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서 가져온 흙에서 식물 싹이 돋았다, 하지만..

곽노필 2022. 5. 1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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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달 토양 재배 실험 성공
발육 속도는 지구 토양보다 느려
달기지 시대 대비한 첫걸음 뗀 셈
씨앗을 심은 지 6일 후의 애기장대. 왼쪽은 달 모사토양에서 키운 것, 오른쪽은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이 가져온 달 표토에서 키운 것. 플로리다대 제공

달에서 가져온 흙으로 사상 처음 식물을 재배한 실험 결과가 나왔다.

좋은 소식은 달 토양으로도 식물 재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나쁜 소식은 지구 토양에서보다는 식물의 발육이 부진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달 토양과 환경을 모방한 흙이나 온실에서 작물을 재배한 적은 있지만 실제 달 토양에서 재배 실험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9년엔 중국의 창어4호가 달에 착륙해 목화씨의 싹을 틔우는 데 성공한 바 있으나 착륙선 내 특수 용기에서의 실험이었다.

미국 플로리다대 연구진은 아폴로 우주선에서 가져온 달 토양으로 애기장대 식물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Communications Biology)에 발표했다. 애기장대는 과학자들이 일찌감치 유전자를 완전히 파악해 놓은 식물이어서 과학적 분석을 위한 실험에 잘 쓰인다.

연구진은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을 통해 아폴로 11호(1969년), 12호(1970년), 17호(1972년)가 가져온 달 토양을 확보해 실험에 사용했다.

달의 표토(오른쪽 화분)에는 물을 밀어내는 성질(소수성)이 있어 물을 주면 표면에 방울처럼 맺힌다. 따라서 물을 잘 저어주어야 토양에 스며든다.

11년간의 기다림 끝에 받아낸 12g

이번 실험은 오랜 세월의 기다림 끝에 성사된 것이다. 연구진은 달 토양을 이용한 재배 실험을 위해 지난 11년 동안 세 번에 걸쳐 나사에 달 표토 임대를 신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하다 지난해에 비로소 허락을 받았다.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이 6번의 달 착륙 임무에서 가져온 달 표토와 암석은 382kg에 이른다. 나사는 산화와 오염 방지를 위해 휴스턴의 존슨우주센터 내 질소 저장고에 이것들을 보관하고 있다.

나사의 엄격한 심사 문턱을 넘고 연구진이 받아낸 달 토양은 고작 12g이었다. 연구진은 골무 크기의 화분 12개에 각각 0.9g의 달 토양을 5mm 깊이로 넣은 뒤 애기장대 씨앗을 3~5개씩 심고 영양액을 주입했다.

연구진은 비교를 위해 화산재로 만든 달 모사토양에도 같은 씨앗을 심었다. 연구진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실험 앞에서 과연 싹이 틀까 반신반의했지만 결과는 성공이었다. 거의 모든 달 토양 화분에서 싹이 나왔다. 연구진은 “씨앗을 심고 나서 이틀 뒤부터 싹이 트기 시작했으며 달 토양과 대조군이 모두 6일째까지 똑같은 발육 상태를 보였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안나-리사 폴 교수는 “이는 달 토양이 식물 발아와 관련한 호르몬과 생체 신호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걸 말해준다”고 말했다.

씨앗을 심은 지 16일 후의 애기장대. 달 모사토양에서 자란 것(왼쪽)과 달 표토에서 자란 것(오른쪽)의 성장 속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심은 지 6일째부터 성장 속도 차이

그러나 이후부터 달 토양 재배 식물과 다른 식물의 성장 양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달 토양에 심은 애기장대의 성장 속도가 느려졌다. 뿌리는 더 뻗지 못했으며 잎도 더 작았다. 잎에는 스트레스의 징후로 볼 수 있는 붉은 반점도 나타났다.

연구진은 20일 후 애기장대가 꽃을 피우기 직전에 애기장대를 수확해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염분이나 금속, 활성산소에 노출된 식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유전자 발현을 확인했다. 폴 교수는 “이는 식물이 달의 토양 환경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는 근거”라고 말했다.

아폴로 11호, 12호, 17호가 가져온 달 표토(위 세 줄)와 달 모사토(맨 아랫줄 JSC1A)에서 자란 애기장대의 수확 직전 모습. 성장 속도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

표면에 가까운 흙일수록 성장 느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채취한 흙의 위치에 따라 식물의 성장 양태가 달랐다는 점이다. 얕은 곳에서 채취한 토양(아폴로 11호), 즉 태양풍에 더 많이 노출된 토양에서 자란 식물이 스트레스 징후를 더 많이 보였다. 특히 한 식물은 더 자라지 못하고 고사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은 2030년대 이후 달에 상주 기지를 둔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달 기지를 두려면 아무래도 달에서 직접 작물을 키워 먹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달 토양은 미생물이나 수분이 없다는 점에서 지구의 흙과 매우 다르다. 또 지구와 같은 대기가 없어 우주에서 날아오는 입자들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다. 그러나 토양을 이루는 기본 구성물질은 같다는 점에서 적절한 물과 빛, 공기 조건을 갖춰줄 경우 식물 발육과 성장의 터전 역할을 할 여지는 있다.

이번 실험 성공을 근거로 달 현지에서도 토양을 이용한 작물 재배가 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달 토양 특성과 재배 최적화 기술에 대한 더 세밀한 연구가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 이번 실험으로 일단 가능성은 확인한 셈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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