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자 40%가 자영업이지만 위기에 취약…지원 가장 필요한 영역”

최형석 경제부 차장 2022. 5.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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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석이 만난 사람] ‘자영업 또 한번의 위기’ 경고하는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은“국내 취업자 10명 중 4명을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이 살아야 한국 경제가 산다”며“새 정부는 노동 개혁을 통해 그동안 보호 일변도였던 정규직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자영업자들을 적정 비율까지 줄이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련성 기자

지난해 5월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에게 걸려온 전화는 ‘윤석열입니다’라는 발신자 표시가 떴다. 당시 검찰총장에서 막 퇴임해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윤석열 현 대통령이었다. “원장님이 쓰신 ‘자영업이 살아야 한국 경제가 산다’를 인상 깊게 읽었다”면서 저녁 약속을 잡았다.

“며칠 뒤 한 식당에서 만나 4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어요. 책 내용을 구석구석 읽어보셨더군요. ‘경제 문제는 보수·진보 진영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되고 객관적으로 파악한 사실에 기반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쓴 부분에 크게 공감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이념적 접근보다 실사구시를 중시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경제 정책 전반의 이슈들에 대해서도 질문이 있었다. 검찰총장 출신이라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유연했다. 거리감 없이 편하게 토론했고, 진지하면서도 재미있었다”고 했다.

권 원장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6년 넘게 거시경제실장을 지내면서 경제 위기를 연구했다. 한국 경제에서 가장 ‘약한 고리’로 꼽히는 자영업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2020년 한국자영업연구원을 설립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국민통합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으로 참여했다. .

-경제 위기를 연구하다 자영업으로 관심을 돌린 이유가 있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계기를 마련해 줬다고 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이던 2015년에 새정치민주연합 당시 문재인 대표와 지도부를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문 전 대표가 소득 주도 성장론을 주창했는데 연구해보니 자영업자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강의 때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 24%인데 임금을 올리면 오히려 고용 축소로 가계 소득이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문제 제기했고 모두 공감했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이 집권 후 소득 주도 성장을 추진하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자영업 연구에 뛰어들었다.”

-왜 자영업이 위기라고 생각하나?

“노동과 자본이라는 고래 싸움에 자영업의 새우등이 터지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한국 자영업자는 700만명에 달하고 자영업에 종사하는 임금근로자까지 포함하면 1000만명이 넘는다. 국내 취업자 10명 중 4명이 자영업에 관련돼 있다. 선진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하지만, 어떤 정치 세력도 자영업을 대변하지 않는다. 진보는 정규직 임금노동자들만 대변하며 임금을 높이고 경직된 노동시장을 만들었다. 자영업자에겐 독(毒)이다. 보수도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생활서비스 물가가 오르면 수출 경쟁력과 봉급 생활자를 우선하며 자영업자 팔을 비틀어 가격 인상을 막았다.”

-자영업이 처한 현실은 어떻게 진단하나?

“자영업자는 노동 시간은 제일 길면서 소득은 적은 정책 피해자가 됐다. 자영업자 가구의 사업소득은 임금근로자 가구 임금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영업자의 4대보험 가입률이 임금노동자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건강보험도 자영업자에게 불리한 구조다. 자영업자는 최근 공급 충격에 의한 물가 상승과 환율 급등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됐다.”

-자영업이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노조가 강해지면서 기업이 고용을 줄였다. 국내 제조업 취업자 수는 1991년 516만명에서 2019년 443만명으로 감소했다.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해지자 자영업 시장에 몰려들었다. 진보 정권 때마다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 간 소득 격차가 벌어졌다. 결국 ‘최저임금’ 급등에 결정타를 맞고 자영업은 빈사 상태에 빠졌다.”

- 자영업 대책은 어떤 방향에서 만들어야 하나?

“노동 개혁으로 정규직 장벽을 낮추고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자영업자 비율을 적정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자영업 취업자를 줄이는 것이 자영업을 살리는 첫째 단추다. 정규직은 기업이 고용을 안 늘리니 과잉 노동에 시달리고, 자영업은 과다 경쟁 속에 저소득으로 우울하다. 노동 개혁은 자영업뿐 아니라 저출산 문제까지 해결해줄 수 있다. 노동 개혁이 노조 주장대로 무조건 해고만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은 인력을 효율적으로 조정할 것이고, 노동시장에서 잠시 밀려나도 사회 안전망 보호를 받다가 복귀하면 된다.”

