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파리 33시간만에.. 린드버그 대서양 첫 단독 횡단비행

김지은 기자 2022. 5. 1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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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라이트 형제가 12초 동안 36m를 날아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을 성공한 후 사람들은 더 멀리 더 오래 날고 싶어 했다.

1919년 뉴욕의 호텔 갑부 레이먼드 오티그는 뉴욕-파리 간 논스톱 비행에 2만5000달러의 상금을 내걸었다.

1927년 5월 20일 아침, 물 1ℓ와 샌드위치 몇 조각만을 챙긴 린드버그는 뉴욕 롱아일랜드 루스벨트 비행장을 홀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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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린드버그가 1927년 5월 21일 대서양 무착륙 단독 횡단에 성공하고 파리 르부르제 공항에 도착하자 엄청난 환영 인파가 비행기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자료사진
찰스 린드버그. 자료사진

■ 역사 속의 This Week

1903년 라이트 형제가 12초 동안 36m를 날아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을 성공한 후 사람들은 더 멀리 더 오래 날고 싶어 했다. 1919년 뉴욕의 호텔 갑부 레이먼드 오티그는 뉴욕-파리 간 논스톱 비행에 2만5000달러의 상금을 내걸었다. 내로라하는 비행사들이 뛰어들었지만 모두 실패했고 심지어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우편항공기를 조종하던 스물다섯 살의 평범한 청년 찰스 린드버그(1902∼1974)도 도전장을 냈다. 그는 세인트루이스 사업가들에게 자금을 지원받아 비행기를 제작하고 ‘세인트루이스의 정신(Spirit of St. Louis)’이라 이름 붙였다. 파리까지의 거리는 5815㎞, 장거리 비행을 위해선 무게를 가볍게 하고 연료를 최대한 싣는 것이 관건이라 생각해 라디오와 무전기뿐 아니라 생존 장비인 조명탄과 낙하산도 포기했다. 목숨을 건 도전이었다. 1927년 5월 20일 아침, 물 1ℓ와 샌드위치 몇 조각만을 챙긴 린드버그는 뉴욕 롱아일랜드 루스벨트 비행장을 홀로 날아올랐다. 망망대해를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날고 또 날아 마침내 에펠탑의 불빛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출발한 지 33시간 30분 만인 21일 밤 파리 르부르제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자 지켜보던 파리 시민들은 열광했다.

대서양 첫 무착륙 단독 횡단에 성공한 린드버그는 단번에 영웅으로 떠올랐고 미국은 떠들썩했다.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린드버그와 비행기 수송을 위해 군함을 보냈고 뉴욕에서 대대적인 환영 행사가 열렸다. 뉴욕타임스는 16개 면에 걸쳐 기사를 실었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 1호로 선정했다.

유명인이 되고 2년 뒤 결혼한 린드버그는 1932년 생후 20개월 된 아들이 유괴당한 후 살해되는 사건으로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반유대주의자로 나치 정권으로부터 훈장을 받는가 하면 미국의 2차대전 참전을 반대하는 발언 등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 이후 항공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했고 그는 개척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모험을 함께했던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호는 미국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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