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의 풀무질] 죽음의 굿판

한겨레 2022. 5. 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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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아니, 그는 영육일치를 믿는 일원론자였기 때문에 "떠났다"는 말은 옳지 않다.

타자의 죽음을 정당화하려면 그들을 악마화해야 한다.

박정희를 용서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죽음을 듣고 "인생무상. 안녕히 가십쇼. 나도 곧 뒤따라갑니다"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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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풀무질]

‘타는 목마름으로’의 김지하 시인이 1년여의 투병 끝에 지난 8일 오후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사진은 2007년 문화기행산문 <예감> 출간 기자간담회 때 모습.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김지하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아니, 그는 영육일치를 믿는 일원론자였기 때문에 “떠났다”는 말은 옳지 않다. 김영일이라는 사람이 한울로 돌아갔다. 다다음날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꾸벅 인사했다.

나는 김지하가 생각났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첫 모습은 2012년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이다. ‘오적’과 ‘타는 목마름’을 외치던 저항시인이 이상해졌다고 치부했다. 고문 후유증 때문인가? 그래도 원수의 딸과 화해하는 장면은 인상 깊었다. 딱 그 정도였다. 나는 아직 그의 생명사상을 몰랐다.

문재인의 사람인 줄 알았던 윤석열이 배신했다고 한다. 진보진영 사람인 줄 알았던 김지하도 변절했다고 욕먹었다. 1991년 5월5일 <조선일보> 칼럼 때문이다.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경찰 폭력으로 대학생이 사망하자 당시 운동권은 연이어 분신자살했다. 60일 동안 13명이 죽었다.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라고 경고했다. 한 개인의 생명이 정권보다 중요하며, 죽음이 아닌 삶이야말로 참된 운동의 출발이라고 썼다. 재야는 분개했다.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그가 역적으로 몰렸다.

김지하는 세상을 둘로 보지 않았다. 하나로 봤다. 민주와 독재, 진보와 보수를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았다. 빛이 어둠을 정복하리라 믿지 않았다.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당신들의 그 기괴한 이원론이다. 당신들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인정하고 있다. 당신들의 결정적 파탄의 증거다. 묻겠다. 당신들의 신조는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모든 죽음의 굿판은 이원론을 전제한다. 육체의 죽음을 정당화하려면 영혼의 분리를 믿어야 한다. 타자의 죽음을 정당화하려면 그들을 악마화해야 한다. 김지하는 감옥에서 생명사상을 싹틔웠다. 시멘트 틈으로 자라는 풀에서 자신을 보았다. 박정희를 용서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죽음을 듣고 “인생무상. 안녕히 가십쇼. 나도 곧 뒤따라갑니다” 하고 웃었다. 김지하의 저항은 투쟁이 아니다.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다. 살고 살리는 것이다. “흰 그늘”로 비유되는 그의 세계관은 역설적인 통일이다. 빛과 어둠, 선악이 공존하는 한 생명으로서 살다 가는 길이다.

그래서 일찍이 <한살림 선언>(1989)을 썼다. <공산당 선언>(1848)의 유물사관은 진보와 투쟁을 요구한다. 끝없는 피아식별, 이분법과 정반합을 낳는다. 죽음의 행진을 진보로 찬미한다. 서학의 뿌리 깊은 이원론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살림은 동학의 일원론을 계승했다. 삶의 행진은 진보와 투쟁일 수 없다. 순환과 조화다. 그래서 생명운동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프랑스혁명에서 비롯된 좌파/우파의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다. 모두가 한 우리, 한 살림이라는 자각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후위기, 생명위기를 살고 있다. 김지하의 “젊은 벗들”이었던 86세대가 권력을 휘두른다. 나는 묻는다. 인류세의 지하(地下)는 누구인가? 비인간 존재다. 매년 700억명 넘게 도살되는 동물이다. 매일 150종 가까이 멸종되는 생물이다. 성장과 진보의 이름으로 파괴되는 자연이다. 그들에게 공정과 정의는 어디 있는가? 토착왜구와 종북좌파가 무슨 소용인가? 조국과 한동훈이 뭐가 다른가? 결국 다 지상의 인간끼리 편 가르고 죽이는 놀음이다.

죽음의 굿판은 별게 아니다.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듯이 사람과 자연을 분리하는 짓이다. 지하에 있는 생명을 말 그대로 지옥에 가두고, 사람만이 지상과 하늘을 노니는 것이다. 아직도 진보를 자처하는 어르신들께 나는 젊은 벗으로서 말씀드린다. 딱 내 나이만큼 오래된 김지하의 조선일보 칼럼을 한겨레에 옮긴다. “당신들 운동은 이제 끝이다!” 좌우와 선악을 초월하는 생명운동만이 한겨레, 한우리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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