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대어발호' 우상혁
[경향신문]
높이뛰기는 맨몸으로 중력을 거스르는 운동이다.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공중의 장애물인 바(bar)를 더 높이 넘으려는 도전이다. 어느 국내 육상인은 높이뛰기를 가리켜 ‘떨어지는 법을 가르쳐주는 스승’이라고 칭송했다. 1865년 영국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대학의 육상 대회에서 165㎝를 넘은 것이 첫 공식 경기 기록이다. 높이뛰기는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한국의 높이뛰기 역사도 깊다. 한국 근대육상의 시초로 여겨지는 개화기 학교 ‘화류회(花柳會)’에서 달리기·던지기·멀리뛰기 등과 더불어 공식 경기로 치러졌다. 화류회는 지금의 운동회 격인데 정부 대신과 외교관들도 관람하는 대회였다. 1896년 5월 관립 영어학교가 첫선을 보인 뒤 일제가 조선인 운동회를 금지한 1910년까지 각급 학교의 연합 운동회 등이 성행했다. 당시 한자어로 붙인 경기 종목 이름이 절묘하고 재미있다. 높이뛰기는 ‘대어발호(大魚跋扈)’라 불렀다. 큰 물고기가 높이 뛰어오른다는 뜻이다. 소년부 단거리 경주는 제비가 나는 법을 배운다는 ‘연자학비(燕子學飛)’, 청년부 중거리는 가을 기러기가 떼지어 날아간다는 ‘추안군상(秋雁群翔)’이라 했다.
높이뛰기의 역사는 1968년 딕 포스베리 선수의 출현 전후로 나뉜다. 미국 대표로 멕시코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몸을 뒤로 눕혀 등 뒤로 뛰어넘는, 기이하고 충격적인 ‘배면뛰기’ 기술을 선보이며 224㎝를 넘어 금메달을 차지한다. 이전까지는 앞을 보고 도약해 다리를 벌려 뛰거나 몸을 옆으로 돌려 바를 넘는 기술이 전부였는데 포스베리는 역발상으로, 등을 젖혀 뛰어넘은 것이다. 당시 그는 “물고기가 팔딱팔딱 뛰는 것 같다”는 놀림을 받았지만, 지금은 모두 배면뛰기만 한다.
우상혁 선수(26·국군체육부대)가 엊그제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개막전에서 233㎝를 넘어 1위에 올랐다. 한국 기록을 세우고도 4위에 머물렀던 지난해 도쿄 올림픽 때 공동 1위였던 무타즈 에사 바심(카타르)과 장마르코 탬베리(이탈리아)를 모두 제쳐 현 세계 최강임을 입증했다. 올 들어 국내외 6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그의 앞날이 더 기대된다. “가자, 고!”를 외치는 우상혁, 한국 ‘대어발호’의 자랑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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