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과학이야기] 다이옥신과 대체시험법

박한진 안전성평가연구소 예측독성연구본부장 2022. 5. 1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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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진 안전성평가연구소 예측독성연구본부장

'고엽제'는 베트남전의 참상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 중 하나다. 에이전트 오렌지로도 알려진 고엽제는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된 제초제로, 여기에 포함된 불순물인 다이옥신 중 하나인 TCDD(2,3,7,8-Tetrachlorodibenzo-p-dioxin)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TCDD는 청산가리나 비소보다도 더욱 강력한 독성을 가지며, 각종 암과 질병 그리고 기형을 유발하는 물질로 아직도 고엽제에 노출된 사람들은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렇듯 다이옥신의 무서운 점은 체내에서 쉽게 분해돼 배출되지 않고 10년 이상 축적돼 지속적으로 독성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TCDD의 독성작용을 밝히기 위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됐고, 연구자들은 TCDD가 설치류의 간과 피부에서 암을 유발한다는 것을 밝혔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1982년 'Nature'에 게재되면서 'TCDD=발암물질'이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TCDD가 암을 유발하는 과정은 세포 내에 존재하는 수용체 단백질인 AHR(aryl hydrocarbon receptor)에 결합해 AHR을 지속적으로 활성화시킴으로써 다양한 독성작용을 유발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AHR은 TCDD뿐 아니라, 담배의 발암성분으로도 잘 알려진 벤조피렌(benzopyrene)이나 육류 등을 불에 굽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향족 탄화수소(polycyclic hydrocarbon) 화합물과도 결합해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TCDD가 1급 발암물질로 잘 알려져 있지만, 코호트 조사를 통한 역학적 증거는 TCDD가 사람에서도 암을 유발한다는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하고 있고, 사람에 대한 TCDD의 발암 유발 가능성은 불분명하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 연구 결과는 종간 유전적 차이로 인해 설치류의 AHR 단백질은 사람에 비해 TCDD와 10배 이상 친화력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으며, TCDD-AHR 단백질의 친화력이 AHR의 활성화 및 TCDD의 독성 유발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제시했다.

생명·의학연구에서 특히,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은 필수 불가결한 과정 중의 하나다. 동물실험을 통한 안전성평가 결과는 신약 개발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동물실험에서 독성이 발견된다면 임상시험조차 수행하지 못하고 신약 개발이 중단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발암성시험은 약물을 설치류 동물모델에 18-24개월간 매일 반복적으로 투여·투약해 종양발생 여부를 확인하는 시험으로, 장기간 투약이 필요한 약물의 안전성 검증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하는 시험이다. 설치류 동물모델을 이용한 발암성시험은 사람에 대한 약물이나 화합물의 발암 위험성을 평가하는 가장 유용하고 신뢰성 있는 시험이지만, 일부 TCDD의 사례처럼 동물실험만으로 사람에 대한 독성을 정확하게 예측·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유럽연합을 필두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동물보호 및 복지를 위한 정책적, 사회적 움직임은 실험동물을 이용한 화장품 독성시험을 전면 금지하는 규제로 이어져 왔다. 의약품이나 화학물질의 독성평가에서도 실험동물을 대체하거나 동물실험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에 대한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화장품과 달리 의약품이나 화학물질은 독성은 사람의 건강이나 생명에 치명적이기에 동물실험에 기반한 독성시험이 당장은 대체되기 어렵겠지만, 실험동물의 희생을 줄이고 동물실험의 기술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대체시험법의 개발은 사람의 건강과 실험동물의 복지를 위해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절실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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