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꽃놀이패' 된 日 외교청서 속 불상
1심서 '왜구 약탈 추정' 판결에도
日, 약탈 가해자서 피해자로 둔갑
환수분야 '도덕적 우위' 상실 우려
지난달 22일 발간된 일본 외교청서(靑書)의 내용을 살펴보다 한국과 관련이 있는 불상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걸 알게 돼 조금 놀랐다.
관음상이 한국으로 반입된 건 2012년 10월이었다. 일본에서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될 만큼 문화재적 가치도 인정받았다. 문제는 불상의 반입 방식이었다. 한국 절도범 일당이 간논지에서 훔쳐 한국으로 들여온 뒤 처분하려던 것이 적발됐다. 통상의 절차대로라면 일본의 소장처로 돌려줄 것이었다. 가이진(海神) 신사에서 훔쳐 관음상과 함께 갖고 있던 금동여래입상은 되돌아갔다.
그런데 복장유물(불상을 만들어 그 안에 넣어 두는 유물)을 통해 관음상이 1330년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부석사는 복장유물을 근거로 당시 한반도에 창궐했던 왜구가 약탈해 간 것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했고, 소송까지 시작했다. 2017년 1월 1심 법원은 왜구가 비정상적 방법으로 불상을 가져갔다고 보는 게 옳다는 취지로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이 나오자 일본은 그해 4월 발간한 외교청서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관음상의 소유권 향배를 생각할 때 ‘추정’과 ‘사실’ 중 어느 것에 무게를 둘 것인가를 우선 살펴봐야 한다. 일본에 돌려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관음상이 만들어질 당시 약탈을 일삼던 왜구의 노략질 대상 중 하나가 관음상이었을 것이란 추정에 따른 것이다. 14세기 중후반 왜구의 약탈이 해안지역은 물론, 내륙지역까지 이어지며 피해가 극심했던 건 맞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관음상=왜구의 약탈품’을 확인시켜 주는 건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충분히 합리적이긴 해도 결국엔 추정, 심증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1심 법원도 “불상(관음상)은 원고(부석사)의 소유로 넉넉히 추정할 수 있다”고만 했다. 이런 추정의 반대편에 절도범들이 간논지에서 관음상을 훔쳤고, 형사처벌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버티고 있다.
관음상이 일본에 ‘꽃놀이패’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돌려받아야 한다는 일본의 입장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는 것도 일본으로선 나쁠 게 없다는 의미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전복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일 수 있어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파악한 해외의 우리 문화재는 21만4000여점이다. 이 중 44% 정도인 9만4000여점이 일본에 있다. 전부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약탈된 것도 적지 않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환수 주장은 정당하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도덕적 우위도 갖고 있다. 하지만 관음상 문제를 두고 ‘가해자 일본’은 스스로를 ‘피해자 일본’으로 분칠하고 있다. ‘한국은 법치가 통하지 않는 나라’라고도 떠들어 댄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부 간 합의로 최종 해결한 1965년 한·일협정, 2015년 위안부 문제 합의를 한국이 일방적으로 깼다’는 주장과 비슷한 맥락이다.
관음상 소유권 관련 재판은 2심이 진행 중이다. 한동안 연기됐으나 간논지 관계자가 참여해 다음 달 15일 재개될 예정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이 문화재 환수 분야에서 가진 우리의 도덕적 우위를 잃게 하는 건 아닌지를, 일본이 피해자로 둔갑해 우리를 가해자로 몰아세우는 빌미가 되는 건 아닌지를 말이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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