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밀 수출 금지..전쟁·가뭄이 불붙인 '밀 대란' 식탁 덮치나
[경향신문]
생산량 2위 국가 ‘유통 차단’
폭염 영향 생산량 감소 예상
미·프랑스 등 주요 생산국도
가뭄·홍수에 수확량 줄 듯
밀값, 작년보다 30% 급등
선진국은 인플레이션 우려
취약국은 대규모 기근 위기
주요 밀 생산 국가들이 기후위기, 전염병, 전쟁 등에 시달리면서 전 세계 밀 공급이 휘청거리고 있다. 세계 식량 가격이 거센 압박을 받으면서 선진국에서는 인플레이션, 취약국에서는 대규모 기근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 대외무역총국은 13일 밤(현지시간) 밀 수출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밀 수출에 어떤 통제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단일 국가로서 세계 밀 생산량 2위인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등을 고려해 올해 밀 생산과 수출량을 늘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제 밀 가격의 고공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폭염으로 인도 내 식량 생산과 물가 사정도 여의치 않자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수단슈 판데이 인도 식품부 장관은 “모든 것은 폭염과 가뭄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최고기온이 49도를 기록하는 등 올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극심한 폭염과 가뭄이 발생했다. 인도 식품부는 밀 생산량 전망을 기존 1억1100만t에서 1억500만t으로 낮췄다. 사재기 등이 극심해 시장에서는 거래량이 더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이코노믹타임스 등이 전했다. 인도의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년 만에 최고치인 7.79%를 기록했고, 특히 소매식품 물가 상승률은 8.38%로 나타났다. 앞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국 식용유 가격이 불안해지자 지난달 28일부터 팜유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극심한 가뭄은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농무부(USDA)는 지난 12일 가뭄으로 미국의 겨울밀 생산량은 8%, 옥수수 생산량은 4.3%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겨울밀 생산량은 캔자스에서 26%, 오클라호마에서 48%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국립가뭄경감센터에 따르면 캔자스주와 오클라호마주에서는 가을밀 파종이 시작되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약 300일간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프랑스도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파리 남부 루아레 지역의 곡물 생산자 바질 포셰는 “최악의 경우 30~50% 수준까지 수확량이 감소할 수 있다”며 “향후 열흘 내에 비가 오느냐에 달렸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FT는 우크라이나에서의 밀 생산량 감소를 보완하겠다는 계획이 극심한 가뭄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역시 가뭄으로 2022~2023년 밀 생산량이 지난해 2210만t에서 1900만t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로사리오 곡물거래소가 전망했다.
반면 중국에서는 지난해 가을 대홍수로 토양이 물에 잠기면서 뿌리가 썩어들어간 밀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19 봉쇄로 비료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1·2등급 밀의 생산량은 20%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봉쇄로 인해 당국이 식량을 비축해야 할 필요성은 더 늘었다. 중국 정부의 비축 물량이 확대되면 세계 경제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국제식품정책연구소(IFPRI)가 전망했다.
기상여건이 좋은 나라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호주 농업자원경제과학국에 따르면 호주의 올해 밀 생산량은 5%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럭과 철도를 이용한 운송에 차질을 빚고 있다. 호주 최대의 곡물 재배 협동조합인 CBH는 “언제 또 가뭄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운송 인프라 투자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항공위성업체 분석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밀 생산량의 35%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데사 등 주요 수출항이 봉쇄되면서 생산된 밀을 제대로 수출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러시아도 전쟁과 대러 제재 등에 대한 보복조치로 6월 말까지 밀 수출을 중단하기로 한 상태다.
지난 3월 기준 미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밀 t당 가격은 407달러로 지난해보다 30% 이상 올랐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은 전쟁의 파급효과가 식량 가격 급등과 비료 부족이라는 기존 위기에 더해져 추가로 4700만명이 굶주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1년째 가뭄이 지속되고 있는 소말리아, 케냐 등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는 2200만명이 기근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박은하·김유진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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