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5000만년간 수천종 진화.. 병자에겐 약초, 연인에겐 사랑의 증표

기자 2022. 5. 1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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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봄 가드너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꽃 작약. 꽃이 큼직해서 흔히 함박꽃이라 불리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약용, 관상용으로 재배됐다. 게티이미지뱅크
1870년 마네가 그린 ‘작약과 젊은 여인’. 미국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소장
1882년 클로드 모네가 그린 ‘작약 꽃병’.

■ 박원순의 지식카페 - (15) 작약

동서양 모두 古代부터 약효 언급되고 관상용으로도 재배

씨앗·뿌리는 간질·발작에 효과 있고 꽃은 차로 즐겨

장미가 구애할 때 사용됐다면 작약은 구애에 성공했을 때 전하는 꽃

조선시대부터 병풍·장신구·그릇 등에 장식

커다란 작약 꽃들이 정원에 피어나면 수선화와 아네모네 같은 봄꽃들이 진 자리는 다시 한 번 풍성하고 화사한 꽃의 향연을 펼친다. 크고 화려한 꽃잎들 가운데 노란색 혹은 주황색 수술이 탐스럽게 꽃밥을 틔우고 맨 안쪽엔 몽글몽글한 심피가 곱게 자리 잡고 있다. 한 송이 꽃만 가지고도 넉넉하게 마음을 꽉 채우는 감동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작약의 진화 역사는 1억5000만 년 전 백악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인류 문명의 오랜 역사 속에서도 약초와 관상용 꽃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약 서른 종의 원종들이 있으며 주로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 서부 등 북반구 지역의 초원, 덤불숲, 암석지에서 살아간다. 작약은 하나의 과(Paeoniaceae)와 하나의 속(Paeonia)을 이루고 있는 식물이다. 겨울에 지상부가 사라지는 초본 식물인 작약(P. lactiflora), 목본 식물로 자라는 모란(P. x suffruticosa)을 비롯하여 중세시대 약용으로 쓰였던 유럽작약(P. officinalis)도 모두 작약속의 구성원들이다. 서로 다른 작약 종들을 교배시켜 만든 품종들은 수천 종이 넘는다.

작약 종류를 통틀어 일컫는 영어명 피어니(peony)와 라틴어 속명인 파이오니아(Paeonia)는 모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치유의 신 파이온(Paeon)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신들의 의사였던 파이온은 올림푸스산에서 채취한 작약 뿌리로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의 상처를 치료해 주어 스승인 아스클레피오스의 분노를 샀다. 평소에도 제자인 파이온을 심히 질투했던 아스클레피오스는 대로하여 그를 죽이려 했지만 제우스가 파이온을 살려 작약 꽃으로 피어나게 했다.

작약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약초로 쓰였다. 하지만 작약이라고 다 같은 종류가 아니다. 그리고 동서양에서 말하는 작약이 서로 다르다. 가령 그리스 미노아 문명의 프레스코화에 등장하는 작약은 파르나소스산에 자생하는 진홍색 그리스모란(Paeonia parnassica)이다. 또한 유럽에서 약초로 재배된 종류는 주로 유럽작약(P. officinalis)과 발칸작약(Paeonia mascula)이다. 한편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서 쓰인 작약 종류는 주로 작약(P. lactiflora)과 모란(P. suffruticosa)이다.

1세기 그리스의 약물학자 디오스코리데스는 유럽작약에 대해 언급하면서 씨앗과 뿌리가 간질 발작 등에 특효가 있다고 구체적으로 약효를 언급했다. 유럽에서 작약 종류는 16세기 무렵부터 관상용으로도 재배되었다. 네덜란드의 조각가 크리스핀 반 데 파스(Crispin van de Passe)의 유명한 화보집 ‘꽃의 정원’(Hortus Floridus, 1614)에는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온 최신 품종들이 수록되었는데 거기에 작약 종류가 포함되었다.

