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꿈 키워요" [밀착취재]

장한서 2022. 5. 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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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 밖 세상서 배움 이어주는 대안교육기관 선생님들
서울 등록 교육기관만 58개 달해
청소년들 맞춤형 교육 펼쳐 주목
좋아하는 분야 배우며 미래 준비
"학교 벗어난 이유 함께 고민 필요"
13일 서울 중랑구에 있는 대안교육기관 ‘내일더하기’에서 이모(20)씨가 작곡 수업을 받고 있다.
“이럴 때는 B7 코드만 잡고 쳐도 돼.”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랑구의 한 건물의 지하 1층. 대안교육기관인 ‘내일더하기’ 안에 마련된 댄스실, 노래방을 지나 밴드실에서 감미로운 건반 소리가 흘러나왔다. 실용음악과를 목표로 대학 입시를 준비 중인 이모(20)씨는 지도 선생님의 조언에 귀 기울이며 연신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렀다. 전자피아노 주변에는 기타, 드럼 등 여러 악기가 밴드실을 꾸몄다. 이씨는 “대학 입시용 자작곡을 선생님과 함께 수정하고 있다”며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어른’이라는 제목으로 음악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학교를 관둔 ‘학교 밖 청소년’이다. 뮤지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내일더하기에 지난해 2월부터 재학 중이다. 이씨는 고등학교 입학 후 불과 한 학기도 마치지 않고 교문 밖 세상으로 뛰쳐나왔다. 규율 속에서 사는 것이 답답하기만 했고, 사이가 좋지 못한 친구를 종일 보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학교 내에 상담 선생님이 있었지만 예약이 가득 차 상담실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반대하던 부모님을 설득해 학교를 나왔다.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과정은 고달팠지만, 현재 작곡가를 목표로 내일더하기에서 배움을 이어가는 삶이 즐겁기만 하다. 이씨는 자퇴 이후 여러 인턴십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진로를 모색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독립출판도 해보고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땄다. 그러다가 한 청소년 시설에서 밴드 동아리를 했던 그는 작곡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전문 강사가 레슨을 해주는 내일더하기를 찾았다. 이씨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가 생겼고, 지금 이곳에서 수업을 들으며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며 “선생님들이 강압적이지 않고 존중을 잘 해주신다. 환영받는 느낌”이라고 미소 지었다. 음악에 빠진 이씨는 지난해 자작곡으로 음원을 발매하기도 했다.

내일더하기는 대안교육기관으로, 학교 밖 청소년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진로를 찾아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문화체험, 인턴십, 학습 지원 등 다양한 교육 활동을 맞춤형으로 진행하는 곳이다. 특히 작곡, 보컬, 기타, 댄스 등 예체능 교육에 특화됐다. 현재 이씨를 포함해 12명이 입학해 다니고 있다. 후기 청소년인 이씨와 달리 대부분 10대 학교 밖 청소년들이다. 각자 원하는 활동을 하면서 내일더하기의 선생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박상용(52) 선생님은 이곳의 대표 교사다. 여러 악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박 선생님은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악기를 가르쳐주는 등 주말에 하는 활동을 이어오다 2017년 중랑구의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교육기관을 설립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고, 후원금을 통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청소년들을 만나 욕구를 파악하고 진로를 함께 탐색하거나 대화·놀이 등 정서적 지원도 한다. 박물관·전시회도 함께 가고, 여름에는 캠프 활동도 한다. 모든 활동은 학교 밖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계획을 짜고 논의하게 한다. 박 선생님은 “개인마다 다양성과 특수성이 있기에 아이들을 존중하면서 모든 교육과 활동이 이뤄진다”며 “사회적인 약속을 꼭 지킬 것은 강조하면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지역 사회의 학교 밖 청소년들의 ‘멘토’ 역할을 자처해 온 박 선생님은 그저 ‘믿을 수 있는 어른’으로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는 “처음에는 마음을 열지 않던 아이들도 시간을 갖고 기다려 주면 먼저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을 한다”며 “최근 장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이곳을 다니거나 수료한 아이들이 장례식장을 다 찾아와 자리를 지켜 줬다. 고마우면서도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15일 ‘스승의 날’을 맞이한 가운데, 내일더하기처럼 학교 밖에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 배움과 삶을 나누는 ‘교육의 현장’이 많다. 학교 밖 청소년은 2020년 기준, 23만2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은 한 해 평균 5~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학교 밖 청소년이 대안교육기관을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청소년이 학교 밖의 학교에서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내에 등록된 대안교육기관만 58개다. 이곳들에서 ‘학교 밖 선생님’들은 오늘도 청소년들을 위해 시간을 쏟고 있다. 

지난 12일 찾은 서울 용산구 ‘푸른나무미디어스쿨’은 영화, 뮤직비디오 등 미디어 제작과 디자인, 코딩을 전문적으로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교육하는 곳이다. 문모(18)양은 지난해 2학기에 입학해 공부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부모님의 교육관에 따라 초등학교 때 자퇴한 뒤 대안교육기관을 다니고 있다. 자유로운 주제로 연구 활동을 지원해주는 한 기관을 다니다가 지난해부터 푸른나무미디어스쿨로 왔다. 미디어 분야를 연구하고 공부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미디어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수업을 들으며 뮤직비디오 등 영상 제작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시의 ‘2022년 서울시민상’에서 희망성실상을 받기도 했다. 문양은 “선생님들에게 미디어와 관련된 질문뿐만 아니라 가볍고 엉뚱한 질문도 전부 친절하게 받아 주신다”며 “미디어 연구자를 목표로 배움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12일 서울 용산구 ‘푸른나무미디어스쿨’ 안에 있는 라디오 녹음실에서 학교 밖 청소년 문모(18)양과 오유정(26) 선생님이 미소를 보이고 있다.
오유정(26) 선생님은 2020년부터 이곳에서 교사 업무를 하고 있다. 문화예술경영을 공부한 오 선생님은 교육 쪽에도 관심이 많아 푸른나무미디어스쿨의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영상 편집을 할 줄 알아 아이들을 도와주면서 수업 지도와 여러 자율적인 자치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그는 보람을 느낀 순간은 학교 밖 청소년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다. 오 선생님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 후 이곳에 입학한 청소년이 있었는데, 표현이나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점점 자기표현을 하는 연습을 하고 친구·선생님들과 가까워지면서 마음을 열었다. 1년이 지나 올해 학부모 등 30여명 앞에서 한해 목표를 당차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오 선생님이 언급한 학교 밖 청소년은 코딩에 관심이 많아 게임도 직접 만드는 등 진로를 찾았다.

대안교육기관 선생님들은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바뀌기를 바랄 뿐이다. 평일 낮, 학교가 아닌 곳에 있다는 이유로 “학생이 왜 이 시간에 밖에 있느냐”는 시선이 아직도 있기 때문이다. 문 양은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하면 전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가 있는 학생이라는 인식이 있다”며 “하지만 학교 밖 청소년 중에서는 학교가 아닌 밖에서 꿈을 찾고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 2018년 학교 밖 청소년들이 왜 학교를 떠났는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원하는 것을 배우려고(23.4%) △검정고시를 준비하려고(15.5%) △특기를 살리려고’(15.3%)와 같은 이유도 많았다.

내일더하기 박상용 선생님은 “보통의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면서 “어른들도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해 엄격하게만 보기보다 학교를 벗어난 이유에 대해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많다”면서도 “서울시 등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안교육기관의 선생님들이 처우 등 현실적인 문제로 현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혼란을 겪고 좌절한다. 환경이 조금이라도 개선돼 선생님들이 청소년들을 위해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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