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납북됐다 온 어부가 끌려간 곳..불법 수사 정황 기록 입수

원종진 기자 입력 2022. 5. 15. 20:48 수정 2022. 5. 1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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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 납치됐다 돌아왔지만 간첩 누명을 썼던 납북 어부와 그 가족들이 억울함을 푸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해드렸었죠. 최근 진실화해위원회가 최근 납북 귀환 어부 982명에 대한 직권 조사를 결정한 가운데, 불법 수사 정황이 담긴 정부 기록을 '끝까지판다'팀이 입수했습니다.

원종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약 50년 전, 고기를 잡다 납북됐다가 돌아온 아버지를 이영란 씨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이영란/납북 귀환 어부 딸 : 오자마자 그 여인숙에서 두들겨 맞고 막 이렇게 하고….]

그 여인숙이 있었다는 속초항 주변을 수소문했습니다.

지금도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박종식/당시 속초 여인숙 주인 : 잠을 안 재우고 (어부들이) 계속 돌아가면서 조사를 받았어요. 구타해서 소리를 지르고. 해동여인숙에서는 '(어부들이 고통스러워) 못을 가지고 자살하려고 머리를 박았다' 그런 얘기를….]

SBS가 입수한 당시 경찰 보고서는 이 기억들을 뒷받침합니다.

속초시청 회의실에 귀환 어부들을 일단 수용하지만, 근처 경찰서도 아닌 110m 떨어진 해동여관에서 어부들을 신문한다고 돼 있습니다.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신문 기간은 귀환일 자정부터 일주일간, 신문의 방향은 간첩 지령 사항을 캐내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이런 지침은 처음부터 중앙정보부와 내무부, 검찰까지 공유했습니다.

영장도 없는 불법 구금 상태에서 가혹행위를 통해 간첩이라는 자백을 받아내려 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긴 것입니다.

[이은주/정의당 의원 : 당시에 경찰·내무부·검찰 그리고 국가정보원까지 개입해서, 단순한 개입을 넘어서 수사를 지시하고….]

군사정권 시절 납북됐다가 돌아온 선원은 약 3천600명에 달하지만, 그동안 국가기관들은 '안보'를 이유로 수사자료 제공에 인색했습니다.

법률 지식이 많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바빠 한만 품고 살았던 납북 귀환 어부와 가족들에게는, 새롭게 발굴된 자료가 도움이 될 전망입니다.

[최정규/변호사 : 재심이 개시되기 위해서는 해당 공무원의 어떤 법 위반 사실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당시 수사관들의 불법 구금과 같은 범죄 행위가 확인되기 때문에 재심 개시하는 데 정말 결정적인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영상취재 : 하 륭, 영상편집 : 윤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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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원종진 기자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납북 어부 간첩 조작사건, 1960-1970년대에 있었던 일이죠? 다시 한번 소개를 좀 해주시죠.

<기자>

민주화운동이나 4·3사건 같은 대형 사건들은 국가적인 조사가 어느 정도 됐는데,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로 살아온 납북 어부 사건은 관심을 좀 잘 받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북한에 납치됐다 돌아온 어부들이 3천600여 명 정도로 추산이 되는데, 이 중에 피해가 제대로 규명된 것은 한 100명 남짓입니다.

사실 어부들이 북한에 납치됐다는 것은 국가가 방위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인데, 도리어 납치됐다 돌아온 어부들이 고문이나 허위 자백을 받고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형을 살게 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A급, B급, C급으로 분류해서 계속해서 사찰을 했고, 그러다 보니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막노동, 날품팔이, 이런 것을 하면서 살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되니 자식 세대들도 못 배우고 가난한 경우가 많았고요, 그래서 국가 권력의 잘못된 발동으로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피해가 대를 이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입니다.

<앵커>

그렇다면 피해를 인정받은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왜 그런 것입니까?

<기자>

저희가 피해자나 유족들을 만나서 들어보면, 검찰이나 경찰에 재심이라는 것을 좀 청구하려고 하니 기록을 좀 달라, 이렇게 요청을 해도 없다, 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이런 답변을 계속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법적으로 국가보안법 사건 기록은 영구 보존하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국가기관이 이 기록을 찾아서 줄 의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재심 사유를 입증을 하기 위해서는 판결문만으로는 부족하고 수사 기록이나 공판 기록 같은 것이 좀 있어야 되는데, 정부 기관이 이 기록을 주지를 않으니까 진실 규명이 시작부터 잘 안 된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에 걸쳐 피해를 본 이들은 국가기관이 이 기록을 제공하는 기본적인 도리부터 좀 해달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원종진 기자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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