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집단실종 시대, 도시에서 양봉을? 관악구 '양봉교실' 가보니[현장에서]

이성희 기자 2022. 5. 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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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관악구가 진행하는 ‘양봉교실’ 참가자들이 방충복을 입고 지난 11일 벌통에서 벌집을 꺼내 여왕벌이 있는지, 산란할 공간이 부족하지는 않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관악구 제공

“꿀벌들이 이제 좀 예뻐 보이나요?”

도시양봉가인 박찬 강사(어반비즈서울 이사)가 물었지만, 방충복을 입은 참가자 6명의 대답 소리는 크지 않았다. 벌통을 열고 훈연기 사용해 벌을 잠시 벌집에서 나가게 한 뒤 내검(벌통 속 살피기)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검할 때는 여왕벌이 잘 있는지, 알은 낳고 있는지, 산란할 공간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벌통에 여왕벌이 있는데도 벌집 끝에 왕대(여왕벌이 태어나는 방)가 달려있으면 그것도 떼어줘야 한다.

“꿀벌 한마리는 귀여운데 벌떼는 아직 무서워요. 그래도 5주 전보다 훨씬 나아졌죠.” 한 참가자가 말했다. 지난 11일 서울 ‘관악도시 양봉교실’ 마지막 수업날, 참가자들은 양봉체험에 한창이었다.

도시양봉은 도시에서 꿀벌을 기르는 활동을 일컫는다. 참가자들은 도시양봉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이들의 첫마디는 대부분 비슷했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잖아요.”

전국에서 지난 겨울 사라진 꿀벌은 78억마리에 달할 것으로 농림축산식품부는 추정한다. 사체조차 눈에 띄지 않아 ‘꿀벌 집단실종’ 등으로 불리는데, 전문가들은 이상기후에 의한 면역력 저하와 병해충이 겹쳐진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꿀벌이 살 수 없는 환경은 결코 인간에게도 이롭지 않다. 꿀벌은 꽃과 꽃을 날아다니며 세계 주요 100대 농작물 70% 이상의 수정을 담당한다. 도시양봉을 하면 인근 꽃의 발화율이 증가해 다른 곤충도 증가한다는 것은 이미 각종 연구에서 증명됐다. 박혜진 관악구 공원녹지과 실무관은 16일 “도시농업 수요가 갈수록 커지는데, 도시양봉은 텃밭을 친환경적으로 가꾸는 데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가 진행하는 ‘양봉교실’ 참가자가 지난 11일 벌집을 꺼내 채밀(꿀 뜨기)하기 위해 원심분리기를 돌리고 있다. |관악구 제공


관악구는 2015년부터 낙성대텃밭에 도시양봉장을 설치·운영해왔다. 2020년에는 관악도시농업공원에도 양봉장을 마련했다. 양봉교실은 2016년 문 열었으며 현재는 관악도시농업공원에서 입문반만 운영하고 있다. 관악도시농업공원에는 현재 2층짜리 벌통이 3개 있다. 벌통 1개에는 통상 꿀벌 2만마리가 들어있다.

양봉교실은 4~6월 두 그룹으로 나눠 진행된다. 한 그룹당 수업은 총 6회다. 꿀벌 생태와 습성, 계절별 관리방법, 꿀벌의 질병, 밀원식물(꽃이 피는 식물)과 먹이 등 이론교육부터 인공분봉(꿀벌 무리 나누기)과 친환경방제 등 실습교육까지 이뤄진다. 수강인원은 한 그룹에 10명으로, 관악구 주민뿐 아니라 다른 자치구 주민도 신청할 수 있다.

이날 수업의 백미는 채밀(꿀 뜨기)이었다. 채밀의 첫 단계는 밀도질이다. 꿀벌이 벌집에 꿀을 넣어놓고 밀랍으로 막아놓은 것을 포를 뜨듯 걷어내는 작업이다. 그런 다음 꿀이 찬 벌집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손잡이를 수십번 돌리면 꿀만 아래로 떨어져 고이는 방식이다. 채밀이 될수록 천막 안에 달콤한 꿀냄새가 가득해졌다. 박찬 이사는 “꿀벌 생산부터 벌집까지 사람이 관여하지 않으면 꿀을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낙성대텃밭에 있는 양봉장까지 합치면 관악구에서 그간 채밀한 꿀은 1597.5㎏에 이른다. 매년 250㎏ 이상을 채밀하는 셈이다. 다만 지난해에는 98㎏에 그쳤다. 채밀 기간인 봄에 비가 많이 내린 데다 말벌 습격을 받았던 탓이다.

이곳에서는 주로 아카시아꿀과 밤꿀이 생산된다. 관악구는 상표 등록한 ‘관악산 꿀벌의 선물’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박 이사는 “도시는 꿀벌이 좋아하는 공간”이라며 “농작물이 없어 농약으로 인한 피해가 적고 벌통 수가 많지 않으니 경쟁자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시양봉을 꿀 생산만을 위한 것으로 보면 오산이다. 인근 서달산에서 숲동아리 활동 중인 강경민씨(46)는 “요즘 아이들은 꽃과 식물을 책으로만 배우는데, 요즘 숲을 함께 거닐며 도심에 자리잡은 숲에 감사해하곤 한다”며 “꿀벌이 사라지면 식물도 숲도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5월20일은 ‘세계 벌의 날’이다. 박 이사는 “꿀벌들의 월동실패는 매년 반복될 수 있다”며 “꿀벌들이 좋아하는 밀원식물을 심고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농산물을 소비하는 등 꿀벌이 살아갈 환경을 지켜주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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