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 무소식' 플랫폼 심사지침..좌초될까, 대폭 수정될까

조용석 2022. 5. 1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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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말 행정예고 마쳤으나 4개월 넘게 '공회전'
공정위는 규제 아니라지만 업계는 규제로 인식
자사우대에 반발 커..국힘 "온플법 먼저 돼야"
한발 물러난 공정위..학계 지침 필요성엔 공감대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월 행정 예고한 온라인플랫폼 심사지침이 4개월 가까이 공회전하고 있다. 공정위는 2년 동안 심사지침을 준비했으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뚜렷해진 기업 자율규제 기조에 바짝 몸을 낮춘 모양새다. 다만 새 정부 역시 플랫폼 관련 최소한 제도적 장치는 필요하다고 보는 만큼 업계 등 관련 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다시 힘을 얻을 가능성도 크다.

1월말 행정예고 마쳤으나 4개월 넘게 ‘공회전’

15일 업계 등에 따르면 공정위가 제정한 ‘플랫폼 심사지침’은 행정예고 기간이 1월 26일로 종료됐으나 현재도 답보상태다. 플랫폼 심사지침은 공정위 내부 의결(전원회의)만 거치면 바로 시행될 수 있는 점, 공정위가 사전에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 심의까지 받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정무적 지연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2020년 5월부터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업계 의견을 듣는 등 2년 동안 심사지침을 준비해왔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플랫폼 심사지침은 문재인 정부에서 공정위가 계획한 이른바 ‘플랫폼 3종 세트’ 중 하나다. 공정위는 플랫폼 시장 독과점 방지 및 감시를 위해 ‘플랫폼 심사지침’, 플랫폼과 입점업체 사이 갑을문제는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제정’, 소비자 보호는 ‘전자상거래법 개정’ 등을 통해 규율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온플법은 정권 교체와 함께 폐기수순이며, 전상법 개정은 국회에서 논의도 못 한 상태다.

플랫폼 심사지침은 공정위가 플랫폼 시장에서 발생한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및 불공정거래행위를 심사할 때 사용하기 위한 내부지침이다. 플랫폼 시장 반(反) 경쟁행위는 기존 잣대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법 집행 사례를 토대로 지침을 만든 것이다. 공정위는 ‘규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하나 위법행위 판단 기준을 정한 것이기에 업계에서는 사실상 ‘규제’로 보는 시각이 뚜렷하다.

여당이 된 국민의힘 역시 플랫폼 심사지침에 부정적인 기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현재 법으로 플랫폼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도 없는 상황에서 가장 구체적인 심사지침을 만든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며 “심사지침은 온플법이 도입된 후에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대형플랫폼도 스타트업도 모두 반발

카카오(035720), 네이버(035420) 등 대형 플랫폼 업체는 특히 심사지침에 포함된 주요 경쟁제한행위 중 ‘자사우대’(self-preferencing)에 대한 불만이 크다. 자사우대란 플랫폼 사업자가 검색 노출 등 서비스 과정 자사 플랫폼을 통해 영업하는 이용사업자보다 자신을 우대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신들의 PB상품 브랜드를 검색창에 집중 노출 또는 상위노출 시키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2020년 9월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제정안의 취지와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업계는 앞서 롯데쇼핑의 상영관 배분 사건에서 법원이 자사우대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플랫폼 심사지침에서 자사우대가 빠져야할 이유로 든다.

2014년 당시 공정위는 롯데시네마(상영관)가 같은 롯데쇼핑 소속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영화를 타 배급사의 영화보다 좋은 조건으로 상영한 것을 적발해 과징금을 매겼다. 공정위는 당시 공정거래법상 불공정행위(거래의 상대방을 차별)를 근거로 위법 판단을 했으나, 법원은 롯데시네마와 롯데엔터테인먼트 모두 롯데쇼핑 내 하나의 사업부이므로 거래 상대방으로 볼 수 없어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을 모두 취소했다.

반면 해당 사건과 2020년 공정위가 제재한 플랫폼 기업 네이버의 자사우대(스마트스토어 등 우대)는 다르다는 반박도 있다. 롯데쇼핑 사건은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 위반만 있었기에 개별법인이 아닌 것이 문제가 되나 네이버는 이에 더해 타 사업자의 사업활동 부당방해(공정거래법상 시지남용 금지)도 함께 적용됐기에 동일 법인 여부가 문제 되지 않는다는 반박이다. 이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당 부분에 대한 업계의 반박은 충분히 논의된 것”이라며 “롯데쇼핑 사건과 네이버는 다르다”고 말했다. 해당 사건은 아직 법원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

대형 플랫폼뿐 아니라 스타트업도 ‘무료서비스라도 가치 교환이 발생하면 시장을 획정할 수 있다’는 심사지침 조항에 대해 우려도 내놓는다. 새 시장을 개척하는 스타트업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의 논리다.

한발 물러난 공정위…지침 필요성은 학계 공감대

심사지침에 대해서는 강한 의지를 보였던 공정위도 정치권·업계의 반대에 한발 물러난 분위기다. 공정위 관계자는 “향후 간담회 등을 실시하면서 업계 의견을 청취 후 심사지침을 보완할 예정”이라며 “충분한 의견을 듣기 위해 언제까지 (심사지침을)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공정위는 심사지침 내 사실상 특정 업체 사건이라고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예시에 대해서도 수정할 계획이다. 일부 플랫폼 기업들이 “법원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았는데 위법 사례로 심사지침에 넣는 것은 부당하다”며 의견을 낸 것을 받아들이는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전경.(사진=이데일리DB)

학계에서는 현 심사지침 기조에 대한 찬반은 있으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플랫폼이란 새로운 산업이 나왔으니 공정위가 어떤 식으로든 접근(대응)을 해야 하고 이에 대한 심사지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동의한다”며 “다만 지침이 현재처럼 너무 구체적 규제로 접근하기보단 어떤 부분이 주의 깊게 살펴보겠다는 수준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당시 민관합동 TF 위원장을 맡았던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심사지침은 온플법과 연동될 필요가 없고, 위법행위에 대한 입증 책임도 공정위에 두는 등 플랫폼에 유리한 부분이 많은데 오해를 받는 것 같아 아쉽다”며 “현 정부도 플랫폼 최소규제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기에 이를 뒷받침할 심사지침은 조속한 시일 내 도입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조용석 (chojur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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