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 못 한 김유정 삶 속 모순.. 영혼의 노래로 풀어낸다

강주영 2022. 5. 1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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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혁수 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
뮤지컬 '유정, 봄을 그리다' 작·연출
소설가 생애·시대적 역할 무대로 조명
"무모한 사랑·죽음의 공포 아킬레스건
음악으로 작가와 대중과의 만남 유도
올해 중 신인 연출가 발굴 등도 계획
김혁수 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이 지난 13일 도립극단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일제강점기 낭만주의 작가 김유정. 그의 대표작이 수많은 각색을 거쳐 무대에 올랐지만 그의 삶을 다룬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생애에 대한 시각도 분분하다. 오는 20일 춘천문화예술회관을 시작으로 김유정이 재소환되는 도립극단의 올해 첫 기획공연 뮤지컬 ‘유정, 봄을 그리다’에 현신과 영혼, ‘두 명의 김유정’이 등장하는 이유다.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김혁수 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은 청풍 김씨로 김유정의 후손이다. 고교시절 백일장 상장이 마당에 내동댕이 쳐지던 날, 그는 자신에게 김유정의 DNA가 흐르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사명감’이 솟구쳤다. 소설가를 꿈꾸다 극작가가 된 그가 유품 하나 없는 김유정을 상상하며 각색한 희곡만 30권이다.그리고 지난해 희곡집 ‘유정, 봄을 그리다’를 펴냈다. 이제 ‘인간 김유정’을 말할 때라고 밝힌 김혁수 예술감독을 만났다.

-작품 연출 배경이 궁금하다.

“김유정과 관련된 오페라, 무용, 연극등은 대부분 소설 각색이다. 하지만 김유정 작품은 모두 단편이라 작품의 모티브가 될 뿐 나머지는 재창작 된다. 작품 각색 대신 김유정의 삶, 인간적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늘 다루고 싶었으나 부담감이 있었고, 집안 반대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김유정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설득했고, 지역문화 브랜드화 등을 위해 춘천문화재단과 협의한 끝에 공동제작하게 됐다.”

-특별히 조명하고자 한 부분은.

“김유정은 죽는 것이 너무 억울했던 분이다. 또 박녹주라는 여성에 대한 무모한 사랑을 했다. 무모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 두 가지는 김유정 인생의 아킬레스 건이어서 승화시킬 수도, 미화시킬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글을 쓴 이유이기도 했다. 무모한 사랑이 소설 속 농촌 아낙네들에 대한 애정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따뜻한 봄에 대한 애착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일제강점기 시대 낭만주의 작가들에 대한 비판까지 픽션으로 다뤄야 김유정의 핵심이라고 봤다. 일제시대 김유정은 과연 무얼 했느냐에 대한 문제인데 거짓말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나. 허구와 거짓말은 다르니까. 그래서 유정의 영혼을 등장시켜 풀어보자고 생각했다.”

- 연극이 아닌 뮤지컬로 만든 이유는.

“김유정 생애에 대한 접근이 처음인만큼 대중과의 만남이 중요했다. 극작가의 철학이나 생각보다는 지금 이 시대의 관객을 대변하고 싶었다. 김유정의 영혼과 현신의 대화에 나오는 리얼한 비판은 직접적 연극 대본이 되기 어렵겠다고 판단했고, 걸러내는 과정에서 보편적 정서와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음악에 기댔다. 피해가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무대의 정서를 통해 나름대로 승화시키고 김유정의 모순을 전달하려는 방법이다. 김유정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객석에서 잠시 내려 놓고 봐 주시면 좋겠다. 이후 평가 등을 통해 또다른 작품이나 연구로도 이어질 수 있지 않겠나.”

-과거 집안에서 김유정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고 들었다.

