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통치는 기사보다 치밀한 보도가 더 아파

권태호 입력 2022. 5. 16. 05:06 수정 2022. 5. 1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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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책무위원회 좌담회
언론불신시대, 한겨레가 신뢰 더 굳혀가야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위원회 좌담회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사옥에서 열렸다. 참석한 외부 책무위원인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 정은령 서울대 에스엔유(SNU)팩트체크 센터장,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정은주 <한겨레> 편집국 콘텐츠총괄, 권태호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겨레>는 2020년 5월 취재보도준칙 개정안을 마련하고, 준칙 준수 여부를 점검하는 저널리즘책무위원회를 조직했다. 이 위원회는 외부 미디어 전문가 3명과 사내 인사 4명(저널리즘책무실장, 편집국 콘텐츠총괄 등)으로 구성된다. 외부 책무위원들은 한겨레 콘텐츠에 대한 평가 및 비평을 담아 격주에 한번씩 ‘책무실 통신’이라는 이름으로 한겨레 기자들에게 보내온다. 또 한겨레 콘텐츠와 관련한 주요 사항에 대해 조언을 한다. 현재 지난해 10월부터 2기 책무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창간 34주년을 맞아 한겨레는 외부 책무위원들로부터 한겨레를 향한 애정 어린 고언을 들었다. 좌담회는 지난 6일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저널리즘책무위원회 좌담회 참석자>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정은령 서울대 SNU팩트체크 센터장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권태호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 정은주 <한겨레> 편집국 콘텐츠총괄

권태호 먼저 저널리즘책무위원들의 개인적 소감으로 시작했으면 한다.

박재영 굉장히 큰 경험이다. 한겨레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 평가를 많이 교정하게 됐고, 예전에 못 봤던 것도 볼 수 있었다. 다만 수차례 지적했던 부분들이 여전히 그대로인 것들이 조금 아쉽지만, 구성원들이 인지하고 있다고 믿기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정은령 ‘한겨레 책무위원’보다 ‘저널리즘 책무위원’ 쪽에 더 방점을 두려 한다. ‘한국의 저널리즘이 어떠해야 되겠는가’라는 지점에서 한겨레를 본다. 한겨레 내부자 시선으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것들도 바깥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려 한다.

감정적 기사문체·제목 보여…차분함과 냉정함 잃지 않길

심석태 한겨레 책무위원이 된 뒤로는 기사 외에도 한겨레가 거론되는 사안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책임감과 기대가 있다. 그런 마음으로 읽으니 읽는 게 힘이 든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한겨레 취재보도준칙을 깔아놓고 수시로 열어보면서 신문을 읽는다. 지적했는데도 잘 안 고쳐지는 부분을 보면, 어쩔 수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자들 중에는 지적은 잘하는데, 지적받는 건 못 견디는 유리멘탈들이 많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좀 거칠더라도 (자신의 기사에 대해) 지적당해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책무실 통신’을 보내기 전엔 늘 망설이곤 한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은주 현장에선 그 순간에 판단해야 하고, 어떤 건 알지만 못 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보내주는) 피드백에 대해 좀 억울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지적하신 것들 중 우리가 당장 해볼 수 있는 것들은 시도하려 애쓰기도 했다.

권태호 계속 지적했는데도 잘 안 고쳐지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

심석태 쿨다운(cooldown) 했으면 좋겠다. 윤석열-추미애, 검찰개혁 공방 등을 거치며 한겨레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다. 언론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정서적 판단을 배제하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보려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될 것 같다.

권태호 기사가 뜨겁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심석태 문체, 기사 선정 등이 정치적 맥락에서 읽힌다. 촛불집회, 대통령 탄핵 등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면 모르겠는데, 장기간에 걸쳐 계속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치로 직행할 때, ‘이게 말이 돼’라는 식으로 (기사가) 감정적이었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한달 두달, 대선이 지나도 계속된다. 그러다 보니 제목에서 오버가 나온다든지, 기사의 팩트가 정확하지 않은 게 나온다든지 하는 게 가끔 엿보인다.

