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뇌사 아들 장기 기증 70대 아버지, '생명나눔 지식인' 제2인생

나광현 2022. 5.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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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지식 공유서비스 '지식iN'에 장기 기증 관련 질문이 올라오면 어김없이 답변을 다는 이가 있다.

홍씨는 바로 이 방에서 생명 나눔을 설파하는 '장기 기증 지식인'으로서 제2의 삶을 꾸리고 있다.

"동생이 생전 장기 기증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요건이 안 됐죠. 윤길이도 꾸준히 헌혈을 해왔는데, 세상을 뜨기 전 장기를 기증한다면 보람 있는 일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딸도 홍씨 생각에 공감했고, 윤길씨는 6명에게 새 생명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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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in' 장기기증 전문 답변 홍우기씨>
뇌출혈 아들 장기 기증 결정.. 6명에 새 생명
참척 시련 딛고 6년간 지식iN에 3500개 답변
장기기증 필요성 설파.. 기증원도 '지식인' 공인
13일 오전 홍우기씨가 2016년 장기기증으로 6명에게 새 삶을 주고 세상을 떠난 아들의 방 안에서 고인이 생전에 매던 넥타이를 똑같이 매고 그의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홍씨는 지금도 강연 등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이면 이 넥타이를 매고 집을 나선다고 한다. 최주연 기자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지식 공유서비스 '지식iN'에 장기 기증 관련 질문이 올라오면 어김없이 답변을 다는 이가 있다. 바로 '윤길아빠'다. 그가 지금까지 지식iN에 게시한 장기 기증 답변은 3,550여 개이고, 그중 2,330여 개는 질문자나 네티즌들이 도움이 되는 답변으로 '채택'했다.

윤길아빠는 2015년 뇌사 상태에 빠진 아들의 장기를 기증한 홍우기(73)씨다. 한국일보가 홍씨 집을 찾은 13일, 그는 아들 윤길(사망 당시 34세)씨가 쓰던 방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윤길씨가 떠난 지 7년이 지났지만 그의 방엔 컴퓨터, 침구, 옷가지, 사진 등 생전 흔적이 온전했다. 홍씨는 바로 이 방에서 생명 나눔을 설파하는 '장기 기증 지식인'으로서 제2의 삶을 꾸리고 있다.


7년 전 아들 잃고 '지식iN 윤길아빠' 되다

13일 오전 홍우기씨가 서울 소재 자택의 아들 방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가운데 컴퓨터에 그가 사용하고 있는 지식iN 개인 페이지가 띄워져 있다. 홍씨의 지식iN 프로필 사진은 7년 전 세상을 떠난 아들 윤길씨의 대학 졸업사진이다. 최주연 기자

"아들 방에서 '쿵' 소리가 났죠. 가까운 구급차들은 다 출동 나갔고… 골든타임을 놓쳐 뇌사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날, 비가 내렸어요."

상견례를 5일 앞둔 2015년 7월 29일 저녁, 윤길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눈을 뜨지 않는 아들 곁을 지키던 홍씨 머릿속에 20년 전 세상을 떠난 동생이 떠올랐다. "동생이 생전 장기 기증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요건이 안 됐죠. 윤길이도 꾸준히 헌혈을 해왔는데, 세상을 뜨기 전 장기를 기증한다면 보람 있는 일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딸도 홍씨 생각에 공감했고, 윤길씨는 6명에게 새 생명을 선사했다.

아들을 보낸 슬픔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직장을 관뒀고 1년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홍씨가 "말 그대로 폐인의 삶이었다"고 회상한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길씨가 꿈에 찾아왔다. "말없이 환히 웃는 얼굴로 저를 내려다봤어요. 슬퍼하지만 말고 남은 인생을 나대로 잘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고통을 딛고 할 일을 찾은 홍씨가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이 지식iN 활동이었다. 활동을 시작하던 2016년 당시 장기 기증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이 늦고 부실한 것을 보고 홍씨는 팔을 걷어붙였다. 아들 윤길이의 거룩한 나눔을 세상에 알려 잊히지 않게 하고도 싶었다. 그렇게 '윤길아빠'가 탄생했다.


"하루 6명의 이식 대기자 세상 떠나... 활동 계속"

홍우기씨가 13일 오전 자신이 '지식인' 답변 작업을 하는 아들의 방 안에서 장기기증 관련 증명서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관계기관에 전화를 걸고 공부하면서 하나씩 달던 답변이 어느새 3,000개를 훌쩍 넘었다. 지난해 3월엔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의 '생명나눔 지식메이트(MATE)'로 선정됐다. 장기 기증 홍보에 있어 홍씨의 헌신과 실력을 당국이 공인한 셈이다. 학교에 강연도 나간다. 학생들에게 장기 기증은 낯설고 생경한 일이지만, 홍씨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경청을 이끌어낸다고 한다.

한국의 장기 기증은 아직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홍씨는 "연간 3,000명 정도가 뇌사 상태로 사망한다고 하는데 지난해 장기 기증자는 442명으로 20%가 채 안 된다"며 "그 와중에 하루 6명의 이식 대기자가 세상을 떠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KODA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4만6,749명에 달한다.

홍씨는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 변화와 희망 등록 확대를 위해 계속 힘쓰겠다고 말했다. 홍씨에 따르면 생전 장기 기증 희망 등록을 한 사람이 뇌사 상태에 빠지면, 최종 결정자인 가족들이 본인 뜻에 따를 확률이 80%에 달한다. "뇌사에 빠진 가족을 그냥 보낼 수도 있지만, 기증으로 나눠준 생명이 어딘가에서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좋겠습니다."

홍씨는 이날도 아들 윤길씨의 넥타이를 매고 강연길에 나섰다.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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