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 로어노크 대학을 통해 보는 한미수교 140주년

권세중 입력 2022. 5. 1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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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부터 1920년대까지
로어노크대학 입학 조선인 30명
고종 아들 이강 등 걸출한 인물 유학
1965년 로어노크시-원주시 결연
한미관계 굳게 다지는 초석
권세중 미워싱턴 총영사

지난 4월 25일 로어노크대학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독립운동가인 우사 김규식 선생의 공적을 기념하는 표지판이 대학 교정에 설치된 것이다. 버지니아주 컴벌랜드중학교 학생들이 현지에서 공부한 아시아태평양계 인물을 연구하다가 김규식 선생의 행적에 주목하고 로어노크대학에 추천하여 기념 표지판 인물로 선정되었다. 김규식 선생은 1897년 우리의 고교과정과 유사한 로어노크대학 예과에서 1년 수학 후 이듬해 정식 입학했고 1903년 우등으로 졸업했다. 김규식 선생은 이후 1919년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참석하여 일본을 규탄하고 임시정부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올해 수교 140년을 맞이하는 한미관계에서 로어노크대학과 한국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조선은 1882년 수교 7년 후인 1889년에 워싱턴에 대한제국 공사관을 개설하여 미국의 지원확보에 진력했다.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운 절박한 상황에서 로어노크대학은 걸음마를 뗀 한미관계에 씨앗을 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93년부터 1920년대까지 로어노크대학에 입학한 조선인들은 약 30명으로 걸출한 인물들이 유학했다. 로어노크대학에 첫번째 유학생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은 서규병으로 1893년에 입학해 1898년 졸업했으며, 귀국해 인천부윤을 지내다 조선 병탄에 맞서 중국으로 망명했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은 오하이오에서 2년을 보내고 1901년 로어노크대학에 편입했다. 이강은 귀국 후 3·1 만세운동에 이어 2차 만세시위를 위한 독립선언서에도 서명했으며 왕실의 체통을 끝까지 지켰다. 이외에 갑신정변의 주역 서광범, 헤이그 밀사의 일원인 이위종의 형 이기종, 1893년 세계콜롬비아 박람회에서 통역을 맡았던 서평규 등이 로어노크대학에서 공부했다. 이들 유학생은 암흑기로 접어드는 조선의 온전한 독립과 번영을 위해 몸을 던졌으며 밑바닥에서 한미관계 저변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 분들이다.

19세기 말 조선의 지식인들이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남서쪽으로 4시간여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한적인 소도시 세일럼에 자리 잡은 로어노크대학에 유학한 이유는 상세하게 나와있지 않다. 세일럼과 인접한 로어노크시는 당시 철도 교통과 인근의 석탄 생산 등으로 발전하여 비교적 부유한 도시였으며 수도에서 그리 멀지 않고 풍광이 좋아 언더우드 목사 등이 유학 알선에 기여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한동안 역사 무대에서 사라졌던 로어노크대학이 한미관계 발전에 등장하게 된 것은 1965년 로어노크시가 원주시와 자매결연을 하면서부터이다. 로어노크시와 원주시는 각각 원주로와 로어노크로를 설치하면서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양 도시의 자매결연이 성사된 배경에는 미국 유학 후 로어노크로와 인연을 맺고 돌아와 원주연합기독병원에서 봉직한 김영우 박사와 로어노크 출신인 미국인 의사 휴 트라우트의 아름답고 오랜 우정과 교감, 그리고 1964년 의료선교차 원주에 온 로버트 로스 박사의 헌신적 노력이 숨어 있었다.

140년간 부침을 겪은 한미관계에서 로어노크시와 원주시의 자매결연이 갖는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일방적인 지원에서 상호 지원과 협력 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조선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국에 매달렸다. 그러나 이제는 원주시가 로어노크시에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둘째는 군사와 안보위주의 한미관계가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 양 도시의 협력 모델이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양 도시는 바이오와 의료협력을 중심으로 협력의 여지가 매우 크다. 로어노크로시에는 버지니아 텍 카릴리온 의과대학이, 원주에는 연세대 의대가 선도하고 있고 양 대학 간 의료협력도 활발한 편이다. 셋째는 두 도시의 자매결연을 가능케 한 돈독한 우정과 신뢰는 향후 관계를 심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가치이자 자산이다. 실질협력과 연대를 통해 다져진 공고한 우정의 경험은 양국 국민 간 기층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다져나갈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확고한 한미관계를 다져나가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있어 로어노크대학의 사례는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온전한 한반도에서 자라나 독립을 꿈꾸었던 조선의 로어노크 선구자들의 꿈은 분단 극복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원주시와 로어노크시의 자매결연이 향후 한미관계를 굳게 다지고 통일을 앞당기는 데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권세중=△홍천 △춘천고 △서울대 외교학과 △미 노스웨스턴대대학원 법학석사·경남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외무고시 28회 △국무총리실 외교의전행정관 △외교부 기후변화환경외교국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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