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지키는 만큼 커지는 우리 습지의 가치

이진규 기자 2022. 5.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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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다양성·자연경관 등 생태적 가치 우수한 습지
보호·복원 노력 기울여야 주민 삶 등 지역가치 높여

경남 고성군 고성읍의 북서쪽 해발 600m에 조금 못 미치는 천왕산을 비롯한 병풍처럼 둘러싼 산자락의 물이 모인 고성천은 남동으로 흐르다 고성읍 북쪽을 스쳐 북동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꺾는다. 고성천 물은 당항만으로 흘러들기 전 속도를 늦춰 무성한 갈대밭을 지나 호수와 만난다. 바로 경남에서는 유일하게 인공 호수 가운데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마동호 습지다. 마동호는 북쪽 마암면 보전리, 남쪽 동해면 내곡리 사이 길이 834m의 제방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2월 전국 29번째이자 경남에서는 7번째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마동호 습지는 군데군데 마을이 자리 잡고 농경지가 거의 빈틈없이 둘러싼 평범해 보이는 호수다. 하지만 이곳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것은 인공 호수로는 드물게 생태적 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 자료에 따르면 마동호 일원에는 큰고니와 큰기러기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 20여 종과 원앙 황조롱이 등 천연기념물 10여 종을 비롯해 모두 700종 넘는 동식물이 서식·자생해 높은 생물다양성을 보여준다. 특히 물이 빠지면 바닥이 드러나는 상류 지역 간사지 일대는 갈대밭이 넓은 면적에 걸쳐 형성돼 철새를 비롯한 다양한 야생동물의 먹이 공급처이자 보금자리가 된다. 간사지는 이런 생태적 가치에 더해 1592년 6월 벌어진 이순신 장군의 당항포해전 승전과 관련한 월이 이야기가 전해져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전쟁 전 일본의 간자에게 고성천이 하천이 아니라 건너편 고성만과 연결되는 물길이라고 속였다는 것이다. 마동호 제방 바깥쪽 바로 북쪽이 조선 수군이 왜군의 배후를 차단하기 위해 숨어 있던 배둔이다.

마동호 습지가 습지보호지역으로서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다른 지역과 달리 습지의 가치를 깨닫고 습지보호지역 지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지역 주민의 자발적 동의와 협조가 바탕이 됐다는 점이다. 습지보호지역 지정에 따라 마동호 습지에서는 기존 습지를 보전하고 훼손된 습지를 복원하면서 이용객 편의를 위한 시설도 설치한다. 고성군은 이곳을 지역 특유의 국가농업문화유산인 둠벙과 고성읍 옆 들판을 찾는 독수리를 아우르는 생태관광 루트로 가꿔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이처럼 이전에는 그다지 큰 쓸모없는 곳 정도로 여기던 습지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보전하는 한편 적절한 이용을 꾀하는 움직임이 인다. 또 다른 경남의 습지보호지역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고산습지인 밀양 사자평 고산습지는 지난해 10여 년에 걸친 복원 작업을 마치고 40㏊ 면적의 습지와 억새밭을 되살렸다. 이곳의 습지 생태계는 생태관광지로 많은 방문객의 발걸음을 이끈다.

새삼 우리가 습지에 눈을 돌리는 것은 습지가 지닌 풍부한 생물다양성, 희귀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서식지 또는 도래지 역할, 경관이나 지질학적인 가치를 재평가하게 됐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이미 오래전 습지의 가치를 깨닫고 보호와 복원 노력을 기울인다. 와덴해 습지에 접한 네덜란드와 독일 덴마크는 꾸준히 갯벌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히 독일은 갯벌 습지의 복원을 생태관광과 연계한다. 경남 면적의 절반을 넘는 광활한 습지인 미국 플로리다주의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은 주변 인구가 급증하고 무분별하게 개발이 진행되면서 1993년에는 ‘위기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정도였다. 그러나 1999년 시작해 지금도 진행 중인 복원 작업으로 제방을 무너뜨리고 사행천을 되살린다. 보호지역은 아니지만 경남 사천 비토섬의 갯벌 습지도 한때 제방으로 바닷물의 흐름이 막히면서 서서히 죽어가다가 2009년 제방 중간 부분을 터서 20년 만에 바닷길을 열자 갯벌이 빠른 속도로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올해 초 김해시는 습지보호지역인 화포천 습지에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습지 연구 시설인 화포천습지보전관리센터를 짓기로 한 데 이어 지난달 대대적인 습지 복원 계획을 밝혔다. 이미 생태관광지로 지정된 화포천 주변 논밭을 습지로 복원하고 체류형 관광지로 꾸며 주민 소득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습지가 당장 어떤 혜택을 주느냐고 묻는다면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확실한 것은 잘 보호하고 보존한 습지는 우리 땅의 가치를 높여주고 우리 삶을 한결 윤택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자산의 가치는 문명과 시대 등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이제는 습지와 같은 자연 자산의 가치가 이전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는 건 분명하다. 다음 달 선거를 거쳐 새롭게 출범하는 지자체의 장들은 이제 지역 ‘발전’의 기준을 랜드마크 건설이나 사회간접자본 확충에서 어떻게 보면 하찮아 보일 수 있는 습지 보호와 복원과 같이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지역의 전반적 가치를 높이는 일로 눈을 돌려봤으면 한다.

편집국 부국장 겸 경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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