합형 근무를 도입한 기업이 늘었지만, 직장 내 성차별을 겪어온 여성 노동자들은 쉽사리 유연한 근무제를 선택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근무 장소나 시간에 대한 유연 근무 정책을 제시했다고 답한 이들은 33%에 그쳤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94%는 유연근무제를 요청하는 것이 승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근무 형태의 ‘뉴노멀’(코로나 시대 이후의 새로운 표준)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한 부분도 포착됐다. ‘하이브리드 근무 방식’(원격 근무와 사무실 출근이 섞인 형태)으로 일하는 여성 가운데 58%는 업무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낀다고 답했고, 45%는 리더에게 자신의 업무 기량이 충분히 노출되지 않아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평등 선도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견줘, 하이브리드 근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업무과정에서 소외감을 느꼈다는 응답은 14%에 그쳤고, 자신의 업무 능력이 리더에게 충분히 노출되지 않는다는 응답도 7%에 불과했다.

지난 1년간 ‘미묘한 차별’을 경험했다는 이들은 늘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9%)은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이나 미묘한 차별(말 끊기, 의견 묵살, 깔보기 등) 등 비포용적 행태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52%)보다 7%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비포용적 행태는 성소수자 등 소수 집단의 여성이 더욱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소수자 여성의 경우, 성별 때문에 상사가 자신을 깔보거나 사기를 꺾었다고 응답한 비율이 13%였는데, 이는 전체 비율(2%)보다 11%포인트 높았다.

차별과 배제, 괴롭힘 등 비포용적 행태는 조직에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미묘한 차별이나 직장 내 괴롭힘 등을 겪은 이들 가운데 31%만이 조직에 알렸다고 답했다. 미묘한 차별(23%)은 명백한 괴롭힘(66%)보다 보고되는 경우가 훨씬 적었다.

딜로이트그룹은 보고서에서 “직장 내 성평등이 (코로나19로) 2년간 퇴보한 지금 고용주들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여성 인력을 유지하고 유치하기를 바란다면 성평등 선도 기업을 본받으라”고 조언했다. 구체적 방안으로는 △급격히 확산한 번아웃 해결 △정신적 웰빙을 최우선으로 두기 △여성을 위해 실제 적용 가능한 유연근무제 실시 △포용과 유연성을 염두에 두고 하이브리드 근무제 수립 △진정한 의미의 포용적 기업 문화 만들기 등을 제시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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