익명비판 자제 등 취재보도 준칙 잘 지키면 한겨레 정체성 부각

정은령 한겨레 취재보도준칙 1장 1조에 ‘인권을 침해하는 모든 형태의 폭력, 차별, 혐오를 배척하고 고발한다’라는 게 있다. 그래서 한겨레가 어떤 사안에 대해 ‘이건 폭력, 차별, 혐오’라고 판단을 내리면, 그냥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컨센서스가 형성되는 것 같다. 기사는 (이런) 집단사고를 벗어나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또 (이런 기사에선) 의견과 사실이 구분이 잘 안된다. (기사 앞쪽) 리드에 ‘이렇게 본다’는 해설을 다 던져놓고 기사를 시작한다. 한겨레 기자들이 ‘이 경우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 폭력이나 혐오를 고발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기사를 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피해를 입는) 그 입장으로 들어가 자기가 해설하려는 욕망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기자는 그런 마음을 억제하고, 거리를 두고 보는 훈련을 해야 될 것 같다. 특히 제목이 많이 흥분한다. 일방적 비방을 담거나 분노하는 경우가 많다.

정은령 서울대 SNU팩트체크 센터장

권태호 한겨레 안에서도 서로 생각들이 조금씩 다르다. 과거와 달리, 한겨레 구성원들의 생각 스펙트럼이 꽤 넓어졌다.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도 정반대 생각이 우리 안에 동시에 있다고 본다. 어떤 분들은 100% 동감하며 ‘그것이 저널리즘의 자세’라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그러면 한겨레가 왜 필요해’라고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기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했다’라고 객관적 사실만 전하는 것, 어떻게 본다는 입장도 없이 그대로 전하는 건 <연합뉴스>와 다를 바가 뭐냐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편집부는 ‘이 정도는 기사에 있어야 되는데 왜 없지? 그럼 제목으로라도 우리 가치(또는 입장)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신문은 방송과 달리 독자들이 선택하는 매체다. ‘모든 언론은 철저히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쪽과 ‘기사에 가치를 담는 것이 한겨레 존재 이유’라는 생각들이 한겨레 내부에 혼재돼 있다고 본다.

정은령 사설과 칼럼에서 한겨레의 의견을 충분히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기사에선 그래선 안 된다고 본다. 기사에선 기자의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치밀하게 취재해 그 내용을 써야 한다. 사실과 의견이 분리되지 않는 이유가, 기사에서 그런 목소리를 직접 내려 하기 때문인데, 그것이 기사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본다. 한겨레는 연합뉴스와 달라야 한다. 그런데 취재가 촘촘해 보수 진영에 있는 사람이라도 ‘한겨레 보도는 너무 단단해서 아파’라고 해야지, ‘한겨레는 소리가 너무 커서 아파’라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건 아프지도 않다.

정은주 ‘왜 (기사에) 의견을 넣느냐’고 말씀하셨는데, 일부에선 반대로 ‘기사가 너무 드라이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라고 묻기도 한다. 특히 1면에는 한겨레의 시각을 넣어야 된다고 하는 분들이 한겨레 내부에서 다수라고 본다. 취재를 촘촘히 해 기사 구성이 탄탄해지도록 노력하겠다. ‘책무실 통신’을 밑줄 그어가며 보고, 지난 대선 때 ‘나의 선거, 나의 공약’ 기획을 하게 된 것도 “선거를 유권자 입장에서 보라”, “실명 보도를 하라”는 ‘책무실 통신’ 지적에서 착안했다. 그래서 다른 걸 일부 포기하면서 취재기자 18명을 투입할 수 있었다.

권태호 ‘다른 사실’을 갖고 있으면, 드라이하게 ‘사실’만 쓰면 된다. 그런데 그런 날은 거의 없다. 그때 ‘같은 사실’을 그대로 쓰면, ‘늦은 연합뉴스’가 된다. 그래서 ‘같은 사실’에 ‘다른 의견’을넣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통과했다. 1면 톱이다. 어떻게 쓸 것이냐, ‘법사위 통과했다, 국민의힘 항의했다, 청와대는 거부권 여부 답하지 않았다’, 이렇게 기사를 끝내면 한겨레 독자들이 항의할 수 있다. ‘기사가 이게 뭐냐, 아무 의미 없는 기사다. 조중동은 ‘검수완박, 끝내 통과’라며 저리 난리치는데 너네는 지금 뭐 하냐’고 할 것이다.