중국 원산의 작약(P. lactiflora)이 유럽에 상륙한 건 비교적 늦은 시기다. 18세기 말 러시아 지역에서 활동했던 프로이센의 동식물학자 피터 팔라스(Peter Pallas)가 시베리아 아무르강 유역으로부터 작약 표본을 처음 가지고 왔다. 그래서 작약 학명의 말미엔 명명자인 그의 이름(Pall.)이 붙어 있다. 참고로 락티플로라(lactiflora)라는 종명은 우윳빛 꽃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육종가 니콜라 레몬(Nicolas Lemon)은 새롭게 도입된 이 작약과 유럽작약(P. officinalis)을 처음으로 교배시켰다. 또한 그의 뒤를 이어 이 작약을 위트먼작약(P. wittmaniana)과 교배시켜 새로운 품종을 만든 육종가도 있었다. 그 후 록키모란(P. rockii)이 도입된 데 이어 1844년 폰 지볼트(Philipp Franz von Seibold)가 일본에서 목본성 모란(P. suffruticosa)을 들여와 작약 종류의 품종 육종은 더욱더 크게 융성했다. 1851년 원예학계에 소개된 흰색 작약 ‘페스티바 막시마’(P. lactiflora ‘Festiva Maxima’)는 그때 이후로 줄곧 많은 사람의 최애 품종이 되어 왔다.

1860년대 파리에 소개된 이후 많은 사람이 작약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19세기 후반엔 인상주의 화가들도 작약에 큰 관심을 보였다. 모네와 마네, 르누아르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작약을 그렸다. 특히 르누아르는 187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도 작약 정물화를 그렸고, 고흐와 모네 역시 1880년대 작약 꽃이 담긴 화병을 즐겨 그렸다. 빅토리아 시대 꽃의 언어에서 작약은 사랑과 로맨스, 결혼을 뜻했다. 장미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작약은 약간 다르게 쓰였다. 장미는 구애할 때 사용했다면 작약은 구애에 성공했을 때, 즉 사람의 마음을 얻었을 때 상대에게 전하는 꽃이었다. 작약의 인기가 이렇게 높다 보니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영국에는 수백 명의 직원을 고용한 켈웨이 앤드 손(Kelway and Son) 같은 대규모 작약 농장이 생겨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작약은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작약 육종가 올리버 브랜드(Oliver Brand)는 1894년 무렵 천 종류가 넘는 초본성 작약 품종을 보유했고, 그의 농장은 1920년대 세계 최대의 작약 생산지가 되었다. 하지만 현대 작약의 아버지로 여겨진 사람은 따로 있었다. 뉴욕 주의 손더스(A. P. Saunders)는 4종의 작약을 기본으로 하여 선홍색, 노란색을 비롯한 다양한 색깔의 품종을 개발하였는데 각각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남겼다. 작약은 1957년 인디애나 주를 상징하는 꽃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디애나 주에는 1800년대 유럽에서 미국으로 최초 도입된 작약의 후손들 일부가 아직도 자라고 있다.

