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말 많은 NFT가 이 작품인가요?"..아트페어도 NFT 열기
소장 작가 10여명 NFT 작품
국내 굴지 미술품 장터에 선봬
피카소·호크니 등 명작도 즐비
매출 746억 역대 최고액 추산
주최쪽 내홍에 공신력은 상처
“요즘 말 많은 엔에프티(NFT)가 이 작품인가요?”
캡을 쓴 50대 남성 관객이 벽걸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화면에선 서울 광화문 너머로 고층빌딩들이 작물 자라듯 쑥쑥 커지는 동영상이 나왔다. 대도시 건축의 시공간을 압축한 임상빈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 <서울1>이다. 작품 제목에 붙은 정보무늬(QR코드)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포착하니 똑같은 동영상과 함께 작품 설명, 가격, 구매 신청 링크가 줄줄이 딸려 나왔다.
지난 14일 낮 부산 해운대 벡스코 1전시장 내부의 한쪽 부스 공간에선 색다른 볼거리가 펼쳐졌다. 암호화폐 기술로 거래 내역과 소유권을 담는 디지털 인증서 엔에프티의 구축 환경에 맞게 작업한 국내 소장 작가 10여명의 영상을 틀어주며 파는 기획전 매장이 차려졌다. 임 작가 작품 외에 춤추는 플라밍고 이미지가 허공에 만들어지는 이상수 작가와 색동 요술봉이 춤추는 도로시엠윤 작가의 영상 등을 감상하고, 담당 직원의 안내 아래 휴대전화를 통해 20만~30만원대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변홍철·서준호 기획자가 꾸린 이 기획전 제목은 ‘엔에프티 아트랩’. 국내 굴지의 작품장터(아트페어)로 지난 12일부터 벡스코에서 시작된 ‘아트부산 2022’의 전시 중 일부다. 최근 미술계 엔에프티 열풍을 업고 국내 페어 중 처음으로 대형 부스 매장을 차려 일반인들에게 엔에프티 아트의 실체를 알렸다.
국내 101개 업체, 국외 32개 업체 등 133개 화랑이 참여한 올해 아트부산은 양질의 출품작들로 호평받았던 지난해 행사를 훌쩍 뛰어넘는 성과를 냈다. 아트부산 사무국은 폐막 다음날인 16일 보도자료를 내어 총매출액은 746억원으로 추산되며, 관객수는 10만2천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아트부산 쪽이 구체적인 근거들을 공개하지 않아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추산 자료를 그대로 인정할 경우 지난해 10월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한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의 역대 최고매출액 기록(650억원)과 역대 최다 관람객 기록(8만8000명)을 넘어서게 된다. 지난해 아트부산 매출액(350억원)과 관객수(8만2천명)에 견주면 1년 사이 두 배의 매상고에 2만명 이상 관객을 더 확보한 셈이다.
미술계에서는 이런 성과의 배경으로 관객을 고려한 세심한 전시 연출과 관객 동선의 배려 등을 꼽고 있다. 엔에프티 기획전 외에도 백남준, 김보희, 호크니, 오스틴 리 등 국내외 거장·중견 작가들의 특별전 ‘익스페리먼트’가 화랑 부스들 사이 짜임새 있게 배치됐고, 넓은 야외 정원이나 디자인 하우스를 연상시키는 관객 휴식시설이 새로 고안된 것도 돋보였다. 여기에 올해 들어 더욱 들뜬 미술시장의 호황 분위기를 타고 전시 부스들은 개막 날부터 줄 서서 몰려든 관객들로 활기가 넘쳤다.
상당수 화랑들이 작품 구성과 부스 배치, 판매 등에서 개성 있는 행보를 드러냈다. 갤러리 현대는 들머리에 숫자 0에서 9까지 모양을 일렬로 만든 로버트 인디애나의 조형물과 판화 연작들로 사선 구도의 파격 전시장을 만들었다. 아라리오는 명품 사진 이미지를 조합한 권오상 작가의 의자와 탁자를 들머리 출품작으로 내놓으면서 관객 누구든 앉아서 만지면서 쉴 수 있게 했다. 로봇처럼 움직이는 키네틱 모니터 방을 만들거나 특정 작가 집중감상실을 만든 부스들도 있었다. 도발적인 알몸 군상 표현과 원색으로 일상을 그린 청년 작가 그림들을 내놓은 갤러리 스탠은 엠제트(MZ)세대 컬렉터들을 끌어들여 모임방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갤러리 조선의 경우 이은 작가의 동물 캐릭터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암호화폐 이더리움으로 작가의 감상 클럽 초대권을 산 구매자들을 추첨해 원화를 주는 방식을 시도했다. 국제갤러리는 도시의 건축적 구조와 형태를 색면으로 구성하고 페인팅한 이희준 작가의 회화 10여점을 독립 부스에 따로 차려 개막 첫날 작품들이 동났다.
전반적으로 팝적인 캐릭터 그림이나 밝은 색조의 반추상회화 등 젊은 작가들의 수백만원대 신근작들은 구매 열기가 뜨거웠지만, 원로·중견 작가나 국외 거장들의 값비싼 작품들에는 큰손 컬렉터들의 관심이 다소 시들한 편이었다. 실제 단골 구매 작품이던 거장 이우환씨의 점선 그림들은 부스에서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강소·이건용 등 과거 실험미술가 작품이 강세를 이어갔고, 정상화·하종현 작가 의 단색조 그림들도 눈길을 받긴했지만, 10억원대를 넘는 원로·중견 작가 작품들의 거래 양상은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 국외 화랑의 서구 거장 출품 명작들은 눈요깃거리였다. 처음 참여한 미국 그레이 화랑은 추정가 40억~50억원의 피카소, 리히터 그림들을 들고 왔으나 관심에 부담을 느낀 듯 주말엔 전시하지 않았다. 자신의 스튜디오 관람객 사진 수백개를 조합한 호크니의 가로 8m짜리 대작 <전시풍경>은 중앙 휴식 공간 앞 외벽에 특별전 출품작으로 걸려 눈길을 모았고, 알렉스 카츠의 꽃과 여인 그림들도 여러 화랑에서 볼 수 있었다.
전시 체험은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평가였지만, 개막 직전 표출된 페어 사단법인의 내홍은 앞날에 불안감을 주는 화근거리로 남았다. 손영희 이사장이 운영상 갈등을 빚어온 변원경 대표이사를 개막 닷새 전인 지난 7일 전격 경질하자 양쪽이 각자 정당성을 주장하는 입장문을 공표하면서 책임 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역대 국내외 아트페어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사태로 페어의 품격이 손상되고 국제 시장의 공신력 실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내년 행사부터 국외 화랑 참가 등에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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