정은령 그래서 한국 언론이 같이 망하고 있다고 본다. 한겨레 편집권을 <조선일보>가, 조선일보 편집권을 한겨레가 갖고 있다. 취재를 더 치밀하게 하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더 높이는 것으로 자기 색깔을 보인다.

NYT는 준칙 준수가 사업전략…희생·비용 아닌 투자로 봐야

박재영 예전에 아무도 진보를 생각 않을 때, 한겨레가 진보라는 위치, 일종의 틈새를 잡았다. 지금은 언론 불신 시대다. 누구도 신뢰를 생각하지 않는데, 한겨레가 신뢰를 좀 더 굳히면 길이 있다고 본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권태호 취재보도준칙에 대해서도 말씀을 들었으면 한다.

정은령 상징적으로라도 이것 하나만은 엄격하게 지킨다는 걸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다. 예를 들면, 비판을 익명으로 하지 않는다든지. 지키기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다면 다른 언론사에도, 취재원들에게도 충격적일 것이다. 기사 방향보다 그냥 취재보도준칙을 지키면 좋은 기사가 된다.

심석태 한겨레가 처음 취재보도준칙을 만들었을 때 주목했다. 이를 실천하면 차원이 다른 콘텐츠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겨레가 다른 언론들이 잘 다루지 않는 부분들을 조명해내고 목소리를 못 가졌던 영역들에 대해 계속 새로운 의제들을 발굴해내고, 선한 역할을 분명히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제대로 조명받기 위해서라도 다른 분야에서 불충실한 저널리즘이란 소리를 듣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정은령 한겨레 취재보도준칙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취재보도준칙이 한겨레가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기자의 자부심과도 연결된다. <뉴욕 타임스>가 정파적으로 리버럴 미디어 바이어스를 갖고 있다고 얘기할지언정 촘촘하게 보도하는 것에 대해선 이의를 달지 못한다. 한겨레도 그래야 된다고 본다.

정은주 한겨레 기자들이 윤리적 문제에선 매우 충실한 것 같다. 그러나 취재하면서 지켜야 되는 보도준칙에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물리적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겨레가 종이신문 28면, 디지털 기사 160개 정도를 매일 내보낸다. 이를 14면, 80개로 줄일 수 있는가, 취재보도준칙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이를 포기한다고 하면 이를 독자들이 수용할 수 있을까, 아니면 기자 인력을 대폭 늘릴 수 있는가. 그래서 최소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부분부터 체크리스트를 만들면 어떨까 싶다.

권태호 몇가지는 가능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반론 없는(반론 시도하지 않은) 보도는 없다’, ‘상급자에게 공개 못 하는 익명 보도는 보류한다’ 등은 지금 당장이라도 지켜야 한다. 하루 기사 160개는 지금도 조선일보, <중앙일보>의 절반 수준이다.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 취재보도준칙 제대로 지키려면 기사 수 줄여야 한다면, 수익과도 연계된다. 편집국 차원을 벗어나 경영까지 같이 논의해야 된다.

박재영 규정이 있으니 지켜라가 아니라, 각자 이 규정에 대해 고민해보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또 취재보도준칙을 희생이나 비용이 아닌, 투자로 봐야 한다. 뉴욕 타임스는 준칙을 잘 지키는 게 비즈니스 전략이다. ‘아, 이래서 한겨레’라는 느낌이 오게끔 해야 한다.

정은령 언론이 이제 유튜브와도 경쟁하는데, ‘우리는 준칙을 지키는 보도를 한다’는 것 아니면, 언론이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권태호 취재보도준칙의 작성과 이행을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해온 게 사실이다. 결국 구성원의 동의와 이행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힘들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정은주 현장 기자들과 이 문제를 갖고 심도 있게 토론해 본 적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오른손잡이를 왼손잡이로 바꾸는 일처럼, 이건 힘든 일이다. 그래서 ‘책무실 통신’ 지적이 큰 자극이 된다. ‘듣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겠지만, 왼손잡이로 바꾸는 일을 지원해 주신다 생각하고, 꾸준히 말씀해달라. 그것을 활용해 현장 기자들과 소통해 보겠다.

권태호 저널리즘책무실장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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