동양에서 작약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기원전 11세기부터 약 800년의 역사를 가진 주나라의 제후국 중 하나였던 정나라에서는 삼짇날 봄놀이 때 서로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작약 꽃을 주고받았다. 기원전 9∼7세기에 완성된 중국 최초의 시가집 ‘시경’에서도 남녀가 사랑의 증표로 작약 꽃을 주고받는 장면이 나온다. 작약은 동양에서 일찍이 그 아름다움으로 주목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원전 206년에서 기원후 220년 사이에 쓰인 약초 의학서인 ‘신농본초경’에는 작약의 약효가 상세히 기술되었다. 중국에서 작약이 관상용으로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7세기 무렵이었다. 중국 황실의 정원사들은 예술가들이 병풍, 직물, 도자기 따위에 작약을 소재로 한 작품을 그릴 수 있도록 작약을 정성껏 가꾸었다. 중국의 연구에 따르면, 모란(P. suffruticosa)은 원래 양산모란(P. ostii)을 야생 록키작약(P. rockii)과 다른 두 종과 교배시켜 수 세기 동안 육종한 결과로 탄생했다고 한다. 꽃은 작약과 비슷한데 줄기가 나무처럼 자라 ‘목작약’이라 불리기도 했다. 모란은 뿌리껍질에 소염, 진통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하여 3세기부터 약초로 재배되어 오다가 6∼7세기부터는 관상용으로도 쓰였다. 당나라에서는 귀족들만 모란을 즐겼는데,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보다 널리 대중화되었다. 특히 다양한 색깔의 겹꽃 품종들이 높게 평가되었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기록은 작약보다 모란이 먼저다. ‘삼국유사’(1281)에 따르면 모란은 신라시대 진평왕(재위 579∼632) 때 등장한다. 선덕여왕은 공주 시절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그 꽃에 향기가 없을 거라고 추측했는데 훗날 실제 꽃이 도입되었을 때 진짜로 향기가 없어 선덕여왕의 영민함에 모두 탄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무색하게도 사실 나비는 모란 꽃을 아주 좋아한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벼슬하는 집들이 앞다투어 모란을 심었다. 모란이 그려진 고려청자만 보아도 꽃의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조선시대에도 모란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왕비와 공주를 위한 왕가의 의상뿐 아니라 왕실 권위를 상징하는 물품에 모란이 그려졌고, 장례식에서도 고인의 혼을 달래고 조상신을 기리는 데 사용되었다. 민간에서도 부귀영화에 대한 염원으로 모란을 가까이하며 병풍, 자개, 장신구, 그릇, 가구 따위에 모란 무늬를 새겼다. 작약에 대한 기록은 11세기 고려시대 문종 때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작약이 모란보다 더 일찍 약초로 재배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약재로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작약의 꽃은 차로 즐기거나 샐러드로 먹기도 한다. 사람만큼이나 작약 꽃을 기다리는 존재들이 또 있다. 바로 개미들인데 개미들은 달콤한 꽃꿀을 먹기 위해 작약의 꽃봉오리가 열리기도 전에 줄지어 기다린다. 물론 벌과 나비들도 그 달콤함을 즐긴다.

모란과 작약은 모든 계절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섬세한 가드너의 늦봄 시즌 필수템이다. 다만 개화기가 짧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시인 김영랑은 1935년 아름다운 모란의 짧은 개화기를 절절한 심정으로 노래했다. 모란이 지면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긴 나머지 360일 동안 마냥 섭섭해 울고, 다시 모란이 피기까지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모란과 함께 작약이 있어 그 짧은 개화기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5월 초 모란이 질 무렵 작약의 꽃봉오리가 영글어 1∼2주 후 꽃을 피운다. 그래서 5월 한 달은 모란과 작약으로 정원이 아름답다. 나무인지 풀인지 따지는 것 외에 모란과 작약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작약은 다 자란 높이가 60∼70㎝ 정도인 데 반해, 모란은 최대 2m까지도 자란다. 모란은 잎들이 깃 모양으로 자라는 우상복엽인 데 비해 작약은 세 개의 길쭉한 타원형 잎들이 모인 삼출엽을 가진다. 모란 잎엔 광택이 없지만, 작약 잎은 광택이 난다.

작약을 정원에 심을 땐 9-10월이 적기다. 가을에 뿌리가 잘 나기 때문에 이 시기에 심으면 뿌리 활착이 잘 되어 겨울을 잘 날 수 있다. 20세기 초 영국 가드닝의 가장 예술적인 감성을 담은 로런스 존스턴의 히드코트 매너 정원엔 이맘때쯤 작약이 탐스럽게 피어난다. 구례의 삼백 년 고택 쌍산재에도 장독대 화단이며 서당채 앞뜰과 오솔길에 활짝 피어난 작약 꽃이 절정을 이룬다. 제철 음식이 있듯 제철을 즐기는 꽃도 따로 있다. 정원에 앞으로 피어날 다른 꽃들도 많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름다운 작약 꽃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이 꽃 덕분에 남은 한 해도 잘 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 작약(Paeonia lactiflora)

티베트 동부에서 중국 북부와 시베리아 동부까지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에 걸쳐 분포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꽃이 큼직해서 함박꽃이라 불리며 예로부터 약용, 관상용으로 재배되었다. 50∼70㎝ 높이로 자라며 모란이 진 후 늦봄에 개화한다. 종명인 락티플로라(lactiflora)는 우윳빛 꽃을 뜻하지만 붉은색 꽃도 있다. 18세기 중반 유럽에 도입되어 수많은 현대 품종의 모본과 부본이 되었다. 비옥하고 배수가 잘되는 흙과 햇빛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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