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임금제 규제한다더니 검토만 하다 끝난 문재인 정부..윤석열 정부는 언급도 없어

이혜리 기자 2022. 5. 16. 15: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야근, 게임업계, 게임산업 노동자 관련 이미지. 김상민 기자

초과 노동시간을 세세히 따지지 않고 하나의 급여로 일괄해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를 규제하겠다고 했던 문재인 정부는 결국 규제 지침을 발표하지 않은 채 임기를 끝냈다. 포괄임금제는 공짜 야근과 장시간 노동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대표적 현안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노동시간 유연화만 내세울 뿐 포괄임금제 규제는 언급하지 않아 노동계에선 우려가 나온다.

16일 경향신문이 윤미향 무소속 의원실을 통해 한 질의에서 고용노동부는 “포괄임금 업무 지침은 현재 그간의 판례 분석 및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통해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은 연장·휴일·야간근로는 통상임금의 1.5배를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사무직·연구직을 중심으로 포괄임금제가 퍼졌고, 일한 만큼 대가가 지불되지 않고 장시간 노동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노동계는 폐지를 주장해왔다. 근로기준법의 가산수당 규정은 노동시간을 억제하려는 의미인데, 포괄임금제는 이를 형해화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에 포괄임금제 규제를 포함시켰고, 노동부는 업무 지침 마련에 나서 그 초안이 2017년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초안에선 노동시간 산정이 실제로 어려운 때만 예외적으로 포괄임금제를 허용하고, 일반 사무직엔 적용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이 지침을 발표하지 않았고, 아직도 검토중이라는 것이다. 노동부는 윤 의원실에 보낸 답변에서 “현재도 그간의 대법원 판례에 따라 포괄임금 방식의 임금 계약이라고 하더라도 근로기준법을 위반할 수 없다고 해석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법 위반이 적발될 경우 법에 따른 조치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가산수당 미지급은 형사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노동부 설명과는 딴판이다. 노동부가 전국의 10인 이상 사업체 2522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10월 ‘포괄임금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37.7%는 법정수당을 실제 일한 시간으로 계산해 지급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지급하고 있었다. 포괄임금제가 29.7%, 고정된 금액 지급(고정OT 약정)이 8.0%였다. 고정OT 운영 업체의 27.7%는 고정OT 금액이 실제 일한 시간에 따른 수당액에 미달할 경우 차액을 추가 지급하지 않았다. 전체의 9.4%는 노동자들의 출퇴근 시각 등 노동시간을 기록·관리하지 않고 있었다.

박성우 노무사는 “현실에서 포괄임금제는 약정 자체만으로 제한 없는 장시간 노동을 하는 방식으로 기능하지만, 이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대해 노동부가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은 시간에 따른 대가의 지급이라는 임금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따르든지 임금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하지만, (둘 다 하지 않고) 편법으로 포괄임금제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8월1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참여연대, 알바노조,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민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포괄임금제 규제 지침 발표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김기남기자

실태조사에서 포괄임금제·고정OT 운영 업체 중 60.2%는 실제 노동시간으로 계산 지급하더라도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노동시간이 많아 초과차액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업체는 21.4%, 관리·계산 등 행정적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업체는 9.9%였다. 이들 업체는 추가 비용으로 현행 비용 대비 12.9% 증가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포괄임금제·고정OT를 폐지한 업체의 23.1%는 폐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 부정적 평가(11.9%)보다 많았다. 보통이 65.0%로 다수였다. 포괄임금제를 규제하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과장됐을 수 있다고 볼 만한 대목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자 2020년 류호정 정의당 의원 등이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후 논의 진척은 없다.

더욱이 포괄임금제 규제는 윤석열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선 언급조차 없다. 반면 현 정부는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완화’를 내걸었다. 일정 이상의 연간 임금소득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 연장근로수당과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과 비슷하다. 정경은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웬만한 대기업 사무직에 대부분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이 정책을 도입한다면) 노조가 강력히 반발할 것이고, 노·사·정 관계가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며 “노동시간 유연화가 대단한 노동시간 선진화 정책인 것처럼 말하면서 전근대적인 포괄임금제는 그대로 두겠다는 게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의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보기술(IT) 대기업들과 대형 게임회사들이 잇따라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에 대한 우려도 있다. 김환민 IT노조 부위원장은 “(IT·게임업계에) 인력 수요가 넘치는 상황이기 때문에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임금을 올리지만, 일시적 현상이지 노동권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조치로써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김 부위원장은 “대기업들은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는 대신 임금 인상을 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격차가 발생한다”며 “양극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손을 놓아서는 안 되고, 포괄임금제 폐지를 더욱 제도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전 서면답변서에서 “장관에 취임하면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보고 합리적인 방안이 있는지 살펴보겠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이 장관은 2014년 4월 한국노총 사무처장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근로시간 단축 공청회에 참석해서는 “탈법적인 포괄임금제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미향 의원은 “스타트업 등을 중심으로 열정페이의 근원으로 지적돼온 포괄임금제 규율이 시급한 상황에서 새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기조와 맞물려 현장 악용 사례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노동부는 현장실태를 토대로 하루빨리 제도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