“고2 전국 고교 문예반들이 모두 오는 동국대 백일장에 처음 나가 산문부 1등을 했다. 안도현 시인이 시부문 2등을 할 때다. 그런데 저녁에 아버지가 “글쟁이가 되려고 환장했느냐”며 상장을 마당에 집어던지시더라. 같이 오신 큰아버지께 소설가 김유정이 집안망신 시켰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그래서 아무리 요절했다고 하지만 유품이 하나도 없다. 다 태워버려서. 생가에 연필 한 자루, 책 한 권 없지 않나. 하지만 나는 김유정 집안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갑자기 사명감이 생겼다. 그때부터는 아예 숨어서 글을 썼고, 연극을 좋아하다보니 극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은 분위기가 어떻게 변했나.

“천지가 개벽했다. ‘우리 문중에 예술가 하나 있어야지’하면서 종친회 이사회에도 들어갔다. 서울에서 연극활동 하면서 김유정에 심취하게 됐는데, 그가 만들었던 ‘금병의숙’이 이름도 좋고 고향에 있는만큼 극단 이름으로 정했었다. 이후 서울과 춘천에서 몇 년 공연 했더니 문중과 지역 분위기도 바뀌었고 생가 복원 이야기가 나오더라. 주연 김지철 배우도 청풍 김씨다. 남한에 10만명 밖에 안되는 아주 희귀한 성인데 신기한 우연이다.”

도립극단에서 그가 처음 올린 작품은 대한민국 최초 여배우 이야기 연극 ‘월화’였다. 지역에서는 뜬금없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작품은 호평받으며 성공했다.이듬 해에는 연극의 해를맞아 세계명작시리즈 ‘로미오와 줄리엣’을 원로배우들과 합작해 올렸다. 이후 강릉 관노가면극을 소재로 한 ‘소매각시’, 지역 민간극단과의 기획공연 등으로 지역 콘텐츠와 연극계를 도립극단으로 이었다. 올해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그는 ‘강원도는 왜 강원도 이야기만 해야하는가, 강원도 이야기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원도는 왜 인재를 키우지 못하는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문화경영도 다양하게 했는데 여전히 현장형이다.

“문화재단 대표로 있을 때도 한 순간도 놀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쓰고 문학지등에 계속 발표했다. 문화경영의 길에 우연치않게 들어섰지만 현장성을 잃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가운데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작품 활동은 각색이었다. 지역 극단 후배들이 배우 수, 공연장 환경, 세트비 등만 얘기 해주면 그에 맞춰서 각색해 줬다. 작품뿐 아니라 그들의 환경이 모두 보이니 맞춰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제일 싼 각색공장’이었는데 그 일이 참 즐거웠다.”

- 예술감독으로서 작품 연출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른 계획이 있나.

“신인 연출가 발굴이다. 공모를 통해 연말에 경합공연을 열고 데뷔를 돕는 방식이다. 문화경영, 지역 문화인력 등에 대해 쓴 책도 곧 나온다. 지금까지 강원도 원로배우들과 함께 한 무대, 청소년을 위한 작품 등을 먼저 만들었고 이후 지역 스토리 개발과 상근 배우단원 체제 등을 해야 할 것을 다 해왔다. 이제는 신인 연출이다. 연극계 후배들을 돕고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이 이어질 수 있게 하고 싶다.”

- 도립극단과 같은 지역 문화예술단체의역할, 나아가야할 방향은.

“도립극단이든 문화재단이든 문화예술 관련 기관들은 해당 지자체 관청이 아니라 도민과 지역 주민을 위해 일하는 곳이다. 꼭 지역 이야기만을 개발하고, 교육·계도하는 것만이 예술가들이 할일은 아니라고 본다. 다른 지역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 문화적 향유를 누리게 해주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을 위해 일해야 한다.”

강주영 juyo9642@kado.net



김혁수 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이 지난 13일 도립극단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오른쪽 사진은 뮤지컬 ‘유정, 봄을 그리다’에서 김유정의 영가와 현신 역으로 각각 출연하는 김경민·김지철 배우.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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