-새 정부는 외환 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 이후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 출범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중 갈등에 이어 러시아·서방 간 긴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표출됐다. 그 결과 달러 대비 원화 환율과 4월 국내 물가는 각각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무역 수지도 14년 만에 2개월(3~4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재정과 무역에서 동시 적자가 발생하는 ‘쌍둥이 적자’까지 우려된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1997년 3월 ‘외환 위기의 증후와 처방’ 보고서로 아시아 외환 위기 가능성을 알렸고, 2002년 2월 가계 부채 위험을 지적하며 카드 대란 사태를 경고했다.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세계경제가 침체로 간다면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물가가 6% 넘게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공급망 차질과 곡물 값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 현 물가 상승의 주범이다. 공급 요인에 의한 물가 상승이 지속될 경우 물가가 임금을 자극해 또 물가가 오르는 ‘나선 효과(spiral effect)’가 우려된다. 여기에 2008년 금융위기 후 10여 년간 세계적으로 통화가 많이 풀렸다.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40년래 물가 불안이 가장 심한 시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있나?

“조기에 물가 불안 심리를 잡지 못하면 물가 상승 기대 심리가 고착화되고 경기 침체에도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다. 가계·기업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고통이다. 경제는 침체인데 물가는 올라 삶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 침체 확률이 적지 않고, 중국도 부진하다. 세계 경제가 침체로 간다면 이제 시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봉쇄 등도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다.”

-환율이 1300원에 육박했다. 위험 영역인가?

“정확히 말하면 원화 약세가 아니라 달러 강세다. 전 세계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다. 원화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위험까지 논하는 것은 아직 과도하다. 다만 경제 주체들의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고 잠재적 글로벌 금융 위기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과 통화스와프(맞교환)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미국 경제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물가 안정이라 당분간 미국은 달러화 강세를 선호할 것이다. 미국 물가가 안정되는 시점에 환율 급등은 진정될 것이다.”

-경제 위기 가능성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정부가 취약 부문 건전성 보강 작업을 우선해야 한다. 소상공인들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기에는 반드시 신흥국 금융 위기가 동반됐다. 금융 불안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금융 건전성 현황을 종합적으로 검사해야 한다. 자산 가격 급락에 대한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도 갖춰야 한다. 자원 무기화에 따른 공급처 확보에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개인도 건전성을 점검하고 취약 부분을 보강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 우려도 크다.

“인구 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늘고, 경제성장이 정체돼 조세 수입이 줄며 재정 건전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웃 일본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된 1990년대 이후 2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60%대에서 200%대로 수직 상승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더 빠르다.”

-지난 정부에서는 위기 진단과 대처가 부족했던 것 같다.

“경제·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는 시점에 소득 주도 성장론이나 탈원전을 핵심 어젠다(의제)로 잘못 설정했다. 탈원전의 경우 세계 흐름과 동떨어진 채 한국만 실행하면 다른 나라만 이득을 볼 것이라는 점은 잠깐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정책의 집행도 미숙했다. 결국 부작용만 양산하고 경제 체질도 약화되고 말았다. 회복에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시장 기능을 과소 평가하고 무시하면 부작용이 불가피하고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

-저성장·재정 악화 등 중장기 위기는 대처법은?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킨 후 방향을 잃고 20년간 방황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방황을 끝내고 한 단계 성숙한 성년의 시대로 들어서게 해주길 바란다. 기회는 남아있다. 일본이 정보통신(IT) 3차 산업혁명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다가 잃어버린 30년을 겪었지만 한국 경제는 아직 역동적이다. IT 기반의 생산 혁명과 플랫폼 기반의 서비스 혁명인 4차 산업혁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면 일본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 자영업자 등 개인들도 세계를 고객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의 창인 플랫폼 경제에 올라타 혁신해야 한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에서 29년간 거시경제실장 등으로 근무했다. 경제 위기를 주로 연구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경제의 약점이 집중돼있는 자영업 위기를 막고 대응책을 연구하기 위해 2020년 한국자영업연구원을 설립해 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자영업이 살아야 한국경제가 산다’ 등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통합위 경제분과 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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